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文化的) 노화(老化)란 무엇인가?
문화적(文化的) 노화(老化)란 무엇인가?
노인의 대화 중에 “내 나이 어때서, 이 나이에 이 얼굴이 어때서?” 하며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현대를 ‘무 연령 사회’(Age-less society)라는 말도 나온다.
농담같이 들리지만 “늙었지만 난 아직 쓸모 있지!”하는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Terminator Genisys, 2015)에 나오는 명대사로써 주인공 아놀드 슈워제네거(68세)가 한 말이다.
사실 늙어 가지만 감각, 해방, 자기 탐구, 소비를 즐기는 신 노년층이 늘어났다. 사람은 전통적인 자기 규제보다 더 재밌을 발견하고, 점점 더 쾌락적인 문화로 변한다.
그야말로 현시대는 문화적 르네상스 시대다. 3차 산업 혁명에 이어 인터넷과 고성능센서 인공지능이 어우러져 5차 산업 혁명을 겪는 중이다. 경제사회, 고용, 정부 형태까지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이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초현실사회’라는 개념이 회자되는데, 예를 들면 인간은 가상현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IoT)등의 기술 혁신이 거듭되면서 가상화, 인공지능, 그리고 초연결 등의 초현실사회가 도래하였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삶은 1970년 대 혹은 2000년대 초처럼 살 수 없는 새로운 변화기다. 수많은 데이터(빅데이터)가 쌓이면서 이를 이용한 정책 개발도 하루가 다르다.
문제는 축적되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 축적된 자료에서 어떤 의미를 뽑아내지 못한다면 그 데이터는 쓰레기 일 수밖에 없다.
실사구시적인 접근으로 매스맨(math man:데이터를 실증적으로 분석해 의미결과를 끌어내는 사람)으로 변해야 사는 세상이다.
새로운 문명적 질서가 확립되는 현대에 문화를 모르거나 문화로부터 소외되는 태도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이렇게 문화적 노화란 이런 변화에 잘 적응하는 노년기 생활을 의미한다. 문화는 인간생존과 정의 산물이요, 반영이며 필수적인 요소다. 문화적 노화는 사물을 보는 감성과 수용의지와 관련되었다.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사물을 바라보는 데는 각자 능력에 따라 다르고, 또 생리적인 노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개인적 편차도 심하다.
문화적으로 늙어가는 사람은 보수적 교만함에 사로 잡히지 않더라도 늘 시간의 수레바퀴 아래 깔린 패배감과 소심함에 젖어 살아간다.
더구나 피로감과 패배감에 쌓일 때는 풀길 없는 암호처럼 낯설게 낙담하며 문화적 모순을 느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문화적 노화는 문화적 상징체계를 해독하지 못하는 상태와 무관치 않다.
현대는 문화자본이 지구적으로 강조된다.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란 주로 지배문화, 전통 문화적 요소들인 언어규칙, 지식 상징적 의미체계, 사고나 행동 유형, 심미적성향 등을 지칭하는 말이다.
문화자본 역시 ‘피엘 부르디외’(Bourdieu)가 말하듯이 문화의 소유, 분배, 교환정도 역시 경제적 자본의 소유 분배 축적에 따라 계급이 형성되듯 문화적 불평등이 계급 간 구조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문화자본이 풍부한 사람이 영리하고 특권적인 사람이다. 그밖에 도처에서 ‘문화전쟁’(Cultural war)이 벌어지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산업시대 이후에 성(性), 동성애, 낙태, 환경, 정치사회윤리. 이념 등의 문제가 첨예해지면서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한참이다. 모든 사람이 특정 문화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떤 기득권층이건 그 구성원이 똑같이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만 노년기에는 자기기 선호하는 문화, 혹은 반문화가 상존하겠지만 이를 조화시키는 높은 심미적 관점을 발휘하는 게 중요해졌다.
뿐만 아니라 문화적 노화와 관련해 경제력을 무시할 수 없다. 돈이 들어야 건강한 외모도 만들고, 문화적 소비를 즐긴다. 손색없을 만큼 돈이 가졌어도 외모가 아름답지 못하면 좋은 대접을 받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그런 점에서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짐작하는 데는 돈에다가 그 사람의 반물질적인 고유의 기품, 위세, 인격을 곱하면 된다. 여기다 문화적 수용태도까지 합치면 보혜미안적인 스타일이 된다.
그렇지만 늙어서 공들여 쌓은 품위는 우아하지 못한 말씨. 허튼 행동, 얕은 지식, 허름한 옷차림 등으로 쉽게 상실된다. 말인즉 자신의 초상(representation)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일이다.
헛기침을 할 게 아니라 노화의 내적 측면을 채워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기정체성, 몸, 경험, 언어, 진화, 감각 등과 관련한 인문학적 요소가 중시되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성적체력(sexuality fitness), 몸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게 문화적노화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덧붙이면 문화적인 노화를 방지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은근히 과시하는 데는 세련됨을 좋아하겠지만 거창하거나 퇴폐적인 사치스러움을 피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요새는 패션스타일이 졸부스타일의 재력 과시에서 매력적인 ‘안목과시’로 변하는 시대가 아닌가?
늙었지만 치명적 매력으로써 남의 시선을 끌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요는 건강하게, 현명하게, 단순하게 살아가는 게 노년기 문화생활이다.
그런 점에서 노년기에는 경제적 결핍 상태, 돈을 벌 수 없지만 자기만족이 아닌 자기 계발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다. 돈을 들여서 생생한 경험(여행, 취미생활 등)을 하는 게 노화방지의 길이다.
아니면 이따금 시간을 내서 아름다운 시를 읽거나, 박물관 혹은 오페라 관람하는 여유가 삶으로 문화를 즐기는 일이다. 예술가는 아니지만 창의성, 상상력, 새로움, 낭만적정신 을 키워가라는 충고다.
풍요로운 벌레가 되기보다는 ‘고상한 괴짜’가 되는 게 문화적 노화시기를 살아가는 태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년기는 물질주의에서 벗어나 자연에 몸을 맡기는 자연주의적 삶이 바람직하다.
심미적 예술성 감정보다는 초월주의자인 ‘데이빗 소로우’(David Thoreau), ‘랠프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같은 내면이 영적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행복해지는 길이다.
소로우는 숲속에서 위로와 행복을 찾았고, 에머슨(Emerson, 1995)은 땅을 벗삼아 살았다. 그는 “땅은 우리의 문화에서 거짓되고 환상적인 모든 걸 치료한다.”고 했다.
각설하고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늙었다는 감정을 느낀다. 목욕탕이나 수영복 차림의 노인을 볼 때 혐오감을 느끼거나 많이 늙어 보인다.
때로는 불균형적 몸매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거나 불쾌한 편견을 가진다. 또한 문화적으로 늙었다는 기분이 든다.
인간의 영원한 기능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늙으면 인간의 예술 문화적 상상력 영감에 대한 느낌을 상실하게 된다.
쇼핑몰에 가서도 사고 싶은 물건이 없고, 뉴에이지들의 팝송도 들리지 않는다. 이런 상태는 문화적 퇴행의 삶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