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에세이/행자 이야기

행자의 살맛 나는 세상 이야기-3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9. 12. 27.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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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의 살맛 나는 세상 이야기-3

 

그렇게 행자는 천 리 길을 달려 엄마·아빠 댁에 도착했어요. 야트막한 산자락에 지은 아파트,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어요. 그렇지만, 엄마가 워낙 살가워 당장 형님 누나를 잊을 만큼 편안했어요. 행자에 대해서 시큰둥하던 아빠도 싫지는 않은 지 무릎에 앉히고는 털북숭이를 곧잘 쓰다듬어 주었어요. 큼지막한 손으로 덥석 움켜잡아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아빠는 영락없이 무덤덤한 경상도 사내였어요.



아빠는 초등학교 교감 선생님으로 작가로,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써요. 또 날마다 블로그와 카페를 관리하지요. 수많은 밴드와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톡,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이버공간에서 친구들을 만나요. 연세로 보면 분명 아날로그(analog) 세대인데, 이십 대 형님 누나들보다 훨씬 디지털(digital) 세대예요. 그런 아빠를 두고 엄마는, 허구한 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고, 인터넷에 매달린다고 지청구를 해요.

그렇지만 아빠의 하루 생활을 살펴보면 가히 자랑스러워요. 학교에서 업무 외에도 하시는 일이 너무 많아요. 무엇보다 먼저, 밥 짓고, 반찬 만드는 일을 도맡아요. 물론 엄마도 하시는 일이지만, 아빠가 싱크대 앞에 서는 일이 더 많아요. 그런 까닭에 서울로 떠나 사는 형님 누나도 집밥이 최고라고 엄지 척해요. 날마다 냄새만 맡는 행자도 아빠가 손수 지으신 밥상이 최고예요.



아빠는 한 달에 두어 번 서울에서 공부하는 형님 누나에게 맛깔스러운 반찬을 만들어 보내요. 그때면 행자는 그 음식을 맛보고 싶어 안달해요. 그렇지만 엄마·아빠는 야속하리만치 냉정해요. 그 이유는 단 하나, 강아지가 사람 먹는 음식을 먹으면 수명이 단축된다나요. 더욱이 소금기가 든 먹이를 먹으면 안 된대요. 아시죠? 보고도 먹지 못하는 그 비애를. 그건 잔혹한 고문이에요. 형님 누나가 엄지척하는 음식을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하다니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음식에 관한 한 불만 없어요. 엄마·아빠가 그처럼 관심을 두고 행자를 사랑해주는 마음만으로 속이 든든해요.


네 해 동안 함께 살면서 엄마·아빠로부터 사랑 듬뿍 받았어요. 오죽하면 집에 찾아오는 분들이 대뜸 그래요. “행자는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 보다!” 이 말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자주 듣다 보니 되레 가슴 뿌듯해요. 그만큼 행자가 사랑을 받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지요. 분명 행자는, 저세상에서 참 좋은 일을 하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