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에세이/행자 이야기
행자예요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2. 2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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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세살배기 푸들 행자예요. 행자라는 이름은 행복하게 자라라고 보호자가 붙여주었어요. 그냥 애칭이요. 언뜻 들으면 옛날스럽고 촌티 폴폴 나지요? 하지만 행자라는 이름이 좋아요. 누구한테나 친근하게 들리거든요.
그리고 이름 값을 한다고 생김새가 암컷푸들 같아요. 겉모습만 보면 앙증맞은 여자아이거든요. 행자는 이것도 만족해요. 때마다 향긋한 삼푸로 목욕해서 보송보송한 털이 윤기가 잘잘 나요. 특히, 나풀나풀대는 두 귓털은 행자의 자랑거리예요. 아마 행자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바람둥이였거라 말해요.
3년전, 행자는 태어나자마자 어느 손에 이끌려 낯선 곳으로 떠났어요. 형제를 두고 혼자 떠났으니 참 슬프고 외로웠어요. 겨우 눈만 떴을 뿐 혼자하는 일이 없었어요. 거의 하루 종일 집안에서만 웅크리고 지냈죠. 첫번째 보호자는 학교와 알바를 번갈아 해야하는 대학생 형이라, 좀처럼 여유가 없어서 행자를 돌봐주지 못했어요. 안타까웠지만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는 긴긴 외로움과 배고픔보다 사랑의 손길이 그리웠어요. 이같은 마음은 갓 태어난 돌쟁이 아이도 마찬가지일거예요.
그러다가 또다른 보호자를 만났는데, 예쁜 누나였어요. 누나도 대학생이었는데, 바빠도 형처럼 나몰라라 혼자 두지 않았어요. 아침에 눈 떠면 꼭꼭 안아주고, 때맞춰 먹을거리도 챙겨주며 살뜰하게 보살펴주었어요. 그래서 행여 누나가 바빠 소홀히 대해도 전혀 서운하지 않았어요. 행자는 누나의 따스한 사랑 하나면 충분했어요.
그러나 학년이 오를수록 누나의 학교생활에 바빠졌어요. 그래서 어느 날부터 행자를 돌보는 게 힘에 부친다고 혼잣말을 했어요. 순간, 행자는 무척 마음이 아팠어요. 행자 먹거리는 물론, 대소변 처리와 목욕 등 혼자서 도맡기엔 힘겨웠나봐요. 그래도 단한번도 싫다며 손사래 치지 않았어요. 행자는 아무래도 꾹 참고 견뎌냈어요.
그러니까 세상이 확 달라지는 일이 생겼어요. 그날 따라 온 가족이 서울에서 만났어요. 지방에서 올라오신 엄마아빠, 서울에서 따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형까지. 참 맨처음 행자를 선택해서 돌봐주었던 첫번째 보호자까지 한 자리에 모여 오붓한 시간을 가졌어요. 그 순간 행자는 어쩔 줄 몰랐어요. 태어나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사람과 함께 하다니요.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요.
한참 뒤 아빠 친구 부부도 오셨어요. 첫인상이 무척 인자해보였어요. 인사를 나누고나서 한쪽 구석에 오또카니 앉은 행자를 대뜸 발견하고는 껴안고 둥개둥개 반겨주었어요. 그 손길이 무척 따뜻했어요. 처음 보는 형의 손길도 예사롭지 않았어요. 그렇게 자리가 무르익자 자연 행자 이야기로 모아졌어요.
공부하기도 바쁜데 행자를 어떻게 돌보냐는 거지요. 순간 행자는 바짝 긴장했어요. 유기견으로 버려지는 건 아니겠지만, 또다시 남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고 결론 났기 때문이에요. 바로 엄마아빠가 세번째 보호자로 데려가기로 한거죠. 누나는 서운해 하면서도 동의했어요. 어쩌겠어요. 행자는 팔자거니 체념하고, 아무 항변도 못한 체 지켜만 봤어요. 다들 행자 생활도구를 도구를 챙기기에 분주한데, 아빠는 그저 데면데면했어요.
이제 갓 태어난 지 6개월째라 조막손만한 행자가 볼썽사나웠겠지요. 내내 아빠의 표정은 탐탁지 않았어요. 그러니 행자도 뻘쭘해져서 자꾸만 꽁지를 사렸어요. 그렇게 행자는 세번째 보호자가 데려갔어요. 이런 게 운명인가요.
그렇게 행자는 천리 길을 달려 보호자 댁에 도착했어요. 야트막한 산자락에 위치한 아파트,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어요. 그렇지만, 보호자가 워낙 살가워 당장 그전 일을 잊을 만큼 편안했어요. 시큰둥하던 아빠도 싫지는 않은 지 무릎에 앉히고는 털북숭이를 곧잘 쓰다듬어 주었어요. 큼지막한 손으로 덥석 움켜잡아 깜짝 놀랄 때가 많았어요. 아빠는 영락없이 무덤덤한 경상도 사내였어요.
아빠는 초등학교 교감이자 작가로,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써요. 또 날마다 블로그와 카페를 관리해요. 수많은 밴드와 카카오스토리, 카카오톡,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이버공간에서 친구를 만나요. 연세로 보면 분명 아날로그(analog)세대인데, 이십대 젊은이보다 훨씬 디지털(digital)세대예요. 그런 아빠를 두고 엄마는, 허구한 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고, 인터넷에 매달린다고 지청구를 해요.
그렇지만 아빠의 하루 생활을 살펴보면 가히 자랑스러워요. 학교 일 외에도 하시는 일이 너무 많아요. 무엇보다 먼저, 밥 짓고, 반찬 만드는 일을 도맡아요. 물론 엄마도 하시는 일이지만, 아빠가 싱크대 앞에 서는 일이 더 많아요. 그런 까닭에 서울에 떠나 사는 형도 집 밥이 최고라고 엄지 척해요. 날마다 음식냄새를 맡하야 하는 행자도 아빠가 손수 지으신 밥상이 최고예요.
그럴때면 행자는 그 음식을 맛보고 싶어 안달해요. 그렇지만 보호자는 야속하리만치 냉정해요. 그 이유는 단하나, 강아지가 사람 먹는 음식을 먹으면 수명이 단축된다나요. 더욱이 소금기가 든 먹이를 먹으면 안 된대요. 아시죠? 보고도 먹지 못하는 그 비애를. 그건 잔혹한 고문이에요. 엄지 척하는 음식을 단 한 번도 맛보지 못하다니요. 그러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행자는 음식에 관한 한 불만 없어요. 보호자가 그처럼 관심 갖고 행자를 사랑해주시니 속이 든든해요.
두 해 동안 함께 살면서 보호자로부터 사랑 듬뿍 받았어요. 오죽하면 집에 찾아오는 분이 대뜸 그랬겠어요. “행자는 전생에 지구를 구했나 보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자주 듣다보니 뿌듯해요. 그만큼 행자가 사랑을 받는다는 얘기아녜요? 분명 행자는, 저 세상에서 참 좋은 일을 하고 다시 태어났나 봐요.
|박종국 다원장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