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교육이야기/함께하는교육

[박종국의 교육단상]교권부터 바로 세워야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5. 1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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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교육이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박종국의 교육단상]교권부터 바로 세워야

박종국

며칠 전, 친구를 만났다. 그는 35년 경력의 중등교사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에 바빴다. 그런데 대뜸 그가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학생이 수업 중에 떠들고, 욕설을 밥 먹듯이 하며, 저지하려 해도 인권 운운하며 전혀 따르지 않는다고 토로 했다.

더구나 “이제 학교교육은 깡그리 무너졌다. 선생이 학생을 지도할 수가 없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나도 교사의 권위가 급격하게 추락했다는데 공감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대는 지났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졌고, 오히려 상해와 폭행, 모욕 등 교권침해 사례가 해마다 증가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는 아직 건강하고 순수하다.

올해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16∼2020년 교권 침해 건수가 총 1만1495건에 달했다. 연평균 2229건으로 하루에 6.3건꼴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등교수업 감소와 학생·학부모와의 갈등, 지역사회 민원을 고려해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에 올리지 않은 건 수 등을 포함하면 이보다 더 많다.

최근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사례가 늘어나 교단을 위협할 정도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교사가 교권 추락을 체감하며 학생을 가르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문제 학생은 갈수록 늘어나고, 수업을 방해하거나 교권을 침해해도 교사가 자신에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학생이 증가했다. 학생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학생의 의무와 책임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됐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명백한 교권침해의 경우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가 절반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많은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협박,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고통받았다. 수업방해, 폭언·욕설, 폭행 등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증가도 간과할 수 없다.

올해 2월, 동갑내기 친구가 명예퇴직을 했다. 서너번 교권침해사례를 겪고 더는 아이들 앞에 설 수 없다고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초임발령 동기였기에 의연하게 교단을 지키자고 강권했지만, 끝내 마다했다. 실로 남의 일이 아니다. 그나마 나는 행복한 교사였다. 왜냐? 아직껏 단한번도 교권침해로 교직을 그만두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최근 교원 54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4%가 교원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다. 65.6%는 교권이 보호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는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급증하는 사유가 교권침해와 무관치 않다. 결국 숱한 교권침해는 교사의 사기저하로 이어졌다.

올해도 정년을 다 채우지 않고 교편을 내려놓은 교사는 지속적으로 늘었다. 최근 5년 사이 명예퇴직 교사가 2배 이상 급증했다. 이제 교권 추락에 따른 상실감과 피로감은 교사가 교단을 등지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미래의 동량을 키우는 교사, 소명의식을 갖고 교육에 헌신는 교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 우리교육이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교사는 이제 교실에서는 학생에게 무시당하고, 퇴근 후에는 학부모의 민원 전화나 카카오톡 메시지에 시달린다. 그 고충을 호소하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도 늘었다. 그래서 현장 교사는 학생인권조례 도입이 교권침해와 무관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분명 학생의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교육 현장이 바로 서야 한다. 그렇다고 학생 인권 보장이 교권침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학교 교육을 이끌어가는 교사의 권리도 학생의 인권 못지않게 중요하다. 때문에 쟁점인 교권회복과 학생인권조례가 조화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 교육현장, 분명 문제가 많다. 그 모든 걸 교사, 교육자, 교육정책 당국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그 책임성이 너무 크다. 교육주체의 공동사고가 필요한 때다.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인권도 중요하지만, 교권이 먼저 제자리매김되어야 한다.

교사가 긍지와 보람으로 일할 때 교육이 바로 선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