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은 자신의 불안정성을 감추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아내를 항복시키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즉, 남성들은 자신들의 결점을 아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자기 보호 차원에서 아내를 억제할 도구(tool)로 아내가 자기에게 항복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성경은 어디서도 남편들에게 아내를 복종시키고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며 아내의 머리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성경은 분명히 부부에게 "서로 복종하라"는 말을 전제로 서로 존중하며 섬기라고 하셨다.
그러나 남편들에게는 "네 몸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강한 요구를 하시면서.....
미국의 로라 도일은‘항복한 아내’(The Surrendered Wife)이라는 글에서 “모든 아내들이여, 행복한 가정생활을 원한다면 당신의 남편에게 순종하라. 아니, 아예 남편에게 항복을 선언해 버려라! 그러면 행복한 부부관계는 이루어진다"고 했다.
물론 그녀는‘항복’(Surrender)이 ‘굴종’(Submission)과는 다른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강제적이고 체념적인 굴종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의미와 비슷한 자발적 순종이라고 변명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기적 같은 발상이다.
물론 성경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부부생활이라는 특수 관계에서 쉽게 얽힌 감정을 실타래 풀듯이 풀고 "예! 예!" 하며 살수 있었는가...?
즉, 부부관계란 아무리 원리를 고집해도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만일 아내가 남편의 구박에도 조용히 살고있다면 그것은 그 남편이 대견하고 사랑스러워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내가 스스로를 죽이고 남남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긴 세월동안 상처를 받고 사는 아내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몰라서 또 믿음이 없어서 자신들의 문제를 풀지 못하고 고통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즉, 가정과 자식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기 생존을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아내의 항복'을 쓴 저자는 부부간의 상처가 사람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는 분 같다.
즉, 그녀가 결혼생활에서 겪은 고민이란 우리네 아낙네들이 한숨을 삼키며 산 그런 아픔과는 내용이 다른 것이다. 아내들은 지금도 남편 앞에선 기죽이고 사는 것이 결혼생활인줄 알고 착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성이 착한 여자라고 해도 한번 응어리진 상처는 그것이 남편에 대한 적대감과 배타성으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만은 잊어서는 안 된다.그리고 그 감정은 어떤 원리나 권면으로도 쉽게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고 때문에 누구도 속단할 수 없는 것이 곧 부부관계이다.
즉, 세상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부부관계일 것이다. 그리고 결혼이란 대등한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돌보며 키우는 것인데 그런 발전이 없다면 한 지붕 밑에서 100년을 살아도 남남으로 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또한 결혼의 특징이란 남자와 여자의 만남인 동시에 각자의 문화의 만남이다. 그러니까 결혼이란 '남', '여' 그리고 각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결속(union)이 되어야 한다,
즉, 대부분의 부부 갈등을 분석해 보면 두 몸의 궁합의 다툼보다는 부부 각자가 지닌 문화(character)의 충돌과 아내를 지배하려는 남편의 권위의식에서 시작된다.
가령 아내와 함께 일하고 돌아온 남편이 TV 앞에 앉아 아내의 시중을 요구하는 것 따위 말이다.
70을 턱 앞에 둔 어느 남편의 고백이다.
"지금까지는 나 위주의 살았지만 앞으로는 아내를 위해서 살기로 했다!" 늦었지만 장한 고백이다.
그러나 조금은 속이 보이는 항복 같다. 아내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노후의 '자기 보호'를 위한 선택 같으니까...
그리고 '로라 도일'이 사용한 '항복'(surrender)이라는 단어는 그가 아무리 좋은 변명을 해도 부부관계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항복'이란 한 침대에 누어야 하는 부부관계에는 해당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항복'이나 '복종'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굴욕적인 행위이고, 특히 남편들이 자기 리더십을 지키기 위해 아내의 복종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닐 수 없다. 아내를 종으로 취급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남편에 대한 '복종' 역시도 내키지는 않아도 가정의 평안을 위해 마지못해 응하는 것이므로 자기 포기나 다름없다.
그리고 '순종'이란 아름다운 표현 같지만 사실 남편에 대한 신뢰와 기쁨의 순종이 아니라면 그 역시도 '종속(從屬=subordination))'을 뜻하는 것이므로 자랑스러운 것이 못된다.
유독 우리 나라에선 여자를 향해 남자들에게 없는 마녀니, 음녀니, 칠거지악이니 하고 여자들을 깎아 내리는 풍습이 있다.
그리곤 자신은 밖으로 돌아 다녀도 여자의 정절을 강요하기 위해 열녀문을 세워놓고 찬양을 했지만 그것들은 모두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시키기 위한 유교의 삼종(三從)문화의 산물인 것이다.
이런 '남존 사상'은 기독교 안에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전에 없던 아내들의 황혼이혼 바람에 남성들이 놀라고 있다. 그러면 황혼 이혼이란 무엇이냐? 바로 남편 그늘에서 더 이상 숨죽이고 살지 않겠다는 아내들의 반란인 것이다. 아니라면 남편에 대한 복수극이다.
상담실에서 만난 대부분의 남성들은 한결같이 가장으로서의 역할과 임무는 소홀히 하면서 바보 같은 아내와 살려는 분들이었다. 물론 그들도 열심히 교회를 섬긴다는 자랑을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권고 따위는 전혀 모르고 분들이다.
가정에서의 아내의 역할을 돈으로 셈해 본 남편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내가 가족의 안정을 돌보고 생명을 양육하며 또 직장까지 뛰면서 밤마다 남편의 잠투정까지 받아 주는 그 수고의 진가(眞價= real value)말이다.
아내의 역할을 경제 원리로 계산한 어느 학자는 연봉으로 14.8000불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아내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남편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어리석은 우리네 남성문화는 그런 아내들을 향해 철없이 '복종하라' '순종하라' '고분고분 하라'고 고함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남성들이여! 아니 현명한 남편들이여! 어찌 하시겠습니까?
* 글쓴이는 가정문제에 대한 공부를 하는 한미가정연구원(http://family.bada.cc) 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