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치매 노인, “따뜻한 사랑만이 올바른 치유 처방전”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11. 26. 10:05

본문

728x90

치매 노인, “따뜻한 사랑만이 올바른 치유 처방전”
[함께 읽고 싶은 책] 이옥수의 <똥 싼 할머니>, 시공주니어
  박종국 (jongkuk600

 

우리사회가 고령화단계로 접어들면서 치매 노인이 증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치매를 비롯한 노인성질환은 커다란 사회문제다. 그러나 아직 노령인구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나 의료요양시설은 열악한 편이다. 그래서 그 문제는 가족이 고스란히 감당해야한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가정이 여러 부담을 떠안고 힘겹게 환자를 돌보고 있는 실정이다.

 

인식 자체도 문제다. 주변에서 중풍, 뇌졸중을 앓는 치매 노인을 만나면 왠지 ‘더럽고’, ‘꺼림칙하며’,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치매 노인의 경우 생리현상마저 자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탓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치매는 발병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무섭고, 잔혹한 병이다. 평생의 기억을 잃고,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고,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한다는 그 자체가 고통이다. 온 가족이 다 매여 있어야 한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사정을 모른다.

 

노인성질환은 그 자체가 고통

 

때문에 이번에 읽은 동화 <똥 싼 할머니>는 노인성질환으로 12년째 병환 중인 부모를 모시고 사는 내 입장에서 크게 공감하고, 주의 깊게 읽은 책이다. 우리 집 어른들은 뇌졸중과 류머티스성 퇴행성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하다. 지금은 많아 좋아졌지만, 관절염을 앓고 계신 어머니의 경우 의사의 소견으로 보아 심각한 병발의 가능성이 있어 초조하고 불안하다. 

 

  
▲ 이옥수의 장편동화 <똥 싼 할머니> , 시공주니어 이 책은 치매 노인을 함부로 대했을 때 얼마나 후회하게 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 박종국
치매

동병상련하는 마음이 이런 것일까. 집안에 아픈 노인이 있는 가족은 그로 인하여 빚어지는 갈등과 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을 이해한다.

 

단지 제목만 보고 ‘아하, 똥 싸는 할머니 이야기구나’하고 그냥 쉽게 넘길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책은 겉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매로 고통 받고 사는 게 얼마나 잔혹한 일인지 곧바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치매 노인을 함부로 대했을 때 얼마나 후회와 절망감을 겪는지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치매 노인은 아이들의 동화에 등장하기 어려운 주제다. 그런데도 그 문제를 쉽게 다루어 아이들이 치매를 이해하고, 가족 모두가 환자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며, 치유해야하는지를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라가며 얘기하고 있다.

 

어른에 대한 예우를 생각하게 하는 시선도 따습다. 이 책은 치매 노인이 있는 가정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다루며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담아낸 동화다.

 

어른에 대한 예우를 생각게 하는 따뜻한 시선

 

시골에 살던 할머니가 새샘이네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는 이사 올 때부터 사사건건 가족들과 부딪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속바지를 입고도 한사코 속바지를 찾는가하면, 한밤중에 물그릇을 늘어놓아 집안을 들쑤셔 놓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이 났다고 소리 지르며 물을 끼얹기도 한다. 심지어는 옷에다 똥오줌도 싸고, 그것을 양말에다 넣어 묶어놓기까지 한다. 더 이상 예전의 할머니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할머니는 왜 이렇게 변해 버린 걸까?

 

할머니는 다른 가족들은 등한시 한 채 아빠에게만 집착을 보인다. 가족은 할머니의 이상한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점차 할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할머니의 그 이상한 행동들이 치매와 관계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놀라고, 할머니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날로 변해가는 할머니의 모습과 할머니를 돌보는 과정에서 서로 갈등을 겪게 된다.

 

치매 노인이 있는 가정이라면 한번씩 겪었음직한 이야기

 

동화를 읽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곤 한다. <똥 싼 할머니>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할머니가 되었다가 아들, 며느리도 되어 봤다. 제각각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이다. 손자, 손녀도 되어본다. 그러면 할머니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친정어머니가 되어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동화 속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그렇게 힘겹지 않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여러 사람의 처지를 다 경험해 보고 싶었다. 그것은, 치매 노인 문제가 단시일에 해결하기 어려운 병마였기 때문이다.

 

가슴이 짠했다.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갈수록 더 심해지자 아빠 뿐만 아니라 식구 모두가 변한다. 차근차근 이야기하지 못하고 서로 화를 내기에 급급하다. 서로 뾰족한 바늘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찌르려는 고슴도치 가족이 된 것 같다.

 

분명 건망증과 치매는 다르다. 할머니는 물건의 소재에 대해 까맣게 잊었던 것이다. 치매다. 이렇듯 이 책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겪게 되는 가족의 갈등을 소소하게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공감하는 바가 크다.

 

<똥 싼 할머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가족의 갈등 소소하게 그려내

 

올해 일흔 살인 할머니는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았다. 그 삶을 탈탈 털고 도시로 이사 왔으나, 정작 노는 법을 모른다. 아파트 생활이 답답하다. 노인당에 가서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경로당에 모여 앉아서 쓸데없는 얘기나 하고 노름이나 한다고 꼬장질해 댄다. 많은 할머니들의 손가락질에 할머니도 맞서 대거리를 한다.

 

문제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할머니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할머니를 두고 자식의 입장에서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설령 할머니가 치매로 잘못을 하였다고 해도 할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가족은 멍들어 간다.

 

이해한다. 나 또한 부모님이 12년째 병환 중이다. 두 분은 의좋게 한달 상관으로 뇌졸중에다 류머티스성 퇴행성관절염을 앓았다. 복잡다단했던 그 일들을 어떻게 다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소설로 쓰면 족히 서너 권은 엮을 거다. 그래도 치유가 끝난 게 아니다. 아직도 병마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는 어머니의 관절염이 더 치명적이다.

 

긴 병 수발에 효자 없다. 처음에는 화급해서 병원 출입이 잦았지만, 이제는 다들 발길이 뜸하다. 모두가 내 몫이다. 때문에 모든 생활이 뒤죽박죽되어 버렸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그게 노인성질환자를 둔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일상다반사다.

 

할머니 가출사건으로 같이 지내기조차 힘이 들어진 새샘이네 가족은 할머니를 ‘사랑의 집’으로 보내게 된다. 이로써 가족은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과 그에 따른 갈등을 겪게 된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동안 아무도 할머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냥 서로 눈치만 보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애써 피한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갈등 속에서 대화하고 타협하는 게 인생이라며 ‘가족의 따듯한 사랑’만이 올바른 치유 처방전이라고 부추긴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만이 올바른 치유 처방전

 

그런 할머니가 이번에는 내 걱정과는 달리 노인복지관 실버주간 보호소에 잘 적응한다. 할머니는 낮에 복지관에 갔다가 집에 오면 저녁을 먹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졌다. 그러나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서 밥을 달라고 문을 두드리며 식구들을 깨웠다. 그리고 복지관에 가자고 엄마를 졸랐다. 이름표를 달고 알림장이 든 가방을 손에 꼭 쥐고 복지관에 가는 할머니는 정말 착한 학생 같다.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는 귀여운 우리 아가 할머니의 은빛 머리 위에 아침 햇살이 반짝 빛났다.

 

이 책을 ‘치매’를 앓고 있는 노부모를 둔 가정은 물론, 이 땅의 모든 자식들에게 권하고 싶다.  

2008.11.26 09:06 ⓒ 2008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