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얘기

바늘땀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4. 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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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땀

 

미국의 삽화가 작가 데이비드 스몰. 그의 자전적 그래픽노블 <바늘땀>에는 매 순간 쉬운 길을 택했던 부모와 함께 보내야 했던, 어둡고 삭막했던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겼다.

의사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엄마, 그리고 두 아들 중 막내였던 그의 가정은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언제나 차가운 냉기가 흘렀다.

식사시간엔 엄마가 포크를 1만 옆으로 밀쳐도 식탁에 전운이 서렸다. 화병이 한번 도졌다 하면 엄마는 몇 날 몇 주씩 소리 없는 분노로 침잠해 들어갔다.

 

어린 시절 우리 엄마도 그런 분노와 가장 어울리던 여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30대 후반의 여성일 뿐이었던 엄마였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가 그렇게 무서웠다. 엄마가 갑자기 짜증을 내며 소리치면, 마치 비수가 날아와서 가슴에 꽂히는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엄마의 가시 돋친 욕설은 매보다 참기 어려웠다.

내가 실수했을 때 날아오는 짜증은 그렇다 해도 엄마가 잦은 건망증으로 자신의 물건을 찾지 못해 자식들에게 화풀이할 때엔 어린 마음에도 이건 잘못되었다 싶었다.

왜 엄마의 건망증을 자식들이 책임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짜증은 예측할 수 없을 때가 많았고,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끼리 화기애애하게 지내다가도 엄마는 갑자기 짜증을 냈다. 엄마에겐 욕설과 짜증을 참기보다 터뜨리는 게 늘 더 쉬운 일이었다. 그럴 때 아이 중 누군가 한 명은 울면서 방으로 피해 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분 그 아이는 나였다.

 

데이비드 스몰의 엄마는 그렇게 폭발하는 식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홀로 잔기침을 해대고, 찬장 문을 신경질적으로 여닫으며 집안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곤 했다.

중산층이긴 해도 그다지 풍족하지 못했던 가정에서 데이비드의 엄마는 늘 돈타령을 해댔다. 지인들과의 사회적 교류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돈에 대해서는 늘 아까워했다.

가장 치명적인 일은 데이비드이 목에 생간 혹을 발견하고도 제때 치료해주지 않았다. 의사가 급한 일이 아니라도 하자 부모는 별걱정 없이 치료를 미룬다. 하물며 아이 치료에 들어갈 돈으로 새 자동차, 새 가구, 새 전자제품을 구입 한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나 열네 살이 되던 해에야 비로소 데이비드는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는 2차 수술까지 받아야 했고, 갑상선과 성대 한쪽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차피 대화가 없던 가정이었지만, 데이비드에게는 정녕 피할 수 없는 침묵의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혼자 거울 앞에 선 데이비드는 병원 의사들이 자신의 목에 남긴, 마치 피투성이 장화를 졸라맨 듯 거칠고 성긴 바늘땀을 보게 된다. 그 바늘땀은 그의 유년 시절에 남은 상처의 상징과도 같았다. 결코 사라질 수 없는 흔적이기도 했다.

 

<바늘땀>은 만화이지만 소설 구조를 가진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그래도 솔직해서 아름다운 한편의 작품이다. 그 후, 데이비드는 어둡고 참혹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음에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예일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하여 일러스트레이터로 성장했고, 아동물 작가 사라 스튜어트와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리디아 정원>이라는 멋진 동화책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데이비드는 나쁜 길을 끊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사랑받지 못했으니까 나도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고 믿으며 행동하는 건 역시 쉬운 길로 가는 거다. 데이비드 스몰처럼 누군가 쓸어놓은 길을 무작정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간다면 부모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