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녘 알곡 여무는 소리 찰랑찰랑 대고, 산자락 알밤 툭툭 불거지는 소리 정겹다. 가을 문턱에 성큼 들어섰다. 오랜 가뭄에 팍팍했던 땅거죽도 간밤 곱살 맞게 내린 단비로 처연하다. 교정 느티나무는 벌써 완연한 가을빛으로 곱게 단장했다. 세 그루 은행나무는 예년보다 더 많은 은행을 가지마다 줄줄이 달았다. 푸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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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반 동혁이 믿음직한 아이다. 학급 일을 도맡아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더욱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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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날마다 건강한 아이들 웃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연다. 우리 학교는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까닭에 대부분의 아이들의 등교시간은 8시 30분경이다. 그런데 우리 반 두 친구는 다르다. 언승이와 동혁이, 녀석들은 거의 터줏대감이다. 또래 아이들이 인정한다. 꽤 일찍 출근하는 나지만 아직 한 번도 녀석들을 앞질러본 적이 없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쫑꾸기 샘 어서오세요.”
“그래, 반갑다. 오늘도 먼저 왔네.”
두 녀석의 힘찬 인사로 아침을 화사하게 맞이한다. 살맛이 난다. ‘쫑구기 샘’은 아이들이 편하게 부르는 내 별칭이다. 열세 살, 6학년 아이들과 나는 무려 삼십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다.
근데도 아이들과 나는 친근해서 동네 아저씨처럼 스스럼없이 지낸다. 가끔은 사소한 일로 서로 티격태격할 때도 있지만 그뿐이다. 아무리 속 나쁜 일이 있어도 아이들은 금방 헤헤거리며 다가든다.
꼬맹이들과 함께 지낸 지도 어언 25년째. 그 동안 좋은 일도 많았고 궂은일도 손가락을 다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았다. 하지만 지내놓고 보면 그때 그 추억이 참 아름답게 생각된다.
첫 발령지는 섬마을 거제도였다. ‘학산’초등학교, 전교생이래야 백여 명 남짓, 그 시절의 초등학교로는 아담하기 그지없는 학교였다. 6학년 내 반 아이들은 머슴애 여섯에다 계집애들 열둘, 햇병아리 선생이 순수하게 만나 참 좋게 보냈다.
나도 섬마을 총각 선생님일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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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깽이 현정이 우리 반 태깽이('태깽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토끼'를 말한다)로 자그마한 몸집에도 산을 잘 타고 야무지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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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사년을 머물다 진해, 울산, 남해, 창원을 거쳤다. 그새 이십 년의 세월이 후딱 지났다. 하지만 원래 농투성이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도회지 생활에는 항상 겉돌았다. 그래서 아예 고향땅으로 거처로 옮겼다. 벌써 칠년 째다. 숨쉬기가 한결 낫다.
시골의 생활은 한적하다. 그나마 하나뿐인 아들이 외지로 공부하러 떠난 지금, 학교에서 아이들과 시끌벅적하게 지내다가 집에 돌면 절집 버금간다. 때문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이 늘었다. 허나 가끔은 제자들이 찾아오거나 전화라도 받으면 뜬금없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그럴 땐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아련한 추억에 내가 먼저 몸을 떤다. 그래도 아이들의 바람은 한 가지다.
“선생님, 선생님은 평생 교사로 사세요!”
“선생님은 처음 뵈었을 때나 지금까지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이 좋아요.”
“선생님, 고마워요. 6학년 때 기억을 떠올리면 피씩 웃음이 나지 않는 일이 없어요.”
결코 팔푼이 같은 자화자찬이 아니다. 아이들의 다그침과 같이 여태까지 난 교사로서 오직 하나의 외길을 걷고 있다. 더러 동기들은 장학사로 교감으로 승진했지만 그다지 부럽지 않다. 누구한테나 제 삶의 준거가 있기에 내 것이 옳다고 네 것이 그르다고 따져들 게재가 아니다. 나에게는 평생 교사로 살겠다고 6학년 제자들과 다짐해 둔 언약이 있다. 그렇기에 지천명을 앞둔 지금도 평교사로서 아이들과 더불어 부대끼고 있다.
선생님은 평생 교사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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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칠하게 잘 생긴 대업이 녀석을 생각하면 '애어른' 같다. 그만큼 생각이 깊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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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활동하는 모습들을 담아보았다. 수업 중에 사진기를 들이대자 몇몇 녀석들은 초상권 침해를 운운하며 마다했지만, 결코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눈웃음으로 감지해 낸다. 무엇보다 우리 반 수업은 자유롭다. '섬머힐'이다. 그날그날마다 정해진 목표치를 달성하면 그 다음의 학습은 자의적으로 조절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해당 수업을 도외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선생으로서 충심으로 지녀야할 것은 무엇일까. 물론 도의적인 잣대를 흐리지 않는 것일 게다. 그보다도 교수학습의 장에서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아이들과 공감하며,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칭찬하는 것이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인정’과 ‘칭찬’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을 아이답게 키우는 보약이다. 아이들한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칭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 하루도 아이들과 부대끼며 보냈다. 모두와 똑같은 사랑을 나누지 못했지만, 아이들 하나하나 눈 마주치자 이름을 다 불러주었다.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보내는 변함없는 사랑이다. 조금 힘들어하고, 피곤해 하는 아이들을 부추겨주고, 까닭 없이 방방 대는 녀석들은 따끔하게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래봤자 눈 까딱도 하지 않을 아이들이지만, 간혹 지청구를 들을 때면 입 꼬리가 샐룩거리는 아이들 표정이 여간 앙증맞은 게 아니다. 그 때문에 난 언제까지나 초등학교 평교사로 만족하고 사는 것이다.
‘선생이 선생답다’는 것은 무얼까. 그것은 바로 아이들 곁에 있을 때다. 아이들도 그런 선생을 원한다.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담임이 여느 선생님들보다 나잇살이 많은데도 그걸 탓하지 않는다. 그만큼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 대한 ‘친밀감'이 높은 것이라 자부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세상이라면 그곳이 어딘들 즐겁지 않을 까닭이 없다.
“쫑구기 샘, 잘 가세요.”
“선생님, 낼 또 만나요.”
교정의 느티나무 때깔 좋게 하늘거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당찬 하루였다. 내일은 보다 일찍 출근해서 언승이와 동혁이를 먼저 맞아야겠다. 벌써 녀석들의 생뚱맞은 얼굴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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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어 <읽기>시간 혜진이와 아정이 열심이다. 혜진이와 아정이 둘다, 책을 골똘하게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이 여간 미덥지 않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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