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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2019 비정규직 잔혹사’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초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경남어린이시인학교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0. 4. 2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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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2019 비정규직 잔혹사’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초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화제의 책]‘2019 비정규직 잔혹사’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초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우리가 옳다!
이용덕 지음
숨쉬는책공장 | 292쪽 | 1만6000원

 

[화제의 책]‘2019 비정규직 잔혹사’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초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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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영업소 캐노피에서 바라본 양쪽의 불빛은 달랐습니다. 건너편 분당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는 밤에도 환했습니다. 평온했습니다. 서울영업소 주위를 빼곡히 둘러 찬 숱한 텐트들은 어두웠습니다. 불안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 자체가 늘 불안했습니다.”


지난여름, 경기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는 유난히 뜨거웠다. 비정규직으로서 겪었던 고용불안과 차별, 그리고 마땅히 옳은 일을 행하지 않는 한국도로공사와 정부에 대한 분노가 환한 아파트 불빛 아래 이글거렸다. 41명의 톨게이트 요금 수납 노동자들이 그곳에 있었다.


법원은 용역업체 비정규직 신분인 요금 수납원을 도로공사가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도로공사는 자회사 전환만을 밀어붙였다. 자회사로 가지 않는 노동자들 앞에는 ‘해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부당했다. 위험을 무릅쓴 고공농성은 그렇게 시작됐다. 투쟁은 7개월간 이어졌다. <우리가 옳다!>는 자회사행을 거부하고 싸움에 나선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의 목소리가 담긴 치열한 기록이다. 노동운동가 이용덕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그 7개월의 시간을 생생하고 우직하게 적어냈다.


“누구의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서 살았는데 이제는 나로 한번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남편이 꼭 해야겠느냐고 해서, 내 직장이고 소중한 직장인데 당당하게 계속 다니고 싶다고 했어요. 당신한테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해를 구하는 거다, 이랬더니 아무 말도 안 해요.”


톨게이트 노동자 80% 이상은 여성이다. 3교대 근무라 가족을 챙기며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요금 수납원 일을 시작한 40~50대 여성 노동자들은 뜻밖에 투쟁의 중심에 섰다.


노숙농성이 뭔지 몰라 현장에 ‘고데기’를 가져오던 그들을 집 아닌 거리로, 도로공사 본사 앞으로, 청와대 앞까지 데려간 것은 몸에 박힌 끔찍한 고용불안과 차별의 기억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온전한 ‘나’로 살지 못했다. 집에서는 “3교대 근무하면서 시간 쪼개고 잠 덜 자고 살림하고 애 돌보고. 그래도 아이한테는 엄마의 빈자리가 클 거라고 걱정”하며 전전긍긍했다. ‘엄마’ 혹은 ‘아내’란 이름은 직장에선 ‘비정규직’으로 치환됐다.


2008년 도로공사는 정규직이었던 요금 수납원의 전면 외주화를 결정한다. 먼저 내몰린 이들은 여성이었다.


“여자 수납원들은 외주화되고 남자 수납원들은 정규직으로 많이 남고. 그래서 과장 달고 소장 달고, 본사 안에도 많습니다.” 용역업체로 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잘린다’는 협박 아래 각종 서류 정리, 미납 고객 처리, 화장실 청소, 풀 뽑기 등 갖은 잡무와 함께 무수한 성희롱·성추행을 견뎌야 했다. 그들은 도로공사의 자회사가 사실상 용역업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싸움을 멈출 수 없었다.


“김천에 있는 도로공사 본사 점거 이틀째 아침이었어요. 경찰과 구사대가 밀어붙이는데 숨을 곳도 없고, 아무리 둘러봐도 살아날 길이 없더라고요. ‘여기서 끌려나가면 우린 끝이다’라는 생각이 든 그 순간, 탈의하라고 외쳤습니다.”


차디찬 맨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용변을 참고, 먼지와 더위로 피부병에 신음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윗옷을 벗으며 최후의 저항에 나섰다.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인간답게 살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가능했던, 처절한 싸움이었다.


간절함은 모종의 성과를 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승소자만 직접고용하겠다던 도로공사는 지난 1월 1심 소송에 계류된 노동자 전원을 직접고용하겠다고 물러섰다. 정부의 외면 혹은 방조, “정규직 되려면 시험을 치라”는 차별적 시선 속에서도 끈질기게 투쟁한 결과다.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은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전북 남원·임실·순창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논란을 빚었지만 결국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1500명 해고자 전원이 직접고용되는 그날까지는. 세상을 뒤흔든 이 ‘초짜’ 투쟁가들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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