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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 커피 한 잔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1. 5. 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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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 커피 한 잔

 


골목길 틈세에 올망졸망 풀꽃이 하늘대는 이른 봄날 아침.

 


세월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폐지수집용 손수레를 끌고 골목길을 나오시던 할머니.



삶의 끝자락 아픔 때문인지 언제나 쉬어가는 편의점 한 귀퉁이에 의지합니다.



편의점 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아가씨가 문을 열고 반깁니다.


“할머니, 아직 추워요. 얼른 들어오세요“


못이기는 척 따라 들어선 할머니에게 간이 의자를 권하고 봉지커피 한 잔을 타서 내밉니다.


“아이고, 번번이 이걸 어쩌누“


“천천히 몸 녹이고 가세요.”

 


할머니와 아가씨는 오랜 친구처럼 만나면 봉지커피 한 잔으로 따뜻한 미소를 나눕니다.



어느날 때 늦은 저녘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할머니를 아가씨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할머니께서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아가씨는 할머니의 눈길이 어디에 멈추는가를 지켜봅니다.



“아, 할머니! 미역국이 드시고 싶어서 이 밤중에 나오신 거구나”


“오늘 저 멀리서 우리 손자가 오는 날인 걸 내가 깜빡했지 뭐여“


“할머니, 잘 됐네요. 이거 내일 반품하려 했는데 그냥 가져가세요.“


아가씨는 할머니가 손자 기억 하나를 매달고 숨가쁜 걸음으로 나가시는 모습을 애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얼마 뒤 골목길에서 전해온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 할머니, 엄마아빠없는 손자를 키웠는데 재작년에 교통 사고로 그만 하늘나라로 보냈다지 뭐야! 아마 오늘이 손자 제삿날인가 봐.“


아가씨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를 기다리다가 공무원 시험 합격통지와 함께 지방으로 발령이 나고 맙니다.

 



일년이 지난 뒤에야 혹시나 하고 들린 그 편의점.

 


할머니가 쉬시던 곳에는 주인 잃은 손수레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먼 데서 온 우리 손자에게 따뜻한 미역국을 먹여 보내게 해줘서 고마웠다고 전해 달라는 할머니의 선물하나가 수많은 바람을 견디며 손수레에 매달렸습니다.



할머니의 노쇠한 향기를 풍기는 봉지커피 하나가 그 옆에 놓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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