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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똥은 누가 치우나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7. 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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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다원장르작가)
장맛비가 활짝 개어서 그런가, 오늘 아침은 유난히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그중 까치소리는 으뜸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알았다. 하지만 단지 텃새일 뿐 흉조라는 그 내막을 듣고는 까마귀보다 꺼려지게 되었다.
과수원을 하는 지인은 해마다 애꿎게도 까치와의 전쟁을 치뤄야 한단다. 하필이면 이 놈이 잘 익은 과일만 골라서 흠집을 낸단다. 그러니 천부당만부당 해를 끼치는 조류다. 지역 농협에서도 까치를 포획하면 마리당 상금을 지급한단다. 그러나 영악한 까치를 잡는 게 쉽지 않다. 때문에 농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상품을 까치에게 내놓아야 할 판이다.
흔히 새를 분류하는 한 방법을 길조와 흉조로 나뉜다. 격세지감이지만 어느새 까치가 참새를 제치고 흉조가 되었다. 그래서 일까. 나도 어느 때부터 까치 때문에 고민이 깊은 친구를 위한답시고 시시때로 까치가 울어도 그냥 데면데면했다. 그 소리는 단지 자기 종족을 보호하기 위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음일 뿐이라고.
그런데 오늘 아침 인터넷서핑을 하다가 페이스북에 올려진 어느 분의 글을 읽다가 화들짝 놀랐다. 반려동물 천만시대라며 강아지고양이를 키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세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 또한 강아지를 기른다. 그저 키우는 게 아니라 늦둥이처럼 애지중지하며 온갖 정성을 다한다. 오죽하면 '그렇게 강아지한테 쏟는 정성 연만한 부모님께 1/10만 위해봐라. 천하에 효자가 되지' 순간, 뜨끔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반려인은 누구랄 거 없이 키우는 반려동물에게 헌신적이다. 아니, 너무 지나치다. 이건 그 누구도 나는 아니라고 강변하지 못할거다. 현재 반려인의 모습을 모면 그 이상이다. 그런데 항변글을 올린 페친의 말씀은 너무나 치졸한 반려인의 태도를 꼬집었다. 공원이나 산책로에 강아지랑 거닐면서 강아지가 누는 똥을 치우지 않는 얌체반려인이 많다는 얘기다.
"(개똥은 누가 치우나?)
새벽 운동길에 나서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을 자주 만난다. 개 대접이 후하다. 의료비가 사람보다 더 들어간다는 말도 들었다.
개에게 보내는 사랑을 누가 탓하랴만 생각할 점이 있다. 큰 개를 동반할 때는 줄을 단단히 조여야 한다. 주인한테 보이는 행동과 타인에게 보이는 행동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길에 내갈기는 개똥 처리이다. 남이 보면 치우고, 보지 않는다고 내팽개치는 사람은 개를 키울 자격이 없다.
새벽 운동길, 보도에 널브러진 개똥을 보면 크게 실망한다. 실수하여 밟기라도 하면 어쩔 셈인가. 주변의 흙을 끌어와 덥기는 했지만 불쾌한 감정을 떨치기 힘들었다."
구구절절 따끔한 일침이다. 반려인이라면 마땅히 귀기울여 듣고 반성해야 한다. 아무리 개가 좋다고 하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공원을 비롯한 근린생활시설을 이용하려면 지적처럼 채변봉투와 목줄에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한다.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싫으면 남도 싫다.
그래도 요즘은 지자체가 나서서 반려동물에 대한 조처를 담당해줘서 반려인의 한 사람으로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그 덕분에 강아지랑 공원 산책을 함께 한다. 부탁하건대 이번 기회로 모범반려인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강아지가 응가를 하면 눈치보지 말고 당연히 용변을 치우는 준칙을 지켜야 한다. 남을 험오스럽게 하는 강아지, 목줄도 마찬가지다.
바람직한 반려인의 책임감을 기대해본다.
|박종국에세이칼럼 202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