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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족 울타리만큼 든든한 게 있습니까?"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8. 12. 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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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족 울타리만큼 든든한 게 있습니까?"
[우리 사는 이야기] 나흘로 씨의 어떤 하루
  박종국 (jongkuk600)

회사일로 하루 종일 골머리 싸매야했던 나흘로 씨, 마치 물 먹은 솜처럼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그래도 몸 편이 뉘일 곳이 가정이라 용케 마음을 가다듬고 집으로 향합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금방이라도 다가와 와락 안길 것 같습니다. 환한 얼굴로 현관문을 엽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거실에 불은 환하게 밝혀져 있는데 누구하나 달려 나와 반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순간, 나흘로 씨, 그 좋았던 기분이 몹시 불쾌해집니다.

 

  “아니, 집안에 아무도 없는 거야! 사람이 왔는데도 눈인사도 없어!”

 

눈을 한껏 부라리며 한껏 목청을 돋워보지만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사뭇 혈압이 오릅니다. 그러다가 곧장 안방 문을 열어젖힙니다. 아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체 이 시간에 어딜 갔단 말이냐? 화딱지가 돋았지만, 애써 참으며 아이들 방문을 열어봅니다. 허참, 아들딸은 제각각 컴퓨터에 빠져 아빠가 방에 들어와 있는지조차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나흘로 씨, 하다못해 냅다 고함을 지릅니다.

 

  “야 이 녀석들아, 대체 이게 뭐냐? 아빠가 퇴근했는데도 코빼기를 보이지 않고 이렇게 컴퓨터에 빠져 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짓이냐? 너희들 정말 이럴래? 근데 너희 엄마는 어딜 갔니? 이 시간에….”

  “몰라요. 저희도. 아까 점심 때 나가셔서 아직 안 들어오셨나 봐요.”

  “그래?”

 

나흘로 씨 불끈하게 솟구치는 감정을 삭이며 침대에 벌러덩 누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갖가지 장면들이 천정에 비춰집니다. ‘아니다아니다’ 하면서도 뒷맛이 영 개운치가 않습니다. 일어나 찬물 한 컵을 들이켰지만 시답잖은 생각들은 쉬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러나 몇 번을 거듭해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침대에 손전화기를 내동댕이치고 나서도 나쁜 생각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흘로 씨 평소와 답지 않게 쓸데없는 의구심을 가져봅니다. 거실을 왔다갔다 종종걸음 치며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냅다 아이들을 불러 제킵니다. 역시 아이들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 놈들아, 아빠가 부르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예’하며 달려 나와야하는 것 아니냐? 꼭 그렇게 컴퓨터만 붙들고 있어야 해. 너희들 컴퓨터 중독인 걸 알아 몰라. 응?”

  “아빠 우리가 뭐 컴퓨터 중독자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길 바래요? 아니죠?

  “물론 그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아빠가 무척 화가 나 있거든. 그래서 하는 얘긴데 너희들 컴퓨터 그만하면 안 되겠나? 무슨 얘기라도 좋으니 아빠하고 얼굴 맞대고 있으면 안 되겠니?”      

  “아빠 도대체 왜 그래요. 평소 아빠답지 않아요. 무슨 불안한 일 있으세요? 얼굴이 무척 흥분된 것 같아요. 무슨 안 좋은 일 있어요? 엄마 땜에 그래요? 아무 일도 아닐 거예요”

 

그랬다. 중3인 아들 녀석도, 초등학교 6학년 딸내미도 지금 이 순간에는 나흘로 씨의 마음을 헤아려주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나흘로 씨,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정도가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당장에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뱉어버렸습니다. 엉겁결에 낭패를 당한 것처럼 아이들 나흘로 씨 앞에 오도카니 섰습니다.

 

  “너희들 뭐야! 매일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컴퓨터 앞에만 붙어 있느냐 말이야. 할 말 있으면 해 봐. 내가 뭐랬어. 컴퓨터는 하되 너희들 할 일을 해 놓고 하랬잖아. 안 그랬어? 왜 말이 없어? 입이 없어!”

  “…….”

  “그래, 이제 이 아빠하고는 상대하지 않겠단 말이지. 알았어. 난 원래 이 집에서 혼자였어. 철저하게 외톨이였단 말이야. 꺼져버려!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 고얀 녀석들!”

  “……”

 

아빠가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자 아이들의 표정은 파르르하게 굳어 버렸습니다. 나흘로 씨가 흥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수록 아이들은 말문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럴수록 답답해지는 것은 나흘로 씨였습니다. 분에 못 이겨 한참을 윽박지르다 막 아들놈 어깨를 후려치려는데, 등 뒤에서 아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당신 지금 무슨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아이들한테. 멈추지 못해요!”

  “뭐, 그런 당신은 지금까지 무엇 하며 싸돌아다니다가 온 거야?”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싸돌아다니다가 왔나구요? 어쩜 당신 그렇게 말해요.”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울기는 왜 울어!”

  “…….”

 

목 놓아 흐느끼는 아내의 처절한 울음은 쉬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 어느 누구나 나흘로 씨 곁에는 없습니다. 집안 분위기가 얼음장같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흘로 씨는 나흘로 씨대로 방 안에 붙박이로 틀어 앉았습니다. 참 난감한 일입니다. 대체 일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막막해집니다. 애초 직장에서 좋잖은 일을 집에까지 묻혀온 게 잘못입니다. 그걸 잘못 터뜨린 것입니다.

 

  “여보, 미안해. 마음 풀어요. 모두 다 내가 잘못했어요. 오늘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퇴근해보니까 당신도 없고, 아이들도 컴퓨터 하느라 정신이 팔려 말대꾸도 하지 않기에 화가 나서 닦달한 게 잘못됐어요. 미안해요.”

  “당신, 내가 함부로 쏘다닌다고 하셨죠? 그래요. 나 생각 없이 싸돌아다니는 여자에요. 당신 정말 마음에 없는 이야기 하지 말아요. 이날 이때까지 살아도 그걸 몰라요. 나라는 여자 그런 사람 아니에요. 못 믿어요? 섧어요. 너무나 섧단 말이에요.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다 할 수 있어요.”

  “…….”

  “나, 당신 직장에 구조 조정 있다고 해서 상무님 만나 뵙고 오는 길이에요.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당신이란 위인 입이 열 개라도, 곧 죽어도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잖아요. 나 지금 지푸라기라도 있으면 잡고 싶은 심정이에요. 알아요?”

 

나흘로 씨 시꺼먼 마스카라 자국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아내한테 미안합니다. 잠시나마 아이들을 다그치고, 아내를 의심했던 일이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무르팍에 얼굴을 파묻고 마른 눈물을 삼킵니다. 어쩌다 내가 이 자경까지 이르렀는가하는 자괴감으로 몸서리칩니다. 순간, 아내의 따스한 손길이 그의 등을 매만집니다. 아내의 따스한 온기가 코끝에 와 닿습니다. 등 위에 선 아이들이 여느 때보다 한층 더 사랑스럽습니다. 나흘로 씨 새삼스럽게 가족이란 울타리를 소중하게 느껴봅니다.

 

참 어렵고 힘든 때입니다. 어느 집할 것 없이 이러한 상황은 비슷할 것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을 두고 괜한 화딱지를 돋우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되어 이해하고 배려하는 애틋한 마음을 모아야하겠습니다. 제 혼자만의 생각으로 세상일이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내’ 탓이고, ‘네’ 덕이라고 부추겨 생각한다면 이즈음의 힘든 일 말끔하게 풀려납니다. 

2008.12.26 14:1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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