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타는 농심
속 타는 농심
부탁하건대, 추석 맞으러 고향 가거든 농투성이들의 고통과 애환을 꼼꼼하게 챙겨보기 바란다. 왜 그들이 오뉴월 땡볕 아래서 팥죽 같은 땀을 흘려가며 애지중지 키웠던 알곡들을 갈아엎어야 하는지. 왜 땅을 치고 마른 가슴까지 쥐어뜯으며 분개하는지 낱낱이 훑어보기 바란다.
지금 고향 들녘에는 마른 담배 타는 냄새 자욱하다. 답답하다. 정부나 국회, 행정관청이나 언론 등에서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따랐으면 손해 보지 않아야 하는데, 아무리 황금들판이라 해도 봄여름 내내 종자에다 농약, 비료, 품삯 제하고 나면 애써 알곡 거둬봤자 빈손 탈탈 털어야 할 지경이다. 농부들은 숫제 한 달 50만원 월급쟁이도 못된다. 그러니까 벼 익는 소리 찰랑찰랑한데도 논두렁마다 한숨으로 가득하다.
이제 농촌 현실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암담하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어도 그저 말뿐,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처럼 어처구니없을까. 대체 누굴 믿고 농촌에 살아야하는지 턱턱 가슴 쳐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이미 똥값 되어버린 쌀농사 지어본들 무슨 소용이겠나. 이미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농사.
농촌에 가거든 왜 농촌 사람들이 정부를 탓하고, 국회를 성토하며, 언론에 손사래를 치는지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귀담아 들어보라. 그러면 자연히 알게다. 농투성이들이 애써지은 알곡 한 자루, 푸성귀 한 아름, 잘 여문 열매 한 상자에 만족하고 고마워할 일이 아니다. 그들의 삭힌 눈물을 헤아려 보아야한다.
이번 추석에도 지역 농민회를 비롯한 진보단체 회원들이 지역 배를 받아다가 집집을 다니면서 팔 예정이란다. 지난해 그렇게 이문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트럭 한 대 분량을 게 눈 감추듯 쉽게 떨이했다. 그렇지만, 그것마저도 운반비를 제하고 나니 겨우 본전치기였다.
마치 자기 일처럼 땀범벅이 되어 밤늦게까지 발품을 팔았던 결과가 소주 한 잔 자 켜니 하기에도 손이 부끄러웠다. 물론 앉아서 사먹는 사람들이야 싼값에 그저 그렇겠지만 안타까움에 가슴 아렸다. 양파, 마늘, 고추를 내다 팔아도 마찬가지다. 이제 농촌을 깡그리 말아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더불어 사는 세상, 그저 좀 믿을 만한 세상이었으면 오죽 좋을까. 정부의 정책이나 국회의 의사결정 사항을 그대로 믿고 따랐으면 손해는 보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으랴. 나라 전체가 도시화 정보화 세계화를 치달은 이때, 그러한 일들에 휩싸이지 않고 그저 땅을 믿고 살았던 죄 밖에 없었는데 이거 너무 심하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착하면 착한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품어준다. 뿌린 대로, 애쓴 대로 거둬들일 뿐이다. 그렇기에 서로 약속했으면 큰 문제가 없는 한 지켜주는 세상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의 농가정책을 대할 때면 농투성이들은 언제나 똑같은 심정이다.
분연히 일어나 벼논을 갈아엎어버리고 싶다. 아무리 자식처럼 온 정성을 다해 키웠던 알곡이었지만, 아예 희망을 깡그리 묻어버리고 싶다. 억하심정이 아니다. 고향농투성이들의 애끓는 한숨소리 들리기 전에 먼저 그들의 거친 손을 잡아 보라. 그게 고향을 아끼고, 고생하는 농투성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힘 든다. 더 이상 자식은 도시에서 찌들고, 부모는 시골에서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귀성길 막히고 더뎌도 느긋하게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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