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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의 고장' 창녕은 지금 고추 경매중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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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의 고장' 창녕은 지금 고추 경매중
[현장] 고추농사 잘 지어도 제 값 받는 사람 드물어
08.09.03 15:46 ㅣ최종 업데이트 08.09.03 15:47 박종국 (jongkuk600)

  
▲ 창녕오일장 고추시장 모습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녕은 '양파의 주산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양파 매기는 뜸하다. 그만큼 생업으로 죽자살자 양파를 재배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 이유는 단하나 중국산 양파가 물밀듯이 수입되어 가격경쟁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이제 창녕은 고추 집산지로 거듭나고 있다.
ⓒ 박종국
고추

3일 창녕장날. 꼭두새벽에 일어나 5시쯤 장마당으로 갔다. 요즘 한창 거래되고 있는 고추시장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헌데 웬걸 사위가 희붐한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트고 있었다.

 

오늘 장에 나온 주종은 마른 고추. 한때 양파의 시배지로, 본고장으로, 집산지로 그 명성이 자자했던 창녕, 하지만 이제 창녕양파는 군소정당 신세처럼 뒤란으로 내몰렸다. 죽어라 양파농사 지어봤자 똥값으로 그놈의 중국산에 밀려 맥도 못 춘다.

 

그 바람에 대부분의 농가가 마늘고추로 업종(?)을 전환했다. 이 때문에 창녕장날은 예전 같은 양파거래를 기대하긴 어렵다. 고추는 상종가다.

 

시장에서 김삼태(60, 창녕군 대합면)씨를 만났다. 첫 대면에 그는, 창녕의 토박이로 재작년부터 고추농사로 바꿨다고 쉽게 말문을 텄다. ‘더 이상 양파농사를 지었다가는 밥 빌어먹기에 딱 알맞다’는 게 그가 고추농사를 하게 된 동기였다. 오죽했으면 평생해온 양파농사를 포기했겠느냐고, 그나마 올해는 양파, 마늘보다 고추가 매기가 좋아서 살맛이 난다고, 숨통이 트인다고 다행스러워했다.

 

  
▲ 고추 경매장에서 만난 김삼태씨 시장에서 김삼태(60, 창녕군 대합면)씨를 만났다. 첫 대면에 그는, 창녕의 토박이로 재작년부터 고추농사로 바꿨다고 쉽게 말문을 텄다. ‘더 이상 양파농사를 지었다가는 밥 빌어먹기에 딱 알맞다.’는 게 그가 고추농사를 하게 된 동기였다.
ⓒ 박종국
김삼태

그는 장날만큼은 도소매 장사를 직접 한다. 바짝 마른 고추 800근에 에워싸여 있었다. 20근 비닐포대로 40포대다. 태양초였다. 설마 이렇게 많은 고추가 햇볕에 말린 태양초이겠나 싶어 은근설적 튕겨 봤더니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분명 태양초라고 거듭 자신했다. 다른 사람들이 갖고 나온 고추들과 눈대중으로 비교해 봐도 그의 고추는 색깔뿐만 아니라 꼬투리에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태양초와 구운 고추는 맨눈으로도 쉽게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달랐다.

 

그래서 장마당에 빼곡히 자리 잡고 있는 다른 상인의 고추포대를 훑어보았다. 그의 말마따나 어린아이 키만한 비닐 포대에 담긴 고추는 대개 보일러나 전기 건조설비로 구운 뒤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린 고추였다.

 

어쩌면 그게 더 빨갛고 통통하게 보였다. 흔히 태양초라면 고추를 따서 가을햇살에 말린 고추를 말한다. 그렇지만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한 두 근도 아니고 수백 수천 근을 어떻게 일일이 햇살에 말리겠나. 태양초만 고집하는 그의 말이었다. 그래서 요긴한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 구운 뒤 비닐하우스 안에다 말린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그것들이 태양초로 둔갑해서 고가에 팔리고 있다. 협잡이 같은 얘기지만 “이곳 고추포대 중에는 중국산 고추도 끼여 있다”며 김씨는 그릇된 상술을 안타까워했다.

 

  
▲ 토박이 농사꾼 감삼태씨가 밝히는 고추 구분법 창녕 토박이 농사꾼 김삼태씨가 얘기하는 고추는 '태양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태양초와 구워 말린 고추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맨왼쪽의 고추가 '청량고추(매운고추)'며, 가운데가 '태양초'다. 그리고 오른쪽의 고추는 보일러 건조시설로 구운 뒤 햇볕에 발린 일반적인 건조 고추다. 선뜻 색깔로 구분되지 않으면 고추 꼬투리를 보면 안다. 태양초의 고추 꼬투리는 색깔이 '노랗다.'
ⓒ 박종국
태양초

마른 고추는 거래나 유통 자체도 문제다. 창녕의 경우, 농협이 일정한 기간 경매를 보고 있으나, 농민들은 생산물량 전부를 매상하러 들지 않는다. 경매공정가를 신망하지 않은 탓이다. 현재 마른고추 상품(上品) 한 근에 6천 원 정도로 거래가 되는데, 경매를 하면 구전을 떼고 나서 손에 쥐는 게 탐탐치 못하다는 거였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바라바리 싣고 와서 소상인과 직접 거래를 한다고 했다. 김씨처럼 직접 도매상으로 나선 사람도 있다. 때론 기대 이하의 가격으로 거래를 끝내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장마당을 지키고 있는 게 제 값을 받기에 쉽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장마당에서 고추거래를 하는데도 암묵적인 관행이 있었다. 초로의 시골 사니들이 목숨같이 돌보며 가꾼 고추가 면피 같은 중간 상인을 만나면 그저 헐값에 강탈(?)당하는 경우가 있단다.

 

그 대상은 밤새 작업을 해서 이른 아침에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군내 버스를 타고 오는 노인네들이다. 각지에서 버스가 도착하면 소상인, 중간 상인할 것 없이 내려놓은 물건을 탐한다. 팔러 나온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제 멋대로 흥정 매기고 거의 뺏다시피 보따리를 들춰 메고 가버린다.

 

  
▲ 중간상인들의 암묵적 거래 모습 일반적으로 산지에서 생산된 고추는 농협 경매를 통해서 전량 수매된다. 하지만 대개의 농민들은 상인들과 직거래를 원한다. 구전도 구전이거니와 돈을 쉽게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약은 거간꾼들에게 당일 경매가에도 못 미치는 헐값으로 그저 뺏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 박종국
거간꾼

실제로 이들이 그날 시세보다 고추가격을 더 쳐주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시골 초로들이 장마당에 앉아서 팔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암묵적인 가격에 물건을 독차지해 버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뻔히 알면서도 눈 뜨고 근당 천원 정도를 도둑맞는다. 김씨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 군내 버스가 도착했다. 그 순간 소상인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었다. 먼저 싼값에 더 많은 물건을 취하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뒷맛이 참 구렸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팍팍하다 해도 저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데, 사람 같잖은 사람들이 많다.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득세하고 사는 세상이다. 조금이라도 농민의 고통과 애환을 안다면, 아니, 죽을힘을 다해 마지못해 살고 있는 농민들의 애절한 심정을 헤아린다면 정녕 그러지 못하리라. 애써 농사지은 고추를 등쳐먹겠다는 사악한 생각은 도둑 심보보다 더 나쁘다.

 

  
▲ 빼곡이 쌓아 놓은 고추 무더기 장마당에 고추포대들이 빼곡이 쌓였다. 이날 현장에서 거래된 고추량은 60여 톤(추정)으로 오전 5시부터 9시까지 모든 물건은 다 거래된다고 김삼태씨를 통해서 들었다. 포장단위는 20근, 30근, 50근이었다.
ⓒ 박종국
고추무더기

잘잘 끓는 여름 햇살 아래 고추는 실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그렇지만 요즘과 같은 가을 햇살을 담뿍 받아야 주머니가 곱게 붉어지고, 빨갛게 바짝 마른다. 햇살을 받아야 고추가 맵살스럽게 여문다니 가을이 고추를 키운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다. 예년과 달리 올해 고추는 가마솥 불볕 더위에도 잘 자라 제 값 받기에 충실하다. 한해의 소담스런 결실이 가지 끝에 총총 매달려 있는 풍경은 농부들의 마음을 충만케 한다.

 

  
▲ 오전 7시 고추가 거래되는 시장거리 고추파는 거리는 오전 6시경 가장 붐볐다. 그러나 7시쯤은 매기가 뜸했다. 상인과 농민간의 일종의 '가격조정기'라고 했다. 이 날 형성된 마른고추 가격은 상품이 근당 6천원이었다.
ⓒ 박종국
매기

그러나 아무리 밭농사 중에 고추만큼 수익이 나은 것이 없다 해도, 고추농사는 너무 손이 많이 간다. 육모를 키우는 것은 물론, 본밭에다 정식을 하고 나서 지주를 세우고, 한 나무 한 가지를 건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장맛비가 잦아지면 탐스럽게 영근 고추가 짓물러질까봐 마음 졸이고, 탄저병 세례라도 받으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뿐이랴, 하루 12시간 이상 고추를 따서 수확을 많이 해도 걱정이다. 말리는 데 들어가는 기름값을 감당키 어렵다. 더욱이 판매할 때를 노리는 거간꾼들의 계략에 더욱 힘겨운 거다. 그래서 아예 고추농사를 포기하는 농부들도 많다.

 

지금 창녕은, 고추 경매가 한창으로, ‘양파의 본고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런 가운데도 ‘농민은 봉인지’ 애써 가꾼 고추, 제 값 받고 파는 사람 드물다. 누굴 붙잡고 통탄할까.

 

  
▲ 창녕장을 가득 메운 고추전 거리 오전 7시 30분을 지나 고추파는 시장은 다시 분비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상품의 고추를 사기 위해 흥정에 열심이다. 그러나 지금 창녕은, 고추 경매가 한창으로, ‘양파의 본고장’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런 가운데도 ‘농민은 봉인지’ 애써 가꾼 고추, 제 값 받고 파는 사람 드물다.
ⓒ 박종국
흥정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그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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