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모작
인생 3모작
박 종 국
일찍이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쉽지만,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누구든 늙게 마련이다. 평균수명이 늘어났다지만, 늙지 않는 사람은 없다. 늙음은 보편적인 자연현상이다. 그러나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선택이다. 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주변에 그냥 늙어가는 사람은 많아도 아름답게 늙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그 일이 어렵다는 얘기다.
아름답게 늙으면 그 삶의 질은 윤택해지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좋다. 젊은이에게 스스로 본 받을만한 위치가 된다.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먼저 늙음을 방해하는 요인부터 알아야 한다. 알면 극복한다. 무엇보다 자기 세계가 없으면 더 빨리 늙는다. 이는 아름다운 노년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인이다.
아름답게 늙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늙음을 좋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자세이다. 누구나 늙는다는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 자기의 늙음을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다시 젊어지기를 바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애써 젊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세상을 살아보면 분명 인생은 나이에 따르는 즐거움이 많다. 나이대로 산다는 게 그 뜻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년의 삶이 가장 개성적이고, 자기 주체적인 삶이 가능한 시기다. 자유스럽기 때문이다.
노년의 삶에서 수용만큼 수분(守分)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현재 자기 처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고, 자기 관리가 뭔지 알아야 한다.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을 보면, 특히 내놓아라 하던 고위직 인사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현재를 살면서 그 생각이 옛날에 미친다면 그건 비극이다. 지금 선 내 자리가 현실이고, 스스로 그 자리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름다운 노년은 과거와 단절하는 용기다. 과거에 연연하면 지금을 충실하게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제 분수를 깨달아 아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수분하는 자세에는 자기 철학이 확고해야 한다. 한탄과 넉두리는 자기 자리를 모르기 때문에 표출되는 약점이다. 자기 처지와 분수를 아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아름답게 늙음은 결국 품위를 갖추는 일이다. 품위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기품이다. 기품은 노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특히 노년 생활에서 크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품위는 존경받는 인격적 자세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품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는 새로운 도전은 필수다. 예전 같으면 인생2모작을 얘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생3모작을 해야할 때다. 1모작이 가족을 위해 일했고, 2모작은 사회공헌에 헌신했다면, 3모작은 자신에게 밀착해야 한다. 현역이었을 때는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도전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거기에 열중하다 보면, 그 노년은 저절로 아름답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그림을 시작한 칠순의 할머니가 미술공모전에 무려 다섯 번 입상이나 했다. 그 분은 자기의 재능을 모르고 지내다가 지금은 화가가 되어 전혀 딴 사람으로 산다. 정년퇴임 후 섹소폰 연주자로 활동하는 선배가 부럽다.
이렇듯 나이가 듦은 아름다운 주름살을 만들기 위해 보다 관심을 가져야할 시기다. 스스로 나이가 들었음을 인정한다면 그 순간부터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늙어가며 아름다운 주름살을 가진다면 그것은 나이 듦이 고통이 아니라 축복이다. 나이 들었다고 억울해 할 게 아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그 어떤 세파에도 지워지지 않는 느긋하고, 선한 얼굴 표정을 새겨야 한다. 그것이 내 스스로가 인생에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이다.
늙으면 뭐하지? 그냥 생각을 단단하게 갖지 않으면 나이 드는 게 억울해진다. 그냥 막걸리 물 탄 듯 그저 단조로운 삶은 단지 밥벌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멋지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나이 듦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 세월은 살같이 빠르다. 그냥 덧없이 흘러가고, 쇠퇴하고, 사라져야한다면 추운 겨울 낡은 외투를 걸친 사람처럼 얼마나 쓸쓸할까.
지천명, 중년은 스스로의 얼굴에 인생에 대한 향기와 아름다운 여운을 새겨할 시기다. 중년의 삶은 인생의 전환기로, 남은 30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챙겨보아야 할 시기다. 노년을 살자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게 경제적인 능력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회적 활동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그게 젊음과 나이 듦의 차이가 아닐까? 여행을 떠나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데도 나이가 들면 더 적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정년퇴직으로 일상적인 삶에서 은퇴로 노후를 설계는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놓아버리는 어처구니와 다름없다. 정말 나이 들어 할 일 없이 하루를 보낸다면 끔찍한 일이다.
아름다운 노년을 사는 사람은 결코 끈 떨어진 연처럼 세상을 놓지 않는다. 오히려 죽을 때까지 세상일을 꼭 붙들고 산다. 언제나 ‘현역 노인’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성으로 죽을 때까지 밝게 일한다. 아름다운 노년의 삶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이권에 너무 눈이 멀어 이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런 삶은 구태의연한 욕망이다. 그런 하찮은 삶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일을 통해서 경제 외적인 의미로 인생의 깊이를 느끼며 살아가는 노년을 추구해야한다. 사랑하는 일도 보다 열정적이어야 한다.
그저께 부랄 친구 대여섯 모인 자리에서 불쑥 우리 늙으면 이 담에 무엇 하지? 하는 얘기가 나왔다. 다들 철부지적 동심으로 돌아가 어울리며 살자고 입을 모았지만, 명답은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 늙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뭔가 푹 빠질 만한 일을 찾아야한다는 데 공감했다.
인생3모작은 앞으로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지천명, 인생의 중턱에 걸친 나이, 이담에 늙으면 무엇 하지? 하는 고민에 닿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미래를 꿈꿀 나이다. 어느 95세 할아버지가 생신을 맞은 날 10년 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종국에세이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