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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도(讀書三到)

박종국에세이/독서칼럼모음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22. 1. 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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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삼도(讀書三到)

박종국

으레 방학이면 제자와 교유(交遊)한다. 그런 나를 두고 지인은 괜한 핀잔을 한다. 제자 사랑이 유다르다는 거다. 예부터 마누라자식 자랑하는 사람은 팔불출이요, 제자사랑에 지나치면 구불출이랬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혈연의 사랑은 인생 변화의 법칙에 지배되지 않는 유일한 관계다. 내게 천칠백여 명의 제자는 혈연만큼이나 진하다.
근데 요즘 제자를 만나는 일이 뜸해졌다. 성장한 제자들이 제 앞가림하기에 바쁜 시기고,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나 역시도 딴데 눈을 흘겨 독서삼도(讀書三到)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독서삼도란 책과 사귀는 좋은 독서법으로, 입으로는 다른 말을 하지 않는 구도(口到), 눈으로는 딴 걸 보지 않는 안도(眼到), 마음을 하나로 가다듬고 반복 숙독하는 심도(心到)의 책읽기를 일컫는 말이다.

흔히, 책 읽기에 좋은 때는 가을이라 부추긴다. 그렇지만 그보다 독서삼여(讀書三餘)라 하여 겨울·밤·비올 때가 으뜸이다. 언제든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면 자연 독서상우(讀書尙友)하게 된다. 책을 읽기에 골몰함으로써 옛날의 현인(賢人)과 벗이 되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처럼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근데도 사람 만나는 일만큼 즐거운 게 또 없다. 그가 잘 생겼든 못생겼든지, 마음결이 곱든지 밉든지 사람의 향기는 좋다. 아름다운 심성(心性)을 지닌 사람한테서는 따사로운 미소가 묻어나게 마련이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쁜 일이 생겨도 우울하지 않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도 평상심(平常心)을 잃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그치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길 위의 돌도 연분(緣分)을 만나야 차이듯이 아무리 하찮은 일이더라도 인연이 닿아야 연줄이 된다.

사람의 어울림에 관심 두고 지켜보면 빤하다. 대부분 사는 곳에 따라, 외모에 따라, 취미와 놀이가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한 편이 된다. 제 뿔에 잘 났다가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로 두루 사귐을 나눌 수 없다.

책을 편독(偏讀)하면 마음이 흐려지고, 음식을 편식(偏食)하면 몸가짐이 불충해진다. 그렇듯이 사람을 치우쳐 사귀면 인간성이 멀건 먹충이가 된다. 그래도 어디선가 날아올지 모르는 인연의 화살을 애써 피할 까닭이 없다.

불가에서는 길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끼리 잠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한다. 더욱이 부모자식으로, 스승과 제자, 친구, 연인으로 만나는 인연은 딱히 딱히 하나다. 굳이 헤아리자면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떠다니는 널빤지에 손바닥만 하게 뚫린 구멍 속으로 눈먼 거북이가 얼굴을 내밀만큼 어려운 천재일우(千載一遇)다.

사람은 그렇게 만난다. 아무리 하찮더라도 제 몸에 알맞은 재능을 가졌고, 볼품 없는 허우대를 가진 사람도 다 제 짝을 만난다. 팔이 들이굽지 내굽지 않는다. 그래서 자기와 가까운 사람에게 정이 쏠리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닐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마감할 때까지 행하는 일 중에서 가장 소중한 헌사(獻辭)는 무엇일까? 원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견진(見眞)이다. 그것은 참을 보는 눈을 가지는 심력(心力)이요, 바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혜안(慧眼)이다. 견진은 자신의 본래 성품을 본다는 이른바, 견성(見性)이다. 견성을 가진 사람은 소중한 인연을 미덥게 한다. 예지가 담긴 책과 만나는 일도 그에 못지 않다. 책을 통하면 ‘나’라는 참다운 실체가 무엇인지 도드라진다.

시대가 어수선하고, 사는 게 가파른 언덕이다보니 짬내어 책 읽는 수고로움이 덜하다. 꼭꼭 누르면 온세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화수분(河水盆)을 움켜지지 않은 이상 책에 천착(穿鑿)할 일이 아니다. 바빠 겨를 없는데 글 한 줄 그게 밥 빌어주지 않는다.

글을 써 놓고보니 쉽게 해도 될 말을 꼬장꼬장 어렵게 늘어놓았다. 같잖은 오만(傲慢)이다.

|박종국에세이칼럼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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