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일
신기한 일
신기한 일 많다. 수많은 사람이 바짝 부대껴 산다. 그러면서도 똑같은 사람 하나 없다. 먹성도 신기하다. 하루 세 끼를 먹는다. 그 양이 엄청나다. 일 년에 천 구십 다섯 끼를 먹으면, 육십년이면 칠만 천 칠백 끼다. 이렇듯 평생 삼백 가마니의 쌀을 소화하는 든든한 위장을 가졌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신기하다.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구천 번 이상을 뛴다. 그뿐이랴. 한 덩이 정도의 크기를 가진 머리로 무엇이든지 다 알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뼘도 안 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것도 신기하다. 사람의 감정 또한 그렇다. 여러 감정 중에서도 사랑의 감정은 너무나 신기한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 사랑하는 일도 신기하다.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꼽으라면 누군가 열렬히 사랑했던 때다. 그 만큼 사랑은 우리의 생활을 즐겁게 해 주고, 세상을 따뜻한 색깔로 물들인다.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하루일상이 행복하다. 무시로 내가 사랑 받고, 또 사랑한다는 사실은 더없는 행복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랑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랑할 때 행복은 덤으로 주어진다. 참 신기한 선물이다.
사랑은 인간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눈을 가졌다. 그렇지만 그것을 잘 알면서도 모르는 게 바로 자기 자신과 같은 모습을 한 사람이다. 서로 부대끼고 살아도 사랑의 신비함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도 네 그럴 줄 몰랐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잇속을 따지는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알면서도 사람의 내면을 뜯어보는 예사로운 눈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늘 불만족한 그릇을 박박 긁는다. 행복만을 좇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실한 사랑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한데 얽힌 사람,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의 엇갈린 사람, 별과 같은 이상을 지향하면서도 진흙 구덩이 속에서 헤매는 사람, 선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악에 빠져드는 사람, 길흉화복과 생로병사를 체감하면서도 자기만은 영생불멸하리라 자신하는 사람을 신용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상대방에게 신비로운 존재다, 생각하면 할수록 신기한 일이다. 집집마다 그 집만의 행복한 비밀을 묻고 산다. 수천수만의 사람들 가슴에는 그 사람만의 비밀을 가졌다. 때문에 세상이 비밀 투성이다. 어디 하나 마음 놓을 곳이 없을 때가 생긴다. 그러나 인간의 비밀이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자기감정을 속이는 비밀은 가지지 못한다. 사랑을 하면 더욱 그러하다. 사랑을 하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더욱 진실하고, 더욱 바르고, 아름답게 드러낸다.
이 세상에 남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저마다 어느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고, 인정해 주며, 배려해 주고, 기억되기를 갈망하며 산다. 나를 생각하고, 인정하고, 기억하며, 사랑해 주는 사람을 내가 인정하고 흠모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그 사람이 내게 베푸는 배려와, 인정과, 기억과, 사랑을 소중하게 받아들인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행동할 때만큼 추한 때는 없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자기를 추켜세울 때 자기의 찬란한 빛의 한쪽은 이미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자기만이 가진 그 아름다움은 자기 허영심으로 더렵혀지고, 그 지혜는 자부심 때문에 야유를 받는다. 사랑은 이기심으로 인해서 깨끗이 사라진다. 명예는 부패 때문에 땅에 떨어지고, 비판받고, 비웃음을 당한다. 모욕과 멸시와 교만의 씨앗을 뿌린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참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참삶을 위한 진리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한다. 폭력보다는 이웃을 사랑하고, 자기의 비천함을 옷 속에 숨기려 들지 않는다.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가치를 높이 세워 성실하다. 그렇기에 참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존재에 의미를 주고 뿌리가 된다.
무엇보다도 사랑은 자유스러워야 하고, 자발적이어야 한다. 아무런 제약도 압력도 받지 않아야한다.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되어야 하는 선물이어야 한다. 남의 사랑을 함부로 거절해서도 안 된다. 자기 자신을 인정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도 똑같이 인정해야한다. 매사 긍정하고, 너그러워야하고, 자기를 발견하고 서로 발전해야한다. 사랑은 서로 동등할 때 비로소 아름답게 발현된다.
아무리 각박하다 해도 사랑의 향기는 영원하다. 항상 더러운 물에서 놀던 고기는 맑은 물의 고마움을 모른다. 그렇듯이 언제나 비도덕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은 자기의 생활이 얼마나 흉한지 모른다. 양심이 무디어진 사람은 섬세한 아름다움을 모른다. 그러나 항상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안다. 평화롭게 살려는 사람에게는 맑고 깊은 사랑이 뿌리를 내린다.
언제나 불만족한 그릇만 박박 긁어대는 그대여! 아는가? 그래도 우린 분명 신비로운 세상에, 희망의 불씨를 켜고 산다는 사실을.
박종국또바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