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바란다
새해에 바란다
박 종 국
새해는 우리 모두 입 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으며, 뱃속에 밥이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세속을 등지고 출세간의 길을 걷는 승려의 첫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그러나 세속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뜬금없이 바쁘고, 시도 때도 없이 더 가지려고, 더 나은 명예를 얻으려고 아득바득댑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부유함을 좇기보다 맑은 가난 속에서 길러진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보다 남을 위하고, 네 탓을 하기보다 내 탓을 먼저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질박하고 청정하면 여러 사람의 마음에도 그 청정의 메아리가 울립니다. 맑은 가난은 우리가 지속해야할 생활 규범입니다. 그래서 새해는 불필요한 걸 다 덜어내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새롭고 살렸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는 모두가 평화를 얻는 일에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얻는 일입니다. 어떤 일을 하던 마음의 고요와 평화가 없이는 화합을 이룰 수 없고, 참다운 사랑도, 원만한 인간관계도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아름다운 삶과 그들의 생활태도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매사 밝은 쪽으로 생각하고, 흙과 가까이하며, 집과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고, 자연스럽게 번잡함을 피하며 자연과 하나로 살았습니다.
새해는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의식주를 간소화하게 하며, 모든 생명에 애정을 가져야겠습니다. 요란을 떠는 요즘 세태와 괴리되더라도 좀 더 깨끗하고, 단순하며, 간소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새해는 모두 남을 좋게 생각하고, 크게 인정하며, 따뜻하게 베풀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은 겁니다. 그 결과, 주위 사람이 잘 보이지 않게 됩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명예를 가졌거나 경제적인 풍요를 갖춘 사람이 좋지 않은 꼴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자기 눈높이를 낮추지 못해 주변 사람들 아픔과 그 고통을 추스르지 못한 탓입니다.
사람의 존재는 참 소중합니다. 비록 생긴 게 빠지고, 가방 끈이 짧다고 해도 그것으로 폄하당해서는 안 됩니다. 좀 더 많이 가졌다고 남을 무시하고, 좀 더 많이 안다고 남을 비난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사람의 근본 본성은 사회적인 명예도 아니요, 물질적인 향유도 아닙니다. 다만 그 사람의 얼굴입니다. 남을 좋게 이해하고, 크게 인정하며, 따뜻하게 베푸는 사람의 얼굴빛은 맑고 밝습니다.
새해는 모두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삶에서 자연훼손의 정도는 심각합니다. 세상을 사는 데 오직 인간만이 쓰레기를 만들어냅니다. 그것도 너무나 많이 지구를 더럽힙니다. 내 주변을 더럽히거나 파괴하면 그 결과는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옵니다. 까닭 없이 자연을 더럽히는 건 스스로 내 몸을 파괴하고, 내 자신을 오염시키는 바보나 다름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일은 우리 정신세계에도 똑같은 피해를 끼칩니다.
지구촌 곳곳에 기상이변이 빈번한 건 그만큼 우리의 정신상태가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도 자연은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거저 베풀어 주고, 그 어떤 보상도 요구하지 않고 두루 나누어주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육십 평생을 생각해 보니 이제 어느덧 하산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별 뚜렷하게 이뤄 놓은 게 없는데 세월은 살같이 빠릅니다. 무엇으로 이 막막함을 대신할까요? 이를 앙다물고 좀 더 치밀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변함없는 자기 의지로 활동하는 한 언제까지나 현역의 줏대를 갖겠지요.
직장은 정년을 정하지만 인생에는 정년이 없습니다. 때문에 언제든 자기가 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영속되는 삶의 기쁨을 누립니다. 세상일들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듯이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더 큰 애착과 책임감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 보다 욕심을 내어도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