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대한민국 국민
착한 대한민국 국민
박종국(에세이칼럼니스트)
'착하다', '착한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 좋다. 그러나 이 착하다는 말의 내용은 무엇일까? '착하다'는 준거는 무엇인가? 착하다는 곱고 어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 본질을 알아보기 전에 니체의 도덕적 계보학(도덕의 족보를 따지드는 학문을 도덕적 계보학이라고 한다)을 뜯어보아야 한다. 도덕적 계보학이란 공리적 윤리학의 범주도 아니고, 메타적 윤리학도 아닌데, 왜 우린 어떤 행위를 착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도덕적 계보학은 주인의 윤리와 노예의 윤리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주인의 윤리학이란, 자신의 장점을 부각하고,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히고, 어딜 가서든 품위를 잃지 않으며, 남을 크게 개의치 않고, 더러운 걸 멀리하며, 지식이 넘치며, 이성적이고, 교양이 넘친다. 반면에 노예윤리학은, 자신을 희생하고, 봉사하며, 남에게 무엇인가를 나누고, 나보다 다수를 챙긴다. 더욱이 자신은 제앞가림도 못하면서 재벌과 정치가를 위해서 무한 헌신하며 부추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사회는 노예의 윤리학에 도달했다.
안타깝게도 이 노예의 윤리학은, 18세기 기독교에서 시작되어 근대철학에 뻗히고, 뭇 사람의 골수에 깊게 박혔다. 현재 우리사회 수구보수가 지향하는 바와 같다. 곧죽어도 섬긴다. 그들에게는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다. 그저 부나미처럼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주군을 모신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노예의 윤리학은 집단지성으로 세뇌되어 주인 윤리학을 가진 이들을 죽이려 든다. 여태껏 한국적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 얼마나 많은 민주투사가 처절한 옥고를 치렸으며, 초개같은 목숨을 받쳤는가. 그런데도 노예의 윤리학에 빠진 이들은 하나로 뭉쳐 자신의 뜻과 달라도 단체의 뜻을 맹신하며 따른다. 자신은 없어져도 나쁜 다수가 되어 앞서나가는 주인의 윤리학을 지닌 이들을 경계한다.
여기서 노예 윤리학을 가진 자의 한계이자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주인 윤리학을 가진 진보성향의 인사는 자신이 도전하는 일에 모름지기 티를 낸다. 또한 자신이 이뤄낸 사실에 대해서 소신껏 드러낸다. 그러나 노예 윤리학의 소유자는 이를 건방지고, 오만하며, 잘난 체하는 못된 이로 애써 폄하해버린다. 그러면서도 노예 윤리학을 가진 얼치기는 그들을 동경한다. 또 속으로는 증오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그들을 두려워하면서 눈치를 본다. 그게 수구보수주의 자의 한계다. 게다가 무의식적으로 주인 윤리학이라 보이는 모습을 조금씩 행한다. 자신을 과시하며, 간혹 단체에서 혁명을 일으켜 주인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이들 노예 윤리학의 소유자는 모순적인 집단이며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니체는 이런 노예 윤리학을 벗어둔 채, 서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며 자랑하든 무엇을 하듯 신경 쓰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주인 윤리학이 중요하다'하고 포효했다. 노예 윤리학에 따르면 사람은 종교인, 권선징악의 물 마니아, 히어로물을 좋아하는 오타쿠로 충분하다. 어쩌면 서로 돕고, 공리적 행복을 일으키고, 사랑을 베풀고 나누는 일련의 일을 우리 인생에서 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이건 노예의 윤리학을 따르는 이들이 가지는 우월감에 빠지는 사치의 모순이 아닐까? 그들은 지금도 자신이 우러러 사랑한 주군이, 자신을 처절하게 짓밟은 재벌이 자신의 희망이라는 환상에 빠져 산다.
지난 일년동안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누군 이 일을 '얼척이 없다'고 했다. 필자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비분강개하고, 공분을 터뜨려도 소용없다. 이미 노예 윤리학의 소유자가 싸질러놓은 망나니짓일 뿐, 그렁그렁 엎질러진 물이다. 더욱이 성토하고 싶은 일은 이렇게 짓밟히고 살면서도 그 처참한 고통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낱 권력자가 국민은 개돼지라고 했을 때, 그 누구 응분을 토로했는가? 아니다. 그냥 개돼지로 읖조려지냈을 뿐이다. 너무나 착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쩌면 나를 포함해서 그 모두가 주인 윤리학으로 살기보다 나쁜 윤리학에 안주해서 사는 게 아닌가.
경제가 나락에 떨어져도 발만 동동 굴렸지 정부를 원망하지 않는 국민, 유류값이 날개돋힌듯 고공행진을 해도 이렇다 할 변죽 한번 끓이지 못하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국민, 당장에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라도 끄떡도 하지 않고 사는 국민, 너무나 착하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참고견뎌내는 위대한 국민, 그 심성, 너무나 어질고 곱다. 그래서 정치권력자는 편하다. 왜냐? 그 모두가 주인 윤리학으로 살기보다 나쁜 윤리학에 안주해서 사니까.
l박종국(한국작가회의_다원장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