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지 -읽기자료
육 촌 형
이현주
언청이 장근태. 나이는 나보다 한 살 더 많지만 키도 작고 몸무게도 가볍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어렸을 적에 너무 못 먹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근태는 나하고 육촌 사이다. 근태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의 사촌형이니까.
근태네 집은 지금도 가난하다. 어른들은 가난한 집안을 가리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는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버지한테 물어봤지만 아버지도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그저 옛날부터 그렇게들 말해 왔다는 거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여쭤 보겠는데 할아버지는 육이오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물론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제삿날 사진으로는 봤지만. 할머니는 지금 서울 작은아버지 댁에 계신다. 그러니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고…. 방학 때가 되면 만나 뵐 수 있겠지만 그때에는 또 그런 질문을 할 생각이 까맣게 살져 버릴 것이다.
아무튼 근태네 집은 지금도 역시 ‘똥구멍이 찢어질 만큼’ 가난하다. 그런데도 근태 아버지는 매일같이 술에 취해 곤드레만드레다. 아버지가 가끔 길에서 만나면,
“만섭이 성님, 왜 이러세유? 아, 근태 생각을 좀 혀서라두 술 좀 작작 드시라니깐유. 도대체 이게 먼 짓이유? 야?”
간절하게 타일러도 보지만 도무지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근태는 참 착하고 용감하다. 근태가 공부는 좀 못하지만 어떤 때는 눈시울이 뜨거울 만큼 가슴 뭉클한 짓을 한다. 하긴 근태가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선생님 말씀대로, 숲에 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방학 때가 되면 근태는 새벽 일찌감치 일어나, 남들은 놀러 가느라고 야단인데 공사판으로 간다. 5학년치고는 덩치가 작은 근태이지만 어른들 틈에 섞여 악바리로 일을 한다. 시멘트 공사판에 물 긷기, 사방 공사판에 흙 나르기, 건축 공사판에 잡심부름하기…. 언청이 장근태 하면 그래서 이 한산면 일대의 막벌이꾼들 사이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물론 근태하고 나하고 사이가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니,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야지. 근태하고 나하고 사이가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좋은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좋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좋지 못한 사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옛날과는 다른 사이다. 근태네가 양짓담을 떠나 음실로 이사를 간 뒤부터 우리 사이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양짓담과 음실은 한산계라는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마을이다. 크기는 비슷하다. 양짓담에 살다가 음실로 이사 간 것하고 근태와 나의 우정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우리 마을에 사는 아이들 같으면 대번에 알겠지만, 바깥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얘길 처음부터 하자면 길어지겠고, 그렇지만 설명을 좀 하긴 해야겠다. 본디 양짓담과 음실은 사이가 무척 좋았다고 한다. 한가위 때만 되면 두 마을 젊은이들이 한산계 모랫벌에 모여 줄다리기, 씨름으로 힘자랑을 했고 음실 처녀들하고 양짓담 총각들하고 은근히 만나 연애도 곧잘 했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 할머니도 음실에서 양짓담으로 시집을 오셨다니까, 옛날에는 그런 일이 꽤 자주 있었던 게 틀림없다. 그러던 것이, 육이오 난리 통에 양짓담이고 음실이고 온통 쑥대밭이 되면서 두 마을 사이가 무슨 원수처럼 되었던 것이다. 어른들이 자세히 얘길 해 주지 않으니 잘 모르긴 하지만, 아무튼 그 난리통에 오뉘 형제처럼 가깝던 두 마을이 흡사 자석의 남극과 북극처럼 멀어졌다는 거다. 난리가 끝난 직후에는 서로 읍내 장에서 만나도 못 본 척하고 등을 돌리는 일이 있었다니까 그때 형편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한 30년 지나고 나니 그때 원수졌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 가고, 그래서 요즘에는 크게 겉으로 드러날 만큼 서로 미워하는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새마을 사업으로 한산계에 시멘트 다리를 놓고 난 뒤부터는 마을 젊은이들이 앞장서서 친선 체육 대회도 열고 단옷날 그네뛰기도 같이 하게 되었다.
두 마을 아이들은 모두 오리쯤 떨어져 있는 산동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른들이야 다투든 미워하든 우리는 한 학교, 한 교실에서 뒹굴며 배우는 사이좋은 친구였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은근히 양짓담 아이들과 음실 아이들 사이에 무슨 보이지 않는 장벽이 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가을 운동회 같은 것을 할 때면 특히 그랬다. 또 퇴비를 할 때도 양짓담 아이들과 음실 아이들은 서로 지지 않겠다는 듯이 기승을 부려 달밤에도 풀을 베는 둥 야단들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다 한번 그래 보는 거지 무슨 앙심을 품고 그러는 건 아니었다. 양짓담 아이들과 음실 아이들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사이좋게 자라고 있었다. 둘은 어디까지나 친구 사이였다. 이를테면, 군내 국민학교 축구 시합 같은 거라도 있는 날이면 양짓담이 어디 있고 음실이 어디 있나? 두 마을 어린이들은 똘똘 뭉쳐서 함께 산동 국민학교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봄부터 이상야릇하게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 웬 돈 많은 부자가 내려와 음실 뒷산에다 젖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그 부자는 만화 영화 ‘캔디’에 나오는 것 같은 서양식 집을 짓고 음실 뒷산을 빙 둘러 철망으로 울타리를 쳤다. 그리고 그 안에다가 젖소를 풀어 놓고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음실 아이들 말을 들어 보면 자기네 집 대문에다 ‘한산 목장’이라는 간판까지 달았다고 한다. 목장 주인은 아직 사십도 되지 않은 젊은 사람인데 아들을 하나 데리고 왔다. 그 아이가 바로 지난 봄 우리 반으로 전학 온 유세아다. 사내자식 이름이 세아라니 우습기도 했지만 생김새도 흡사 계집애였다. 자기 말로는 서울 무슨 사립학교에 다녔는데 건강이 너무 나빠 공기 좋은 산골로 일부러 내려왔다는 것이었다. 자기 아빠가 (세아는 즈이 아버지를 부를 때 꼭 ‘아빠’라고 했다.) 이런 산골에 목장을 차린 것도 순전히 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의사가 자기 아빠한테, “세아는 공기 좋고 물 맑은 데서 휴양을 해야 합니다.”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웃기는 녀석이었다. 전학 온 지 한 달이 지나도록 변소에 들어가지 못하던 세아였다. 변소가 너무 더러워 똥을 눌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참다 참다 막 싸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변소엘 들어가긴 했는데, 나오면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게 아닌가? 우리는 마구 웃어 주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홍탱크가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탱크란 누구냐 하면 유세아하고 같은 날 함께 전학 온 아이다. 본디 이름은 철식이지만 흡사 탱크처럼 생겨서 별명이 그렇게 붙었다. 본인도 제 이름보다는 탱크라는 별명을 더 좋아했다. 홍탱크는 이를테면 유세아의 호위병인데, ‘한산 목장’ 관리인 홍씨의 아들이다. 누구든지 세아를 우습게보고 놀리거나 하다가 홍탱크한테 걸리면 국물도 없다. 홍탱크는 유세아한테만 굽실거린다. 산동 국민학교 전체 학생들 가운데 감히 홍탱크를 상대할 아이는 없었다. 홍탱크는 힘도 장사지만 서울 있을 때 유도도 배웠다고 했다.
유세아와 홍탱크는 전학을 오자마자 한산면 촌놈들 위에 임금님처럼 올라섰다. 세아는 돈을 가지고 아이들을 제 편으로 만들었다. 혹시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삐딱하게 구는 녀석이 있으면 홍탱크의 주먹이 가만두지 않았다. 소풍 가는 날이면 세아는 무조건 음실 마을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한 봉지씩 안겼다. 음실 마을 녀석들은 세아만 보면 괜히 실실 웃으며 그 곁으로 모여들곤 했다. 물론 양짓담 아이들도 세아한테 과자랑 사탕이랑 얻어먹고 싶어 슬슬 가까이 다가갔다. 고구마를 구워다가 세아한테 바치는 녀석도 생겼다. 세아는 고구마 군 것쯤 손가락도 대지 않는다. 그럼 그 고구마는 자연히 홍탱크 차지가 되었다. 이렇게 되어 유세아와 홍탱크는 산동 국민학교 5학년 2반 두목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일이 공교롭게 되려고 이쪽 양짓담에도 웬 부자가 이사를 왔다. 재일 동포의 동생이라나 뭐라는 사람인데 양짓담에다 벽돌 공장을 차렸다. 도시 사람들 집을 짓는 데 쓰는 붉은 벽돌을 구워 내는 공장이었다. 양짓담 공장이 음실 목장보다 서기는 더 먼저 섰다. 주인이 이사를 늦게 온 것뿐이다. 벽돌 공장 주인은 사람이 좋아 보였다. 이사 오던 날,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술과 고기를 푸짐하게 대접하였다. 그에게는 조카가 하나 있었는데, 작년 여름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사고로 부모를 잃었다고 했다. 그 아이가 바로 오토바이다. 우리 반은 아니지만 학년은 같은 5학년이다. 본 이름은 소비연인데 전학 오던 날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엘 다니다. 그래서 별명이 오토바이다.
오토바이는 눈이 작고 옆으로 찢어진 게 첫눈에도 무섭게 생겼다. 이사 오던 바로 그날, 홍탱크와 한판 붙었는데 조금도 꿀리는 기색이 없었다. 낯선 녀석이 거들먹거리며 산골 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으니 유세아와 홍탱크가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방과 후, 소비연이 솔밭에 세워 둔 자기 오토바이로 다가오자 기다리고 있던 홍탱크가 길을 막았다.
“야, 너 좀 이리 와!”
오토바이는 조금도 허둥거리지 않고 홍탱크를 마주 봤다. 작은 눈이 더 작아졌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독사의 눈 같았다.
“누구? 나 말이냐?”
“그래, 임마. 너 말고 거기 누가 있니?”
홍탱크는 어슬렁어슬렁 솔밭 사잇길로 들어섰다. 그리로 조금 더 가면 밤나무로 둘러싸인 조그만 공터가 있는데, 거기가 아이들의 쌈터였다. 오토바이는 말없이 탱크의 뒤를 따라갔다. 공터에는 아이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유세아도 그 속에 섞여 있었다.
아이들이 공터에 둘러서 있는 것을 보자 오토바이는 싸늘하게 웃으며 어금니를 잘금잘금 깨물었다.
“야, 너 어디서 왔어?”
유세아가 팔짱을 끼고 오토바이에게 물었다. 오토바이는 가냘프게 생긴 녀석이 질문을 하자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그건 왜 물어?”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너, 임마. 너무 건방져. 새로 전학 온 녀석이… ”
홍탱크가 말을 하다 말고 오토바이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이거 놔! 못 놔?”
오토바이의 목소리가 밤나무 가지 사이를 뚫고 사방에 울려 퍼졌다.
“어쭈? 요게 정말 뜨거운 맛을 봐야겠구나!”
그러나 먼저 뜨거운 맛을 본 건 홍탱크였다. 눈 깜박할 사이에 오토바이 주먹이 탱크 배에 푹 꽂혔던 것이다.
“윽!”
탱크는 잡았던 손을 놓고 서너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와 동시에,
“비켯!”
소리를 지르며 오토바이에게 달려들었다. 탱크는 오토바이의 앞자락을 움켜잡자,
“야잇!”
기합 소리와 함께 돌림배지기로 오토바이를 집어던졌다. 말로만 듣던 유도 솜씨였다. 그러나 오토바이 또한 만만찮았다. 크게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한 바퀴 몸을 굴리더니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일어서서 탱크를 노려보았다. 탱크는 순간 당황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다시 몸을 날려 오토바이에게 달려들었다. 둘은 엉겨 붙어 풀밭 위를 마구 뒹굴었다. 어지럽게 주먹질이 오고갔다.
그러나 아무래도 기운은 탱크가 오토바이보다 더 셌다. 탱크는 오토바이의 배를 타고 걸터앉아 얼굴이며 가슴이며 사정없이 마구 내려 갈겼다. 오토바이의 코가 터져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항복하지 않았다. 있는 힘을 다해, 자기 배를 깔고 앉은 탱크를 밀어붙였다.
묵직한 탱크가 쿵 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오토바이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일어나더니 피가 섞인 가래침을 카악 뱉어 내면서,
“이 새끼!”
소리와 함께 탱크에게 돌진하였다. 오토바이는 탱크의 팔을 움켜잡는 것과 거의 동시에 입을 크게 벌려 팔뚝을 깨물었다.
“아! 아악!”
탱크가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오토바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홍탱크는 있는 힘을 다해 오토바이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그제야 오토바이는 깨물었던 팔뚝을 놓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때 일은 이렇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우리는 부들부들 떨면서 둘이 싸우는 걸 그냥 바라만 볼 뿐이었다. 다행히 선생님이 알고 달려오셨기 때문에 그날 싸움은 그렇게 끝났다.
소비연은 그 다음 날에도 얼굴에 멍이 좀 들고 입술이 터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엘 왔다. 홍탱크도 팔뚝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러나 둘은 싸우지 않았다. 그 뒤로 이제까지 우리는 그들이 싸우는 걸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둘이 직접 싸우지 않는 대신, 양짓담 아이들과 음실 아이들이 싸움질을 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양짓담 아이들은 오토바이의 부하가 되었고, 음실 아이들은 유세아와 홍탱크의 부하가 되었던 것이다. 홍탱크는 음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유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는 양짓담 아이들을 데려다가 태권도를 가르쳤다. 우리는 그 누구도 오토바이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거역하기는커녕 오히려 홍탱크를 믿고 까불던 음실 놈들을 혼내 주자면서 설치는 녀석들까지 생겼다.
양짓담 아이들과 음실 아이들은 마침내 앙숙이 되었다. 이제는 학교를 오가는 길에 서로 만나 개울에서 가재를 잡는 따위 일이 없어졌다. 소풍을 가도 따로 놀았고 군내 국민학교 축구 시합에서도 함께 응원하는 일이 없었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꾸중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누구든지 양짓담 놈들하고 친하게 지내기만 하면 그땐 가만두지 않을 테다.”
이건 홍탱크의 엄포다.
“어떤 놈이든 음실 자식들하고 같이 놀면 혼날 줄 알아!”
이건 오토바이의 공갈이다.
양짓담 아이들과 음실 아이들은 꼼짝없이 시키는 대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들도 염려는 했지만 아무도 ‘한산 목장’ 집과 재일 동포네 벽돌 공장 집에 싫은 소리를 할 용기는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대로 여름이 지나갔다. 별로 큰 말썽도 없었다.
양짓담 아이들은 양짓담 아이들끼리만 놀았다. 음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만나는 일만 없으면 그다지 거북할 것도 없었다. 오토바이와 탱크는 묘하게 서로 피해 다녔고, 아마도 둘이 맞상대로 붙을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가을걷이다 끝나자 근태네 집이 음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양짓담에 있는 근태네 집은 너무나도 낡아서 기둥이 부러지려고 했다. 서까래로 겨우 버텨 놓고 사는데 언제 무너질는지 모를 형편이었다. 그런데 마침 음실에 있는 근태 외삼촌네가 서울로 이사를 가면서 그 집을 비워 주고, 와서 살라는 것이었다.
근태는 이사를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게 바로 한 달 전 일이다. 근태가 그리로 이사를 가면서 나하고 사이가 이상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제는 왜 그랬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겠다. 이 얘길 하려고 지금까지 길게 설명을 늘어놓은 셈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므로 학교가 일찍 끝났다. 보통 날 같으면 일찍 끝나는 게 신나고 즐거웠겠지만 오늘은 그 반대였다. 공부가 끝난 뒤에 솔밭 뒤 공터로 오라는 오토바이의 명령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근태하고 한판 붙으라는 것이었다. 물론 근태도 나하고 싸우라는 명령을 홍탱크한테서 받았다. 그들이 근태하고 나하고 싸움을 붙이는 이유는 그냥 재미로 해 보는 장난이 아니었다.
그저께 밤, 근태가 한산계를 건너 우리 집에 왔었다. 아버지 심부름으로 족보책을 빌리러 온 것이었다. 음실 아이가 양짓담에 발을 들여놓는 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또 사실이지 일부러 금할 것도 없을 만큼 두 마을 아이들은 즈이 마을에서만 놀았다. 구태여 건너편 마을까지 갈 일이 서로 없었으니까. 그런데 양짓담에 살던 근태가 음실로 이사를 가는 바람에 일이 묘하게 된 것이다. 근태는 중간에서 참 난처했다. 지금까지 자기편으로 사귀던 양짓담 아이들을 하루아침에 적으로 삼는 일이 그렇게 쉽겠나 생각해 보라. 또 지금까지 적으로 여기던 음실 아이들과 유세아, 홍탱크를 친구로 사귀는 일인들 어찌 쉽사리 되겠는가?
그러니 이사를 간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도록 근태는 이쪽저쪽 눈치만 보면 서 지내왔는데, 그래도 차츰차츰 음실 쪽으로 기울어져 가는 낌새가 보였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등 뒤에는 언제나 오토바이와 탱크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으니까. 별 수 없이 근태와 나는 한껏 말조심, 몸조심을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맞부닥치는 일이 없도록 서로 피해 다녔다.
그러던 차에, 밤이긴 하지만 근태가 한산계를 건너 우리 집까지 왔던 것이다.
나는 근태가 다른 아이들 눈에 들킬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해했다. 그렇지만 근태는 나보다 훨씬 침착했다.
“염려 마! 아무도 모르게 왔으니깐. 또 걔들이 알면 어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왔는디…. 음실 눔덜 보기 싫어 죽겠어! 탱크 그 자식 아주 나쁜 눔이여….”
근태는 한참 동안 음실 아이들 욕을 늘어놓은 다음, 족보 책을 가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다음 날, 그러니까 어제 금요일,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도 근태와 나의 비밀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더니, 정말 비밀은 없는 걸까? 오늘 아침 학교에 가자마자 근태와 나는 각각 자기네 두목한테 불러 갔던 것이다.
“그저께 근태가 늬 집에 갔었지?”
“오토바이가 뱁새 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응-.”
어떻게 감히 거짓말을 하랴?
“왜 왔었어?”
“아버지 심부름으로.”
“무슨 심부름?”
“족보책을 가질러.”
“족보책?”
"응-, 장근태하고 나는 일가여.”
“임마, 그런 건 다 알고 있어. 그래서 너 근태한테 무슨 말했니? 바른 대로 말해.”
“아무 말도 안 했어.”
이건 거짓말이다. 근태가 탱크 욕을 하는 것만큼 많이는 못했지만 나도 오토바이 녀석을 욕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니 욕을 했어.”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거짓말 마! 이 자식, 너 근태한테 우리 양짓담 비밀 다 일러 줬지?”
비밀이라니? 나는 어리둥절했다. 정말이지 오토바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비밀이 뭔지도 모르겠거니와, 그런 게 있다 한들 양짓담에서 계속 살아온 근태가 모를 리 있겠는가?
나는 더듬거리며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내 말을 들은 척도 않고,
“그렇다면, 좋아! 네가 정말 그렇게 깨끗하다면 그걸 증명해 봐. 이따 공터로 와. 거기서 근태하고 한판 붙는 거야. 이기면 네 말을 믿어 줄 테다. 알겠어?”
이런 말을 아침부터 들어 놨으니 공부가 될 리 있겠는가? 하루 반나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근태 쪽을 가끔 훔쳐보니, 역시 근태도 마찬가지로 불안한 기색이었다.
어쨌거나 시간은 우리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흐르는 거니까, 이윽고 나와 근태는 탱크의 사나운 눈총에 밀려 솔밭 뒤 공터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오토바이와 다른 양짓담 아이들이 이미 와 있었다. 우리가 가자 곧 양쪽으로 편이 갈렸다.
오토바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늬 일가라고 사정 봐주면 나한테 죽을 줄 알어. 니가 더 크니까 이길 수 있어.”
저쪽에서도 탱크가 근태 귀에 입을 대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치는 음실 아이들은 양편으로 갈라서서 침을 삼키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가 근태 아닌가? 아버지가 아시면 뭐라고 하실까? 왜 내가 육촌형인 근태하고 싸워야 한단 말인가? 근태도 딱한 얼굴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빙 둘러선 공터에서 우리는 두 발짝쯤 서로 떨어져 마주 보았다.
“어서 덤벼!”
근태 뒤에서 탱크가 소리를 질렀다.
“깔아뭉개 버려!”
내 뒤에서는 오토바이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엉거추춤 서서 손을 들어 올렸다.
근태도 권투 선수처럼 손을 들고 나를 노려보았다.
“빨리 붙어!”
오토바이가 내 등을 확 밀었다. 내 어깨가 근태의 가슴에 힘껏 부딪쳤다. 근태는 비틀비틀 물러섰다.
“어어? 물러서지 마!”
이번에는 탱크가 근태의 몸을 내게로 밀어붙였다. 우리는 엉겁결에 껴안았다. 근태의 한쪽 손이 내 뺨에 날아왔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근태의 가슴을 주먹으로 내질렀다. 이번에는 근태가 발로 내 허벅지를 걷어찼는데 꽤 아팠다.
“이게?”
나는 근태의 멱살을 움켜잡고 발을 걸면서 뒤로 떼밀었다. 근태가 저만큼 뒤로 넘어졌다.
“좋아, 잘한다! 뭉개 버려.”
오토바이가 소리쳤다. 나는 쓰러진 근태의 몸뚱이를 타고 앉았다. 그러고는 가슴팍을, 어깨, 목덜미 할 것 없이 마구 갈겨댔다. 녀석이 먼저 내 뺨을 쳤으니까 싸움을 걸어온 거다. 더구나 근태와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툭하면 엉겨 붙어 싸우면서 자라난 사이 아닌가? 근태가 밑에 깔린 채 주먹으로 내 콧등을 쳤다. 금방 코피가 터졌다. 나는 주르르 흐르는 내 코피가 근태의 목덜미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근태가 계속 내 이름 불렀다.
“성태야!”
나는 퍼득 정신이 들었다. 근태가 계속 내 이름을 불러 댔다.
“그만, 그만 해! 성태야!”
나는 손을 멈추고 옆으로 비켜났다. 근태가 식식거리며 일어나 코피 쏟아지는 내 얼굴을 제 손으로 닦아 주었다.
“야, 임마! 장근태! 너 뭐하고 있는 거야?”
홍탱크의 성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 왔다. 근태는 피가 묻은 손을 엉덩이에 대고 서서 탱크를 노려보았다.
“빨리 끝판을 내 버려!”
이번에는 오토바이가 소리쳤다. 근태는 식식거리며, 언청이기 때문에 발음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똑똑하게 말했다.
“난 안 싸워! 성태는 내 동생이여. 내가 왜 동생하고 싸우냐?”
“뭐? 뭐라구? 너 내 말을 거역할 참이냐?”
“그래, 난 죽어도 안 싸울텨!”
“이 자식이?”
소리와 함께 홍탱크의 주먹이 날아와 근태의 턱을 후리쳤다. 그때 나는 어느새 두 손에 큼지막한 돌을 들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탱크의 주먹에 쓰러진 내 육촌형 근태를 살려야 한다는, 그런 생각뿐이었던 같다.
“야잇! 이 새끼들, 덤벼!”
나는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탱크에게 덤볐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더니 내 팔을 움켜잡았다.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었던 같다. 만일 아이들이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는 그 돌멩이로 탱크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을 것이다.
“어? 이게 미쳤나?”
탱크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음실 쪽 아이들에게,
“뭣들 하고 있어? 저 성태 자식 요절을 내 버려!”
하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근태가 음실 아이들 앞에 버티고 섰다.
“어떤 놈이든 성태를 건드리면 죽여 버릴텨!”
아무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늬들, 내 말 안 들려?”
탱크가 다시 소라를 질렀다. 그때 음실 마을 성백이가 입을 열었다.
“우린 이제 안 싸울텨!”
양짓담 중민이도 말했다.
“그려, 이제부텀 우린 안 싸울텨. 싸울 테면 늬들끼리나 싸워!”
아이들은 우르르 근태와 나를 둘러쌌다. 그러고는 밤나무 숲 아래 흐르는 개울로 걸어갔다. 우리들 뒤에서 유세아, 홍탱크, 소비연 셋만 남아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근태는 맑은 개울물로, 엉겨붙은 내 코피를 씻어 주며,
“됐어, 이지는 서로 안 싸워도 되는 거여. 우리가 똘똘 뭉치기만 하면 저 새끼덜 꼼짝 못하게 할 수도 있어.”
혼자서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까운 숲 어디에서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은이 소개
이현주
1944년 충주 출생으로,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본명은 이현주이고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른다. '이 아무개'는 필명이다. 19살에 동화작가 이원수의 추천으로 등단, 마흔 두 살까지 동화를 썼다. 목사이자 동화작가, 번역 문학가이기도 한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글들을 집필하는 한편, 대학 · 교회에서 강의도 맡고 있다. 현재는 공주 계룡산 부근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지은책으로 <사람의 길 예수의 길>, <한송이 이름없는 들꽃으로>, <젊은 세대를 위한 신학>, <칼아 너 갈 데로 가라>, <무구유언>, <성서와 민담>, <뿌리가 나무에게>,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호랑이를 뒤집어라>,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그래서 행복한 신의 작은 피리>, <장자산책>, <대학 중용 읽기> 등이 있으며, 동화집으로 <알게 뭐야>, <날개 달린 아저씨> 등이 있다. 15년간의 절필 이후 <외삼촌 빨강 애인>을 출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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