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어떤 형태일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비자발적이고 준조세 성격의 기부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 이후 정부 주도였던 모금활동이 민간기구로 이양되고, 민간의 자발적인 기부문화가 확산되면서 기부 방식도 다양화되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서 기업의 사회공헌이 늘어나고, 개인의 기부문화가 활성화됨에 따라 기부환경이 변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기업의 사회공헌 차원의 기부가 우리나라 기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복지 단체를 운영하는 재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기부문화가 엄청 활성화 되어 있다. 특히 미국은 모든 기업체의 CEO가 기부문화에 밀착되어 있으며, 정부차원에서도 기부문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우리의 기부문화는 아직 기부 정보 채널도 걸음마 단계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이냐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정의와 환원적 차원에서 보면 실로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어떤 형태일까
'아름다운 재단'은 1% 나누기 기부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공익재단이다. 이 단체에서 전국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부문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52.6%)이 자선기부의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의 한해 기부액은 1인당 평균 5만1천여 원 정도다. 이는 1998년 미국의 1인당 기부액수 1천75달러(약 130만원), 1996년 일본의 240달러(약 30만원)와 비교된다. 생활수준 차이를 고려한다고 해도 너무 초라하다. 게다가 절대다수가 비정기 기부자로, 정기기부자는 18.2%에 불과했다. 정기기부자가 전체의 70%에 달하는 미국과는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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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돼지 저금통 캠페인 생명나눔재단은 지난 10일 김해 장유 삼문초등에서 '행복한 돼지저금통 캠페인'을 벌였다. |
ⓒ 생명나눔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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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자신의 만족과 사치를 위해 당시 돈을 썼던 부유층과는 차원이 다른 사회적 관점과 철학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돈 벌기’에만 급급해 한 ‘수전노’가 아니라, 그 부(富)를 사회에 환원시킨 존경할 만한 경영자였다. 이전의 부자들이 돈을 버는 데만 급급했던 소위 ‘샤일록(Shylock)형 부유층’이거나 ‘졸부’로 평가받았다면 그는 최초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 고귀한 이들이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라는 개념을 기업과 경영에 접목시켜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간 경영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굳이 외국 사례를 덧붙이지 않아도 어느 사회에서나 명예를 얻거나 존경받는 사람은 사회전반에 헌신하고 기부하는 데서 드러난다. 미국의 경우 건국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정치인들의 독선, 관료들의 부정부패, 기업가들의 천박함, 시민들의 몰염치 현상 등이 만성적인 사회고질병으로 부각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지난 역사 속에서 부유층들이 사회적 명예와 존경이 어떻게 얻어지는가 보아왔다. 때문에 거부들이 벌여온 자선사업과 사회 기부는 미국이 성숙해지는 전환점이 됐다.
카네기, 부(富)를 사회에 환원시킨 존경할 만한 경영자
미국에서 자선활동은 부유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였다. 막대한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자선활동에 나선 이들은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그에 결정적 모범사례가 되었던 앤드류 카네기는 현재의 세계최고의 갑부 빌 게이츠에게까지 다양한 방면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유럽에서도 귀족들이 행해야 할 덕목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칭송되어왔다. 최근 영국 왕실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내핍생활은 고무적이다. 불안정한 시국으로 난마같이 있는 태국 국민들이지만 태국국왕에 대한 존경도 여전하다. 이는 고가품과 사치품으로 과시욕을 내뿜는 대한민국의 일부 천박한 부유층과 너무 비교된다.
단지 부유하다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명예를 얻을 수 없다. 한국의 부유층들이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고 존경받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필요가 있다. 기부를 많이 하면 정말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일전에 모 재벌 일가가 상상도 못할 돈을 기부한다고 신문에 났다. 그런데 그 속을 뜯어보면 그것은 아름다운 기부가 아니었다. 기부를 통해서 불법정치로비, 탈세 같은 범죄행위에 대한 국민적인 비난을 면피하려는 의도가 불 보듯 뻔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구경도 하지 못한 짓이다.
자선활동은 부유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
우리의 재벌들은 버젓하게 기부금으로 미술재단이나 장학재단을 만드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드러내놓고 열을 올리니까 겉보기에는 기업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 같으나 그 모양새가 썩 안 좋다. 대개가 무슨 재단이 돈세탁 경로가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 좋게 보이지 않는다.
바람직한 기부문화를 정착하려면 무엇보다도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 그 방법은 강제하는 것보다 소득을 투명하게 밝혀서 적정한 세금을 내도록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자연 올바른 기부문화가 확립되고, 확보된 세원으로 사회복지에 적극 투자할 수 있다.
실제로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에선 수입의 50% 가까이를 세금으로 뗀다. 그 세금의 상당부분을 복지에 사용하기 위해서다. 지금 우리나라 형편으로는 손톱도 들어가지 않는 얘기지만, 그래도 그 나라 국민들의 저항이 크지 않은 것은 세금이 공정하게 집행되기 때문이다. 확고한 원칙에 터하여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덜 낸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적게 버는 사람들이 지원과 혜택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수입이 투명하게 노출되는 월급쟁이들만 봉이다. 수입의 50%를 일괄 기부한다고 해도 역시 고소득자들은 소득을 축소신고하거나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다.
사실 서양 사람들, 특히 미국같이 이기주의적인 국가도 드문데도 기부에 대해서는 앞을 다툰다. 우리나라는 상호 부조문화가 아주 발달되어 있다. 예로부터 대동계, 두레, 품앗이 등의 미풍양속이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나라다. 그런데도 기부에 대해서 인색한 까닭은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요인이 크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사회 시스템적인 극명한 요인이 있다. 미국의 경우 기부금은 상당부분 세금으로 인정해 준다. 또한 장사를 하려면 사회 점수에 확실히 반영된다. 기부를 하지 않는 회사는 생존이 어려울 만큼 기부에 대한 강요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하여 일부로 나서서 강제하지도 않는다. 외형으로 도덕적이면 사회는 이를 수용하는 것이나 아무리 착해도 외형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몰락하는 것이다.
기부에 대해서 인색한 까닭은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요인이 크다
미국사회는 한번 바람피운 전력이 있는 사람은 이 사실이 공포되고 인정하게 되면 대통령도 꼼짝 말라고 할 수 있는 나라다. 그러나 천하에 없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도 외형으로 인정되지 않으면 절대 단죄하지 않는다. 기부문화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부분이 서양의 문화다. 즉 시스템적으로 돈을 많이 받아서 복지 문화를 만들겠다는 취지가 지금의 기부문화를 이룬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진심어린 성금이 많지만 서양과 같은 의도적인, 분명하게 ‘주고받는 것(Give and take)’의 확실한 사회시스템으로 기부를 이끌어 내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다. 우리나라도 그렇게라도 해서 기부문화를 발전시키는 것이 어떨까?
기부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식이 달라진다. 쥐꼬리만한 돈을 버는 사람들의 기부금도 값지게 쓰인다. 때문에 기부는 어떠한 원칙에 따른 일률적인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부는 반드시 돈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자원봉사도 좋고,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가사지원이나 신변처리, 일상생활 및 이동보조 등 장애인에게 봉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이 밖에도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 홀트아동복지회, 따뜻한마음재단, 아름다운 재단, 생명나눔재단, 기아체험 24시간, 해피빈,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기부포털 사이트를 찾는 것도 좋을 듯싶다.
아무튼 아름다운 기부문화 정착으로 떳떳하고 존경받는 부자가 많아져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