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밀린 월세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5. 8. 17. 11:08

본문

728x90

밀린 월세

 

오늘도 주인집 불이 꺼진 후

밤늦게 집으로 들어갑니다.

월세를 못 낸지 벌써 두 달째.

4년 간 이 집에서 세를 살면서

단 한 번도 월세를 밀려본 적이 없었는데,

실직이 저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동안 동물병원에서 일을 해 왔는데,

두 달 전 어느 날 원장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미안한데 말이야,

이제 여기서 일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데...”

   

서비스업종에 일하려면 친절함이 우선이지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이 틀렸나 봅니다.

이런 직장조차 젊고 예쁜 여성이 채용의 기준인가 봅니다.

그동안 월급도 많지 않아 한 달 벌어 한 달을

겨우 살아 왔기 때문에 실직당한 후

월세는커녕 당장 끼니를 해결조차 힘들었습니다.

이런 처지에 제 눈물은 사치였습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잘한다고 알고 계신

시골의 부모님께 손을 벌려

실망시켜 드리기는 죽어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두 달째 집주인을 피해 도둑고양이처럼 살았니다.

            

며칠 전 힘들게 일자리를 구했지만

월급을 받으려면 한 달이나 남았으니

이 짓을 한 달은 더해야 할 텐데

과연 집주인은 방세를 받지 않고 가만히 둘까 싶었습니다.

            

퇴근 후 잠자리에 막 들려는데,

'똑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없는 척 할 수가 없어 조심스레 문을 열었습니다.

짐작대로 집주인 아주머니였습니다.

“불이 켜져 있길래 왔어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아주머니 앞에 섰는데,

아주머니는 손에 들고 계신 김치를 내미셨습니다.

“오늘 낮에 담은 김치를 가져 왔어요.

맛이 있을런지...”

 

혹시 월세받으러 왔나 제가 오해할까 봐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는 비로소 그 동안의 사정을 말씀 드리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 줄 짐작했어요.

요즘 가끔 낮에 집에 있길래 뭔 일이 생겼구나

했거든. 걱정 말아요.

지금까지 살면서 월세 한 번 밀린 적이 없잖아요.

나 그렇게 야박한 사람이 아니라우.“

 

그리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가시는

그 모습이 어찌나 크게 느껴지던지.

그런 집주인 아주머니 덕분일까요?

 먼저 직장보다 좋은 조건의 직장을 구해서

지금 열심히 일하며 삽니다.

월세도 꼬박꼬박 잘 내고요.

 

아주머니의 그 따뜻한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세상사는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착한 시각장애인의 소망   (0) 2015.08.19
습관 때문에  (0) 2015.08.19
작은 친절이 가져다 준 행운  (0) 2015.08.17
둘이 하나보다 낫다  (0) 2015.08.14
기러기들의 지혜   (0) 2015.08.1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