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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준비로 권해보는 '끝물고추부각'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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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 준비로 권해보는 '끝물고추부각'
[박종국의 요리조리 2]고추의 또 다른 변신 '고추버무리'와 '고추부각'
08.09.06 12:19 ㅣ최종 업데이트 08.09.06 12:21 박종국 (jongkuk600)

  
▲ 끝물고추로 쪄서 만든 '고추버무리' 이즈음이면 끝물고추에 튀김옷을 입혀 쪄서 말린 '고추부각'을 준비할 때다. 겨우살리 준비도 김장 다음에 그만한 게 없다. 금방 쪄낸 고추를 말리지 않고 그냥 먹으면 그게 바로 '고추버무리'다.
ⓒ 박종국
고추부각

알곡 익는 소리 찰랑찰랑 댄다. 하지만 올해는 철이 이른 탓에 한가위를 코앞에 두었지만, 제사상에 오를 과일들은 아직 풀빛이다. 달력으로 계절을 따라잡기엔 뭔가 아귀가 맞지 않은 듯하다. 예년 같으면 추석 무렵 햇밤을 한 말이나 주웠다. 근데도 밤, 대추, 감이 저렇게 더디게 야물고 있으니 대목장 하나 보고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런데 이번 가을만큼은 고추농사가 ‘대풍작’이다. 고춧대 휘어지도록 빛깔 좋은 고추가 달랑달랑 매달렸다. 여름내 가마솥 불볕더위도 한통속이 되었고, 가당찮았던 장맛비도 크게 해작질을 하지 않은 덕분이다.

 

때문에 연일 바리바리 붉은 고추를 따내는 촌부들의 얼굴은 한낮에도 보름달이 떴다. 며칠째 돌아서면 발갛게 익은 고추를 따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12시간을 고추밭 이랑을 쫓아다녀도 시간이 부족하단다. 행복한 한숨소리가 고추밭 가득하다.

 

고추만큼 여느 음식과 찰떡궁합인 게 드물게다. 탱글탱글한 풋고추는 된장에 찍어먹거나 조려서 먹고, 마른 고추는 양념으로, 잎은 나물로 제 역할에 충실하다. 거기다가 이런저런 역할도 못하는 자투리 고추는 ‘부각’으로 신세를 고친다.

 

부각은 끝물고추를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묻혀 찐 후 다시 덧가루를 해서 햇볕에 까슬까슬하게 말린 것이다. 고추부각은 신경 써서 만들면 말리는 데 조금은 시간이 걸리지만, 겨울 먹을 양식으로 오래 두고 먹는 재미가 솔솔하다. 특히, 튀겨서 초간장이나 양념 소금해 놓으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간식으로, 반찬으로, 술안주로 금방 동이 난다.

 

요즘 시골 장에 가면 햇고추를 말려서 팔고 있다. 한창 고춧가루용 고추를 따서 말리는 시기인데, 벌써 부각고추가 나왔다는 것은 예상외다. 원래 부각용 고추는 발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리는 일이 끝나고, 날씨가 차가워졌을 때, 고춧가루용 고추감은 되지 못하고, 고춧대가지 끝에 손가락 한두 마다만한 것으로 사용한다. 끝물 고추다. 그것을 따다가 고추부각을 만들면 제격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고추를 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 요즘 보기 드물게 끝물고추를 만났다 아직 빠알간 고추를 딸 때다 그래서 끝물고추를 만나기 쉽지 않다. 용케도 창녕 장날 한 농가에서 갖고 나온 끝물고추를 2000원 주고 샀다.
ⓒ 박종국
끝물고추

그러나 엊그제 창녕장날 고만고만한 부각고추를 한 소쿠리 샀다. 좌판에 펼쳐진 모두를 안았는데도 2천원만 받았다. 하나 분질러 혀끝으로 맛을 보니 푸른 맛이 난다. 끝물 고추라기보다는 안 매운 고추였다. 시장을 쏘다녀도 그만한 고추는 또 없었다. ‘고추버무리’(우리 집 특유의 말리지 않은 고추부각)로 안성맞춤인 것이다.

 

반찬이 실하지 못할 때는 계절에 가리지 않고 ‘고추버무리’를 해댄다. 이것은 봄철 ‘쑥버무리’와 같은 요량으로 만드는데, 단지 햇볕이나 바람에 말리지 않는다는 것뿐, 고추부각을 찌는 것과 방법은 똑같다. 이번에 소개하는 우리 집 요리는 새끼손가락만한 고추로 만드는 ‘고추버무리’다. 간편하게 고추부각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다.

 

  
▲ 꼭지를 자르고 속을 반으로 가른 고추 고추버무리를 만들 때 꼭지를 떼내고 속을 반으로 갈라 속을 다 빼낸다. 그래야 쪄서냈을 때 깔끔하다.
ⓒ 박종국
고추버무리

먼저, 준비한 고추꼭지 부분을 따지 말고 칼로 살점까지 잘라낸 뒤 반으로 갈라 놓는다.  이때, 고추씨와 속을 말끔히 빼어낸다(피부가 여린 분은 비닐장갑을 꼭 끼어야 한다. 그렇잖음 매운 고추 맛이 손에 배어 나중에 손가락이 무척 아리다). 그리고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친다(그런데 매운 것을 좋아하면 데친 고추에다 밀가루나 찹쌀가루를 묻혀 그대로 찌면 되지만, 안 매운 고추부각을 만들려면 데친 고추를 넉넉한 찬물에 2,3일 정도 담가 우려내야 한다. 하루 두어 번 정도 물을 갈아주고 사흘 정도면 매운 맛이 거의 없어진다).   

 

  
▲ 살짝 데쳐낸 고추와 튀김가루 살짝 쪄낸 고추에다 튀김가루를 입혀준다.
ⓒ 박종국
고추

그렇게 담가두었던 고추를 바로 꺼내어 튀김가루(요량에 따라 밀가루나 찹쌀가루 선택)를 넉넉하게 입혀 바로 찜기(어레미)에 앉혀 5분 정도만 쪄준다. 이때 설익은 것처럼 하얀 가루가 좀 보이더라도 고추 전체에 튀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무르게 찌지 않는 게 좋은 고추부각을 만드는 강점이다. 이는 술을 맛나게 담그려면 고두밥을 잘 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여기까지의 과정이 우리 집에서 간편하게 즐겨먹는 ‘고추버무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후 요리진행을 마치면 고추부각이 된다.).

 

  
▲ 튀김가루를 적당히 입힌 고추 튀김가루를 적당하게 잘 힙혀야 보기좋고 맛 좋은 고추부각을 만들 수 있다.
ⓒ 박종국
튀김가루

쩌낸 고추는 뜨거울 때 훌훌 털어서 서로 엉겨 붙지 않도록 하여 널어둔다. 바람 잘 통하는 햇볕에 널어두면 채 1시간이면 꾸들꾸들해진다. 대략 서너 시간마다 손가락으로 고루 뒤집어준다. 그러나 햇볕이 나지 않으면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널고 선풍기를 켜두면 된다. 어느 쪽이나 3,4일 정도 말리면 까칠하게 잘 마른다.

 

  
▲ 찜기에 들어 앉은 고추버무리 가정마다 찜기 하나쯤을 있을 거다. 우리 집 찜기는 어찌나 많이 사용했던지 거무튀튀하다. 고추버무리가 찜기에 고이 들어 앉았다.
ⓒ 박종국
찜기

이렇게 잘 마른 부각은 밀폐용기나 비닐봉지에 싸서 보관하다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튀겨 먹으면 된다. 기름에 튀길 때는 부각의 색깔이 흰색을 띨 때가 가장 좋은 때다(자칫 한꺼번에 많이 튀기면 부각이 뭉쳐지거나 갈색으로 변해 맛깔이 무겁게 된다).

 

  
▲ 갓 쪄낸 고추버무리 찜기에서 5분여 찐 고추버무리, 하지만 이것을 햇볕에 내다 말려 튀기면 맛 좋은 고추부각이 된다.
ⓒ 박종국
부각

부각을 곱게 튀기는 비결은 180도의 기름에 넣자마자 꺼내는 거다. 30초 정도만 튀기면 바로 꺼내야 한다. 그래야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맛을 지닌 하얀색의 부각이 된다. 종종 누른 색깔을 띤 부각을 보는데, 그것은 정성을 들여 튀긴 상품(上品)이 아니다.  

 

  
▲ 먹음직한 고추버무리 김이 솔솔나는 고추버무리를 접시에 담았다. 밥 반찬으로, 술 안주로 제격이다.
ⓒ 박종국
제격

슈퍼나 대형 먹을거리 매장에 가 보면 여러 가지 부각들이 진열돼 있다. 그 중에는 중국산도 꼭 끼여 있다. 다들 일정하게 튀김옷을 입었고, 하얗게 잘 튀겨졌다. 하지만 무언가 정성이 결여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집에서 손으로 만든 투박함이, 아무렇게나 찌그러지고 뭉쳐진 흔적들이 없는 까닭이다. 아무렴. 사람 손맛을 비견할 수 있을까. 찬바람이 일면 겨우내 일용하며 먹을 고추부각을 넉넉하게 준비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미디어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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