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상무님과 아줌마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3. 1. 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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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님과 아줌마

한세희

서울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엘리베이터에 탔던 주민과 그곳을 청소하던 아주머니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작은 공간의 바닥을 닦으면서 아주머니는 거기에 섰던 한 여자에게 “아줌마, 좀 비켜주세요”라고 말한 게 화근이 되어, 서로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결국 언성을 높이는 싸움으로 번졌다.
여자는 엘리베이터에 탔던 청소 아주머니가 자신을 ‘아줌마’로 함부로 부른데서 불쾌했고, 아주머니는 청소에 협조하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움직이지 않는 ‘아줌마’가 못마땅했다.  

자신을 ‘아줌마’로 불러서 기분이 상했던 여자는 결국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녀는 대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이제 막 정년을 맞은 사람이었다.
평사원으로 입사해 3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하면서 임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 업계에서는 입지 전적의 인물이었다. 그녀는 높은 연봉을 받고, 뭇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며, 매일 아침 집 앞으로 운전기사가 그녀를 데리러 왔다.
이런 자신을 마치 헌신짝 취급하듯이 ‘아줌마 저리 좀 비켜요’라고 했으니, 여자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높은 사회적 명성을 누리던 사람이 퇴직 후, ‘명함이 없어진 삶’을 받아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늘 자신의 이름 앞에 소속과 직위를 넣으면서 자신이 누구 인지를 밝히는 게 당연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어떤 기관에 소속이 되었을 때 이야기고, 그 건물 밖으로 나오면 그냥 아줌마, 아저씨일뿐이다.

스스로 ‘낮아질 줄 모르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계급장 떼고, 자신 또한 한갓 아줌마, 아저씨로 불리는 존재라는 걸 모르고, 그저 지구에 잠깐 왔다가는 먼지 같은 존재 자체로 자신을 대면하는 일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상무님과 아줌마 사이에는 아무런 존재론적 격차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힘든 시대를 산다.

|페친 한세희 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