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에세이

5학년 봄나들이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3. 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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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학년 봄나들이

 

지난 주말 치기어린 친구들 통영에 모였다. 일명 통영대첩, 벌써 두 번째다. 여느 모임자리도 열일 제쳐두고 냉큼 달려간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지인 혼사에다 ‘986학년 모임선생님의 맏딸 결혼식까지 겹쳐 발만 동동 굴렀다. 찰떡궁합들 열일곱 중 아홉이나 참석했다. 계략은 발목 다쳐 깁스 한 친구가 추진했다. 그는 근 삼십년 통영 지킴이다.

 

오십이 넘으니 친구들 만남이 살갑다. 평소 점잖을 떨던 친구도 그냥 예닐곱 살 악동이 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알게다. 모임 같은데서 비슷한 연배를 만나면 혹시 동갑이 아닐까 어림짐작하고,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호구조사에 바쁘다. 그런데 고교동창이라면 삼십년 거슬러 만나도 금방 친구가 된다. 그만큼 학연으로 똘똘 뭉쳐진 동기의식은 응집력이 강하다. 지척에 사는 거제도 친구 둘 동참했단다.

 

요즘 같이 정보통신이 발달한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도 천리를 내다본다. 시시각각으로 친구들 해코지가 영상으로 전해졌다. 반가웠다. 나처럼 눈가에 잔주름 자글대고, 검버섯이 피기 시작했지만 굼뜬 행동 하나하나 정겨웠다. 면면을 뜯어보니 각자의 얼굴에 그 동안의 신산이 고스란히 담겼다. 얼굴은 정직한 이력서다. 어떻게 해도 표정관리가 안 되는 삶의 궤적이요, 연대기다. 이쯤에서 보면 우리 또래의 얼굴은 명함이고, 개인사의 기록 보관소다.

 

60년생을 앞뒤로 십년은 또래라고 해도 불만 없다. 시골이든 도회지든 출신이 어디든 다들 미국 원조 밀가루와 옥수수가루로 쪄낸 빵을 먹고 자랐다는 동류의식을 가졌기에. 주린 배 움켜쥐고 그 빵을 배급받던 시간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고, 손바닥만 한 빵을 아껴가며 조금씩 떼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땐 아끼고 아끼다가 집으로 가져가 동생에게 준 기억도 아리다. 날씨가 추워 학교 가기 싫어도 그 놈의 샛노란 옥수수 빵이 눈에 아련 거려 학교에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평생을 친구로 살기에 충분하다.

 

그뿐이랴. 눈 내리는 겨울날, 조개탄 난로 위에 수북하게 쌓였던 양은 도시락을 풍경을 공유했던 기억들, 그 도시락 속에 담긴 김치와 짠지 익어가는 냄새와 어린 날 한때 평온을 그리워 하는 5학년 오빠들의 정서가 통영바다 넘실댔다. 그 모든 일상을 벗어던지고 통영으로 향하게 했던 결사의지는 무엇이었을까? 그 동안 감당하였던 삶의 무게에 대한 안쓰러움과 연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나처럼 갑작스레 건강을 헤쳐 일체 술 담배를 끊고, 두문불출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설혹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기대에 부응하느라 간과 쓸개가 혹사당하고, 걸맞은 지병 하나쯤 건사하고 살 나잇살이다.

 

거듭 보내진 친구들 사진을 보니 우수수 생각이 많아졌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내가 겪었던 숱한 시행착오를 그들도 겪었으리라. 함께 나누는 음식을 보니 한층 더 정감이 간다. 친구들이 의좋게 술잔을 나누는 모습을 보니 70년대 감수성을 상징하는 양희은,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조용필 같은 통기타 포크 가수들이 떠올랐다. 아마 흥건하게 취기가 올라 노래방에서 70년대 본색을 다 드러냈을 거다.

 

그런데, 우리 나이에 한둘 몸져눕거나 세상을 등진 친구가 생겼다. 나도 지난해 급작스레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주름살이 늘어감에 따라 나처럼 몸의 어느 한 귀퉁이가 덜컹대기 시작하는 거다. 오장육부가 간당치 않은 거다. 아파본 사람은 안다. 건강한 몸이 얼마나 축복인지를. 또 그는 몸 아픈 이의 서러움과 절망을 헤아릴 줄도 안다. 그만큼 친구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는 연민능력이 저절로 함양되는 시기가 바로 5학년 즈음이다.

 

그제는 친구들 그렇게 만나 통영대첩을 이뤘다. 그만큼 친구들 모두 건강하다. 이렇듯 우리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거다. 우린 친구니까. 벌써 다음 모꼬지가 궁금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