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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불태우는 목사님들에게

세상사는얘기/다산함께읽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7. 11. 2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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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에서 인공기를 불태우는 목사님들에게
[논단] 21세기형 통일을 꿈꾸며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품는 소망
 
이재봉
 
10월 초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수행원으로 참여했던 김상근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정상회담 수행기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버님은 6.25 전쟁 때 북에 의해 총살을 당하셨다. 주검은 그 이상으로 비참했다”는 글귀 때문이었습니다. 아버님이 ‘북괴군’에게 비참하게 총살을 당했으니 그 ‘원수’에 대해 분노와 원한 또는 증오와 적대감을 키워왔을 것 같은데, 오히려 북녘과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 통일 운동에 헌신해온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2007년 봄 민주평통의 한 모임에서 그 분과 같이 강연을 하느라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만, 오래 전부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이끌어온 목사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성직자라 할지라도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포용한다는 게 쉬울까요? 그 분에게 맘속 깊이 존경심을 품으며 우리 사회의 목회자들을 떠올려봅니다.
 
가장 먼저 손양원 목사가 생각나는군요. 우상을 섬기지 마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따르기 위해 일제 때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몇 년 동안 옥살이를 하는 등 온갖 고초를 당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1948년 ‘여순 사건’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사형 집행 전 구출하여 아들로 삼았던 분 말입니다. 10여년 전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라는 책을 읽으며 적지 않은 충격과 진한 감동을 느꼈거든요.
 
그리고 3.1절이나 8.15 때 서울시청 광장에서 북녘의 국기나 김정일의 허수아비를 찢거나 불태우는 큰 교회 목사들도 떠오릅니다. 살인하지 말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전하기는커녕 형제마저 원수로 삼고 제거해야 한다며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끔찍한 폭력을 조장하는 목사들 말입니다.
 
▲10월 4일 시청모임에 나선 기독교 지도자급(?) 인사들 중 진정 종교의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 있을까?     ©대자보
 
김상근 목사든 손양원 목사든 시청 앞의 목사들이든 똑같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고 똑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으며 똑같은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해왔을텐데 그들의 언행에 이렇듯 하늘과 땅 같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왜일까요? 5-6년 전에 나온 황석영의 <손님>에 잘 묘사되어 있듯, 아마 해방 직후 북녘에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충돌을 겪고 탄압을 받아 남쪽으로 내려온 선배 목사들의 영향이 크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저는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북녘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사람들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첫째, 일제의 식민 잔재 청산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친일파 또는 부일 세력입니다. 남쪽에서는 친일파들이 정리되기는커녕 정권의 핵심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둘째,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에 쫓겨 내려온 지주 계층입니다. 옛 토지문서를 움켜쥐고 북녘 체제가 무너지면 땅을 찾으러 가겠다는 사람들이지요. 셋째, 종교 탄압을 못 이기고 쫓겨온 기독교인들입니다. 북녘을 ‘악’으로 생각하는 서울시청 앞의 ‘선’한 목사들과 신도들의 선배들이지요. 넷째는 1950년대 한국전쟁 중 미군의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고, 다섯째는 1960-80년대 북녘의 공산독재와 어설픈 평등보다는 남쪽의 군사독재와 제한된 자유가 좋다고 내려온 귀순자들이며, 여섯째는 1990년대부터 극심한 식량난으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내려온 탈북자(새터민)들입니다.
 
이들 월남자들 가운데 특히 앞의 세 부류 즉 친일파, 지주 계층, 보수 기독교인들이 냉전 시대 반공 정권들과 결합하면서 극단적인 반공정신으로 무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기에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 희생당한 사람들과 북녘으로 끌려간 이른바 납북자들의 일가친척들이 합세하여 철저한 반공 세력으로 뭉치게 된 것 같고요.
 
그런데 저는 친일파나 지주 계층 또는 6.25 희생자들이나 납북자들의 일가친척들이 극단적인 반공정신과 반북 정서를 지니고 인공기를 찢거나 김정일을 화형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동정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속좁은 제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면 더 심한 폭력을 저질러왔을지도 모르고요. 그러나 목사들과 기독교도들은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삼일절 시청앞 집회에 등장한 성조기. 삼일독립만세날 나온 성조기, 누구를 위한 친미인지 기독교인들의 역사와 사회의식을 다시금 생각케 한다    ©대자보 자료사진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놓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예수의 가르침을 손양원 목사나 김상근 목사처럼 적극적으로 지키고 따르지는 못할지언정 정면으로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종’ 또는 기독교인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적 도리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남쪽의 교회 권력을 잡고 있는 대형 교회 목사들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거듭나기만 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금세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와 통일이 별건가요?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소극적으로라도 실천하기만 하면 평화는 저절로 정착되겠지요. 그리고 원한과 적대감을 버리고 자주 만나서 화해하고 협력하다보면 통일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질 것이고요. 세계화를 통해 국가 간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지방화를 통해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분산되는 마당에 꼭 하나의 체제와 정부로 통합하는 것만을 통일로 간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는 가운데 남쪽 사람들이 수시로 평양이나 개성을 드나들며 백두산이나 묘향산에 오를 수 있고, 북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서울이나 경주 또는 한라산이나 설악산을 방문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바로 21세기형 통일이 아니겠습니까?
 
* 글쓴이는 원광대 교수로서 <남이랑북이랑>(
http://pbpm.hihome.com)의 편집인이며, 본문은 소식지 104호(2007. 1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2007/11/15 [11:52]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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