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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 이 탑은 첫인상이 석가탑을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이중기단 위에 삼층탑신을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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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7일) 모처럼 집안에서 보내다 오후 짬을 내어 '창녕술정리동삼층석탑'을 찾았다. 그동안 석탑 주변이 많이 변해 있었다. 우선 동탑과 이웃해 있던 민가들이 대부분 철거되었고, 거기다가 탑 앞을 지나치던 찻길도 우회도로를 만들어 차량진동에 의한 탑을 보호하려는 듯 많은 관심을 쏟은 흔적이 역력했다. 아직은 주변경관이 정비되지 않았지만, 문화재지역으로 일제 정비하는 것으로 보아 동삼층석탑이 국보다운 대접을 받는가 싶었다.
창녕은 ‘비화가야(빛벌)’ 또는 ‘비사벌’로 불렸던 지역으로, 신라 진흥왕 순수비와 삼국 시대 고분이 밀집되어 있어 일찍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아 온 곳이다. 이 탑의 명칭에 동(東)자를 붙인 것은 이곳 술정리에는 2기의 석탑이 있어,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탑을 동탑, 서탑이라고 붙인 명칭이다. 서탑은 동탑 절터에서 1㎞ 정도 떨어진 또 다른 절터에 있다. 현재 절 이름은 알 수 없으며, 절터에는 일찍부터 민가가 있었으나 다른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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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정리동삼층석탑구조도 술정리동삼층석탑구조다. 그러나 구조도에서 지금은 아쉽게도 현재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그렇지만 탑이 크고 짜임새가 장중하고 훤칠해 기품 있게 보인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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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탑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4호로 지정되었는데, 이 탑은 첫인상이 석가탑을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2층 기단 위에 세워진 탑의 높이 5.75m이며, 기단 주변에는 탑을 구획 지었던 탑구(塔區)가 마련되었다. 대석과 하층기단 면석을 1석으로 하고, 하층 기단 갑석(甲石), 상층 기단 면석과 갑석은 모두 별석으로 하되 각부를 수 매의 석재로 구성하였다. 기단에는 위, 아래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탑신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수평을 이루던 처마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가 간결한 모습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다. 아쉽게도 현재 탑의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그렇지만 탑이 크고 짜임새가 장중하고 훤칠해 기품 있게 보인다.
세부양식에 따르면, 신라 석탑의 전형을 따랐으며, 작풍(作風)에 있어 장중명쾌(莊重明快)한해 기품이 있는 석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하는 각부(各部)의 수법도 통일신라 초기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견되는 작품으로 제작 시기 또한 석가탑과 비슷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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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삼층석탑 기단 제법 너른 기단은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인지 번질거리는데 진흙빛이 군데군데 물들어 있고, 패인 홈도 곳곳에 보인다. 비록 많이 훼손됐기는 했지만 전체가 매끄럽고 장중한 기풍이 그대로 묻어 있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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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탑을 해체, 복원할 당시 3층 몸돌에서 부처님 진신 사리를 모시는 용기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3층 탑신 윗면에는 네모진 사리공(舍利孔)이 있어서 뚜껑모양의 청동잔형용기(靑銅盞形容器)와 담황색의 수정사리병, 청옥색 유리구슬 8개, 향나무편(片) 등이 나왔다. 수정사리병은 전국에서 9개 밖에 없는 희귀한 유물이며, 이 중에서 특히 담황색 사리병은 이곳의 사리병이 유일하다고 한다.
탑에 대한 문외한이더라도 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로 올라가면서 적당한 비율로 줄어드는 몸돌로 인해 충분한 안정감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세부적인 수법도 정교하여 불국사 삼층석탑과 비길만한 기품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동탑은 삼국시대부터 신라 영역에 속해있던 창녕의 지역적인 특성으로 볼 때, 경주 중심의 탑 건립 경향이 지방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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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탑삼층석탑 주변전경 오륙년 전부터 탑 주변 일대에서 문화재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탑과 인접한 민가들은 모두 철거됐으며, 문화재보호 철책이 설치되었다. 탑 주변은 널찍한 공감이 확보되어 있고,새파란 잔디가 깔렸다. |
ⓒ 박종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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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동탑의 관리가 엉망진창이었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탑 위에 올라가는 것은 예사였고, 창녕 시장이 가까워 어른들의 술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개가 몰려다니며 똥을 무더기로 싸놓을 정도였다. 국보 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문화재에 대한 관리나 관심이 부재했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 동탑의 모습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오륙년 전부터 탑 주변 일대에서 문화재 발굴이 진행되고 있고, 탑과 인접한 민가들은 모두 철거됐으며, 문화재보호 철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탑 주변은 새파란 잔디가 깔렸고, 왕래가 잦았던 찻길도 멀찍이 우회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야말로 이제는 국보다운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지자체나 문화재청이 이처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똑같은 문화재도 다른 모습으로 살아나는 것이다. 어디 장중하고 기품 있는 '삼층석탑'이 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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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문화재정비사업으로 깔끔하게 된장된 동탑 래가 잦았던 찻길도 멀찍이 우회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야말로 이제는 국보다운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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