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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보다 네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거야"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11. 1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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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보다 네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거야"
빼빼로 데이로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아
  박종국 (jongkuk600)

 

 

인서야, 아까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이 이야기 하는 걸 들어보니 내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무엇을 준비하는 것 같은데, 넌 어떠니? 저요? 전 아무런 계획이 없어요. 그딴 것 흥미 없거든요. 그렇담 다행이다. 그렇잖아도 너랑 각종 ‘데이’에 관해서 얘기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선생님,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는 왜 만들었어요?

 

"응, 그건 말이다. 한 마디로 '족보도 없는, 근거도 없는 기념일 아닌 기념일'이야."

 

밸런타인데이에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행이 처음 생긴 것이 1958년이지. 처음엔 좋은 뜻이었어. 이때만 해도 일본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 고백을 쉽게 못하는 분위기였으나, 모리나가 제과에서 '이날 하루라도 여자가 남자에게 자유로이 사랑을 고백하게 하자'는 캠페인을 내놓은 것이지.

 

거기에다 교묘하게 '초콜릿을 선물하면서 고백하라'는 말을 끼워 넣어서 초콜릿 장사를 한 것이야. 이런 캠페인이 있다 해도 당장 여자가 남자에게 사랑 고백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았어. 처음에는 인기를 못 끌다가 1970년대 들어와서야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행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어.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행으로 인기

 

그리고 이 무렵에, 초콜릿 장사로 큰 소득을 올린 모리나가 제과에서 비인기 품목에 속하던 마시멜로우(marshmallow 초코파이 속에 들어 있는 크림을 단단하게 굳힌 것)를 팔려는 계획으로 "2월 14일에 초콜릿으로 받은 사랑을 3월 14일에 마시멜로우로 보답하라"는 내용의 광고를 했다고 해.

 

그래서 최초의 이름은 '마시멜로우 데이'였는데, '화이트 데이'로 이름이 바뀌어서 지금에 이른 것이지. '화이트'라는 말은 마시멜로우가 흰색이라서 붙은 말이야.

 

"선생님, 그렇다면 우리가 제과회사의 판매에 이용당하고 있는 거네요." 

 

물론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런 셈이지. 근데 ‘화이트 데이’는 3월 14일로, 밸런타인데이 덕분에 초콜릿이 많이 팔려 이득이 생기자 덜 팔린 사탕의 소비되도록 촉진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었지.

 

3월 14일이 기념일 아닌 기념일로 된 것은 일본의 유명 제과회사인 모리나가 제과의 농간으로 성 발렌타인 축일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행을 정착시킨 것 또한 모리나가 제과의 농간이야. 이 회사는 한국에 모회사 밀크캐러멜에 기술을 제공한 회사로 알려져 있기도 해.

 

성 발렌타인 축일에 초콜릿을 선물하는 관행을 정착시킨 것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동안 저도 여러 번 초콜릿과 사탕을 선물했는데 부끄럽네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기념일인데 그깟 선물을 했다는 것이 말에요. 아니야. 꼭 그렇게만 단정할 수는 없어.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지. 좋아하고 사랑하는 친구에게 진실한 마음이 담긴 조그만 선물은 언제든지 하는 게 좋아. 서로에게 믿음을 갖고, 소중한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야.

 

그러나 문제는 딴 데 있어. 그렇게 소중한 나눔을 위한 날이 너무나 많고, 거기에 소요되는 돈이 너무 헤프게 많이 쓴다는 거야. 더구나 학생 처지에 몇 만원하는 초콜릿과 사탕꾸러미를 선뜻 사고, 그것도 모자라서 쓸데없이 지나치게 포장까지 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는 일이야.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구잡이로 돈을 써대는 아이들은 못 느끼겠지만, 이도저도 아닌 아이들의 소외감은 얼마나 크겠니? 넌 어떤 기분이니?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벌써 며칠 전부터 친구들이 좋아하는 아이에게 주려고 빼빼로를 무더기로 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빼빼로에 멜맬라민이 들었다고 사지 마래요. 그렇지만 선생님, 빼빼로 데이 때는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빼빼로 선물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 주면 무척 섭섭해 할 건데요. 제 생각에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네 마음을 알겠다. 다른 친구들은 다 하는데, 정작 네 혼자만 하지 않는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지. 이해한다. 그렇다고 꼭 그렇게 해라고 말하지는 않으마. 모든 건 네 판단대로 하렴. 그러나 인서야. 나 같으면 여자 친구한테 이렇게 하겠다. 뭔데요, 선생님!

 

녀석, 서둘러 잡치지 마라. 왜 말꼬리를 잘라먹으려 드니. 뭐냐 하면 말이야. 여자 친구한테 직접 네 뜻을 밝히는 거야. 어때? 어렵겠나. 자신이 없어.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구나. 음, 이 방법은 어떨까? 편지를 쓰거나 메일을 보내면 안 될까? 빼빼로보다 네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거야. 그게 친구를 아름답게 위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생각해 보련.   

 

인서야, 힘들겠니? 아니요. 힘들 것은 없는데, 여자 친구가 어떻게 받아줄지 그게 상상이 안 돼요. 만약에 선생님 같으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응, 나 같으면 말이야. 좋게 받아들일 것 같아. 우선 색다른 느낌이잖아. 달랑 과자만 안기고 얼굴 붉히며 돌아서는 것보다 편지는 마음에 오래도록 담아둘 수 있는 거잖아. 내 생각은 그래.

 

"인서야, 빼빼로보다 네 소중한 마음을 전하는 거야."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내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해요. 어쩌면 좋아요? 그것 참 고약하다. 무척 고민되나 보네. 어제 뉴스 봤어? 빼빼로 데이를 대신해서 ‘가래떡 데이’가 새롭게 뜨고 있다는 얘기. 난 그것도 불만이야. 왜냐하면 가래떡 데이라고 해서 잘라진 게 없잖아. 설령 가래떡 데이가 빼빼로 데이를 대신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 말이야.

 

물론 식재료불감증 등의 이유로 가래떡이 몸에 좋고,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등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쓸데없이 행해지는 각종 데이를 떨쳐 버리는 게 우선이야. 그렇지 않아?

 

어쨌거나 나는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 ‘빼빼로 데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다. 하지만 조그만 생각을 달리해서 11월 11일에 빼빼로 초콜릿보다 실용적이고 특별한 선물을 생각해서 전해주는 것은 찬성할 만한 일이다.

 

인서야, 난 네가 조금이라도 나의 생각에 다가섰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부담은 갖지 마라. 꼭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니까. 네, 선생님, 빼빼로 데이에 대해서 친절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곰곰이 생각해 볼게요. 

2008.11.11 09:1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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