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 많던 아버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12. 2. 10:06

본문

728x90

그 많던 아버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서평] 조영아의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
  박종국 (jongkuk600)
기러기 아빠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러기 아빠는 의사나 변호사, 연예인 등 전문직 고소득자들만의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웬만한 계층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 기업의 경우, 미성년 자녀를 둔 직원의 10% 이상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극도로 열악하고, 경쟁적이며, 소모적인 한국 교육에 자녀가 적응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안쓰럽다. 때문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불하고 국내 대학에 진학시키고 해외 유학을 보낸다. 그렇지만 쉽사리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국내 현실이 너무 두렵다. 그래서 세계 공용어가 돼버린 영어 학습을 기본으로, 자녀가 값싸면서도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더 좋은 환경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으며, 성장기를 즐겁게 보내길 갈망한다.

 

한 기업 직원의 10% 이상이 기러기 아빠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는 혼자 남겨진 아버지에게 쓸쓸함과 외로움의 상징인 집이 점점 넓어진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족의 부재와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 한겨레출판사
이구아나

그러나 처자식을 외국에 보내고 혼자 수년째 생활하고 있는 기러기, 외로움에 지친 기러기는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썰렁한 둥지에 혼자 남아 있는 기러기와 닮았다. 그러면서도 기러기 아빠는 자녀의 더 큰 성공을 위해서 힘들지만 꿋꿋하게 외기러기의 생활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 사회의 일등지상주의와 과열된 교육열, 자식에 대한 유별난 애착이 낳은 '기러기 가족'이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에 있다.

 

조영아의 장편소설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는 항간에 문제시되고 있는 기러기 아빠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이 소설은 "아버지가 필요한 자리에 아버지는 없고,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이라는 전제로 시작한다. 작가는 현대사회를 힘겹게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다양한 모습과 일상을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중심으로 현대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묘사하고 있다.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 아이들과 아내를 둔 기러기 아빠인 '나'는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뒤,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던 중 턱이 빠지면서 우연히 공사장 인부가 자살하는 것을 본다.

 

그 순간 아버지를 팔기로 결심한 그는 <아버지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사이트를 열고 고객의 주문에 따라 다양한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각기 다른 동기와 목적으로 아버지를 빌리고자 하는 숱한 이들을 만나게 된다.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을 요구하는 고객들을 위해 주인공은 젊은 아빠부터 애인, 수다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예식장에서의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 등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그들이 찾는 아버지는 어떤 대상일까. 자신이 차린 음식을 맛있게 먹을 기회조차 영영 떠나보낸 '회환의 대상'에서부터 짬뽕 대신 자장면을 먹고 싶어 했던 어린 아들의 바람을 무참히도 짓밟아 버렸던 '증오와 복수의 대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렇지만 그가 수행한 그 많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찾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아버지가 실종되고 없다'는 비극적인 사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하고 많은 '물건' 중에서 하필이면 아버지를 팔기로 한 것은 자신이 소유한 재산 가운데 그나마 내세울만한 것이 '아버지'라는 판단에서다. 해외로 떠난 가족들과는 단지 통장의 잔고로나 연결돼 있다고 생각하는 그이기에 이런 판단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기러기 아빠의 집은 조금씩 자란다

 

이처럼 <푸른 이구아나를 찾습니다>는 혼자 남겨진 아버지에게 쓸쓸함과 외로움의 상징인 집이 점점 넓어진다는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족의 부재와 존재감을 드러낸다. 작가의 뛰어난 관찰력과 섬세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외된 인간을 대표하는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듬뿍 받는 이구아나를 통해, 현대인들의 삶의 단면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그새 집이 자랐다. 방이며 거실이며 심지어 화장실까지 정확히 어디가 자랐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했다. 가로세로가 한 뼘 자랐는지 공기 중 부피가 한 줌 자랐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확실했다. 썰렁한 실내에서는 비릿하고 텁텁한 냄새가 떠 다녔다. 환기를 시켜야겠어. 머릿속은 그렇게 지시하고 있었지만 몸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껌뻑껌뻑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이구아나는 어쩌고 있을까. 숨을 쉴 때마다 텁텁한 냄새가 폐부를 찔렀다. 오랜 수감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수형자처럼 나는 오랫동안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모진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가누기 힘든 사람처럼 아련한 옛 추억의 꼬투리를 찾아 더듬었다. 하지만 비릿하고 텁텁한 냄새가 물고 오는 것은 오로지 이구아나뿐이었다.

 

저자는 그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왠지 모르게 조금씩 집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아버지의 외로움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장점이 있는 듯한 집은 나에겐 너무 크고 벅찬 공간이며, 쓸쓸함과 외로움 그 자체다. 아버지를 빌려주는 일도 시들해질 무렵, 그의 유일한 소일거리는 '푸른 이구아나'를 보살피는 것이다. 이런 작은 일로 그는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한다. 가게가 망한 것을 비관해 자살한 지인의 용기를 부러워하면서도 선뜻 용기 내어 실천하지 못하는 그는 단지 나약한 아버지로 비춰질 뿐이다.

 

그 많던 아버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아버지를 파는 일이 점점 무료하게 느껴지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자신이 없어져 아버지도 그 무엇도 아닌 존재가 된다고 느끼던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아버지들이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일회용 티슈처럼 필요할 때만 사서 쓰는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이 의지하고 있던 이구아나가 사라지면서 그는 삶에 대한 허무와 좌절을 느끼고, 홈쇼핑에서 팔고 있는 이구아나를 찾아 나선다. 혼자 남겨지면서부터 어떤 것에도 애정을 쏟지 못했고, 가족에게도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그는 가족들의 사랑과 애정을 듬뿍 받은

'푸른 이구아나'를 찾고 싶은 거다.

 

결국 그는 아이들과 아내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아내가 챙겨놓은 '유기농 오곡 시리얼'과 편의점에서 산 라면, 햇반을 먹으면서 할 일 없이 쓸쓸히 혼자 집을 지키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빌려드립니다'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잔금이 줄어들고 있는 통장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까지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씩 전화를 걸어오는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둔 사실도, '아버지 역할 팔기 사업'에 대해서도 말하지 못한다. 대신 아내가 애정을 갖고 키우다가 놔두고 간 이구아나의 안부를 전해주면서 살아간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이 작품에 대해 "오늘의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인간 자신이 황혼기에 이르러 쇠락하고 있다는 예감이 지배적인 시대에는 이런 유형의 소설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렌탈 라이프(rental life) 시대의 주체들이 처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존재증명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평했다.

 

"그런데 그 많은 아버지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단 일인지. 아버지 자리는 많은 데 정작 그 자리를 지켜야할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아버지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08.12.02 09:47 ⓒ 2008 OhmyNews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