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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지금껏 살아왔던 비결

요리조리쿡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4. 11. 16.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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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가 지금껏 살아왔던 비결
침엽수 은행나무의 놀라운 생명력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규환(kgh17) 기자   
▲ 마지막 잎새 밤에 더 빛나다.
ⓒ2004 김규환
침엽수는 바늘처럼 뾰족한 침(針) 모양이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주목(朱木), 구상나무, 메타세콰이어, 낙엽송, 히말라야시다, 노간주나무, 삼나무, 측백나무, 편백나무 따위가 다 그렇다. 침엽수는 잎맥이 길게 쪼개진다는 점과 대개가 겉씨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단 하나 날카롭지도 않고 널찍한 잎 모양을 가지고 있는 은행나무도 활엽수에 끼지 않고 나 홀로 침엽수 분류에 끼어 있다.

침엽수 은행나무에 대한 학명이나 생물학적 갈래에 대해선 식물학자의 몫이다. 그렇더라도 암수 딴 그루의 단점을 딛고 오늘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은행나무의 생명력 그 비밀에 관심 한번 안주고 가기는 자연에 대한 방심이나 무관심이다. 혜택 받은 자로서 보답하지 않는 배은망덕한 자세다.

▲ 봄에 보았던 은행나무
ⓒ2004 김규환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져도 어김없이 싹을 틔운 나무, 3억5천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화석식물(化石植物)이 있다. 공룡, 메타세콰이어 등과 동시대 중생대부터 모진 풍상을 겪고도 살아남은 은행나무의 생명력이 스산한 늦가을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다. 다들 잎을 떨어뜨리지만 내년 봄 보드랍게 다시 만나자며 작별을 고한다.

익룡(翼龍)은 새가 되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닭, 타조가 되었다고 하니 공룡이 모두 멸종했다는 상식은 수정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땅에 발을 붙이고 지구 전역을 제 마당처럼 뛰놀던 공룡은 지구 대폭발과 연이은 빙하기에 어쩌지를 못하고 생명을 마감한다. 세상의 강자가 사라지기도 하루아침이다.

그렇다면 은행나무는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불에 타지도 않았고 빙하기에도 얼지 않고 버텨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궁금해 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답을 명쾌하게 내리기는 쉽지 않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면서 상념에 젖었다. 가을철 내내 붉은 단풍보다도 은행잎에 매료되어 헤어 나오기 힘들었다.

▲ 은행나무를 많이 심어주세요. 경복궁 앞에서
ⓒ2004 김규환
책갈피에 꽂아 책벌레를 퇴치할 마지막 시기에 나는 은행나무의 일생이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은행이 이렇게 오래 버틴 이유는 무얼까? 잠시 달나라로 여행을 다녀온 걸까. 공룡이 씨앗을 머금어 그 배속에서 나중에 나온 걸까.

은행을 주워 씻는 걸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손질하다보면 옻까지 오르기도 한다. 여기에 한 가지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알맹이에서 나는 그 지독한 냄새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열매를 맺는 식이식물(食餌植物)은 새의 먹이가 된다.

먹고 아무데나 마구 뿌리고 다니기 때문에 벚나무가 사람이 심지도 않았는데도 이곳저곳에 뿌리박고 살지 않은가. 하지만 은행(銀杏) 열매에서 풍기는 대변(大便) 같은 야릇한 냄새에 새들이 결코 달려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은 여기에서 안도의 숨을 쉬자.

▲ 늦가을 풍경-안암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만들었어요.
ⓒ2004 김규환
이뿐일까. 설혹 큰 새가 먹더라도 소화도 되지 않고 씨앗째 그대로 나오는 게 한 이유다. 이걸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고심하던 차,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를 얻었다. 씨가 너무 딱딱해서 다람쥐, 청설모 따위의 설치류(齧齒類)가 탐내지 않는다는 것과 결국, 땅에 조금이라도 묻히면 탈 염려와 냉기로부터 얼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 정말 이 가을에 이것 하나 깨쳤다는 사실에 며칠째 기분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내친김에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도 한번 해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 시대로 가보자.

▲ 내가 태어난 전남 화순군 북면 방리 양지마을 은행잎이 길바닥에 뒹굴고 있다.
ⓒ2004 김규환
겨우 몇 억 년 전 어느 날이었다. 평화롭던 지구마을에 우주로부터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급기야 지구축이 오른쪽으로 기울고 난리가 났다. 마을엔 온통 먼지에 휩싸이고 동시에 불바다가 되었다. 고래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공룡은 숲에서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익룡은 ‘끼익 끼익’ 소리를 지르며 대기권 맨 끝에서 사흘을 배회하며 타는 목을 축이려고 내려왔다. 그래서 닭은 목이 길다. 한 여름 목젖이 벌렁벌렁 하는 건 이 때 덴 까닭이다.

딱딱한 나무가 아닌 고사리 등 양치식물은 겉이 타고, 얼어도 얼마간만 버티면 다음해에 살아난다. 땅강아지, 바퀴벌레는 굴을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울창했던 숲은 모두 타서 멸종하고 말았다. 소나무, 메타세콰이어, 은행나무도 죽었다. 이듬해 봄 바로 깨어날 법도 하지만 연이은 빙하시대로 모두 자취를 감췄다.

길고 긴 몇 번의 빙하기와 간빙기, 그 때 그 은행나무는 현존하지 않는다. 간빙기가 시작되어 날씨가 풀리자 얼음이 스르르 녹고 땅이 노출되었다. 대지에 따스한 바람이 불고 햇볕이 내리쬐자 안에 숨어 있던 몇 개의 은행나무 등 침엽수 씨앗이 발아했다.

신라 때 의상대사도 한몫 거들었다. 용문산을 지나면서 계곡물을 마시다가 지팡이 하나를 거꾸로 꽂았다. 노승의 건방증이 만들어낸 전설이다. 물가에 꽂힌 은행나무에서 뿌리가 돋고 싹이 나서 지금까지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아마존 유역 밀림지대에 가면 1000년의 세월을 머금은 나무가 많다고 한다. 100년도 못 사는 사람들의 욕심만 조금 거둔다면 이 은행나무에 타임캡슐을 묻어도 좋겠다. 옆으로 뉘어놓아도 쉬 죽지 않는 은행나무 한 그루는 거목(巨木)으로 자라기에 손색이 없다.

▲ 낙엽을 쓸지 않으면 그냥 걷고 싶어진다.
ⓒ2004 김규환
김규환 기자는 <잃어버린 고향풍경1>을 냈고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cafe.daum.net/hongaclub 대표이다.

2004/11/14 오후 6:50
ⓒ 2004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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