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풀향기
상처 받은 풀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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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사람이 상처를 받으면 비명을 지르거나, 욕을 하고, 화를 낸다. 때로는 좌절한다. 그러나 풀은 상처를 받으면 향기를 내뿜는다.
그 향기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바람에 쓰러지고, 비에 젖고, 찬서리에 떨어야 한다. 땅 밑까지 휘어지고, 흙탕물에 젖어도 꺽이지 않아야한다. 보살펴 주는 이 없는 거친 들판에서 억센 발에 짓밟혀도 다시 솟구쳐야한다. 고통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오해와 억울함에 변명하지 않고, 의연하게 제 자리로 일어서야한다.
풀의 향기에는 살을 에는 아픔이 묻었다. 그러나 풀은 탓하지 않는다. 그저 은근한 향기로 미소지을 뿐이다. 상처는 다 아픔과 독기가 되는 줄 안다. 그러나 향기도 상처가 된다. 상처가 향기가 되면 가슴저린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상처 받은 풀이 내뿜는 향기는 상대를 감동시키고 취하게 한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도 향기를 묻혀 준다. 향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찍는 도끼는 원수다. 그럼에도 향나무는 자신의 아픔을 뒤로 하고, 원수의 몸에 아름다운 향을 묻혀 준다.
그 피아의 구별이나 원망은 사라지고, 관용과 이해만 가질 뿐이다. 진짜 향나무와 가짜 향나무의 차이는 도끼에 찍히는 순간 나타난다. 평소 겉모습은 같아 보인다. 그러나 고통과 고난이 닥치면 진짜 향나무는 향기를 내뿜는다. 하지만, 가짜는 비명만 지르고 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내품는 향기와 비명에 따라 그 품격이 결정된다. 내가 세상을 향해 나쁜 향을 뿜으면 남만 상처를 받는 게 아니라, 나도 해를 입는다. 결국은 그 독기가 나에게로 되돌아 온다. 상처와 분노를 향기로 뿜어야 나도 향기로워진다.
세상을 좋게 사는 사람을 보면 흐뭇하다. 참 좋은 향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깊은 향기, 아름다운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박종국_에세이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