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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감나무에 대한 추억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2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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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감나무에 대한 추억
감나무가 있으면 어디나 고향 같다
08.09.19 16:13 ㅣ최종 업데이트 08.09.19 16:14 박종국 (jongkuk600)

  
▲ 바알갛게 익어가는 감 올해는 철이 이른 탓에 아직 감이 채 익지 않았다.
ⓒ 박종국

아침에 출근하다 보니 길바닥에 아기 주먹만한 풋감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가지 채로 꺾어서는 내팽개친 것이었다. 더러 자동차 바퀴에 깔려서 깨어지고, 발에 밟혀서 으스러졌다. 이렇게 풋감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됐다.

 

나는 감이라면 떫은 감이든 홍시든 단감이든 무조건 좋아한다. 그것은 아마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감이 최고의 먹을거리였기 때문이다. 감을 먹으면 어린 시절 추억이 되살아나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그만큼 무르익는다. 내 유년의 감나무는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 주저리주저리 열린 풋감 올 같은 가움에도 감나무는 용케도 실한 감을 많이 달았다.
ⓒ 박종국
감나무

아이들에게 물었다. 어떤 과일을 좋아하느냐고. 그랬더니 사과, 배, 포도, 바나나, 파인애플, 오렌지, 멜론 등을 꼽았다. 그 외에도 수박과 토마토, 밤을 좋아한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근데 스물아홉 아이 중 어느 누구도 감은 좋아하는 과일로 들먹이지 않았다. 은근히 좋아하기를 바랐던 '감'은 아이들에 있어 과일 축에도 들지 않았다.

 

왜 요즘 아이들에게 감이 푸대접을 받게 되었을까

 

시골에 살면서 매일같이 감나무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에게조차 이제 감은 생뚱 맞는 과일이다. 감꽃이 피어도 아무도 그 떫은 꽃을 먹지 않는다. 밤새 떨어진 감꽃을 주워 목걸이를 만들지 않는다. 어린 시절, 지금처럼 장난감도 군입거리도 흔치 않았던 때 오유월경 아침에 눈을 비비고 감나무 밑으로 쪼르르 달려가면 샛노란 감꽃이 어김없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 자체가 먹을거리였고 장난감이었다.

 

떨떠름한 맛, 감꽃은 별맛이 없다. 그러나 그때 우리 조무래기들은 주워 먹고 또 주워 먹었다. 약간은 떫은 게 왜 그리도 맛이 있었을까. 그러다가 싫증이 나면 실오라기에다 총총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가지고 놀곤 했다. 요즘 아이들은 감꽃이 피어도, 아카시아가 흐드러지게 피어도 그 꽃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이 바쁘다. 늘 조급하게만 살아가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아이들에게 컴퓨터 모니터가 아닌 자연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게 오고 가는 계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까치들의 밥이 되어버린 농익은 감 풋감 중에서도 벌써 농익은 감은 까치들의 밥이 되어버렸다.
ⓒ 박종국
까치

햇살을 곱게 받아 제법 굵직하게 자란 풋감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시큼한 맛이 나는 찔레꽃, 물오른 소나무 껍질 송구, 잘근잘근 씹으면 단물이 돋아나는 잔데, 향긋한 아카시아, 빨갛고 심심한 맹감나무 열매, 까맣고 새콤한 정금나무 열매, '보리볼똥'이라고 불렸던 보리수나무 열매, 껍질 속에 하얀 알맹이가 오롯이 고개를 내밀던 개암나무 열매……. 우리 군입을 다시게 했던 자연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넘치는 음식과 과자부스러기가 우리 입을 까다롭게 만들어 버렸다. 단지 감 하나로 그 시절 입맛이 그립다고 왼다는 게 지나친 감상일까.

 

가을은 모든 식물의 열매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그래서 길을 가다 감나무 가지 위에서 감이 익어가는 풍경은 아름답고 정겹다. 비록 오늘 만나 감들은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았지만, 머잖아 감나무는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고 가지에 새빨갛게 익은 감을 주렁주렁 매달리라. 그것만으로도 감은 그리운 고향의 추억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감나무가 있으면 어디나 고향 같다

 

'감나무가 있으면 어디나 고향 같다'는 말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니다. 감나무에는 분명히 시간을 거슬러 우리 유년의 기억을 환하게 해주는 화수분 같은 분명한 마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 시골마을 어디를 가나 감은 그저 감일 뿐 아이들에게 어떤 기억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언제부턴가 감나무가 사람들로부터 잊히기 시작했다. 이미 도시화가 80퍼센트로 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 농촌 마을에는 고작 몇십 명의 나이 지긋한 분들만 감나무를 지키고 있다.   

 

오늘도 우리가 기억하는 고향의 감나무들은 밭 귀퉁이에나 논두렁, 더러는 허물어진 담장에 기대어 서 있다. 감나무는 세월의 풍상에도 언제나 아낌없는 주기만 하는 나무요, 고향의 품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운 나무다.

 

  
▲ 까치에게 입질 당한 풋감 까치는 감이 농익기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풋감도 맛이들었다 싶으면 콕콕 찍어댄다.
ⓒ 박종국
풋감

감나무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냥 대하고, 많은 것을 베풀어주기에 그 소중함을 잊어버렸던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감나무는 이제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를 기억하며 텅 빈 고향마을을 지키는 어머니처럼 혼자 담담하게 서 있다. 언제 다시 빨간 감나무 아래서 옛 추억에 젖어볼 날이 있으려나. 이 아침, 내 반 아이들에게 잊혀 가는 감나무의 기억들을 되살려 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종국 기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현재 창녕부곡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고 있으며,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 소리"에 알토란 같은 세상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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