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갑니다. 때문에 하잘 것없는 일에도 마음이 뒤틀려서 얼굴 붉히며 싸우기도 하고, 너무 좋아서 까르르 웃다가 되레 눈물까지 내비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궂은일보다 좋은 일이 많아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다할지라도 마음만은 풍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이고 참모습입니다. 아름다운 게 있으면 너저분한 것 있고, 사랑이 있으면 미움도 같이 합니다. 마찬가지로 즐거운 만남에는 반드시 애틋한 이별도 따릅니다. 사람 사는 이치는 똑같습니다. 근데도 항상 양지만을 원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모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
우리 인간은 돌부처가 되어 혼자 산다면 모를까, 여하튼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간관계라는 것을 맺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란 사람들 사이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주고받는 관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관계도 없이 그냥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절친한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만나면 마음이 편해지기에 서로 보자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친구에게 편안함을 주고, 친구 역시 나에게 편안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를 벗겨먹거나 뒤통수를 때리지 않는다면 나도 그러지 않는다.”
“네가 나에게 점심을 샀으니 이따가 나는 저녁을 사겠다.”
이런 관계는 ‘양성(良性) 관계’입니다. '윈윈 게임'입니다. 서로서로 좋은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 반대는 ‘악성(惡性) 관계’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주위 사람들과 신경전을 벌입니다.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꼬입니다. 상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는 이상하게도 악성 관계가 양성 관계보다 훨씬 많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참, 왜 그런지 모르겠어. 운전대만 잡으면 ‘헐크’가 돼. 두 얼굴의 사나이가 따로 있나. 이 세상에 바쁘지 않는 사람이 있나? 다 바쁘지. 혼자만 바쁜 게 아니잖아. 근데도 봐. 도로를 따라 순리대로 가면 돌 것을 마치 미꾸라지 흙구덩이를 빠져나가듯 요리조리 왜들 새치기를 하고 그래. 그것뿐인 줄 알아. 급기야 차를 세우고 내려서서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이놈, 저놈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봐. 그럴 때면 사는 게 두려워. 다들 핸들만 잡았다하면 악에 받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야.”
얘기처럼 누구나 악성 관계는 원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악성 관계가 형성된 원인은 아주 단순합니다. 내 욕심 때문입니다. 상대가 먼저 잘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그냥 잘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잘해주기를 요구하는 게 문젭니다. 자기는 상대에게 별로 잘해 주려 하지도 않으면서 상대에게만 잘해달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이율배반적입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악성 관계는 현재 우리들의 자화상
그러나 그 어떤 관계지향을 떠나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어디인들 눈밭이라도 결코 춥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부대끼다 보면 인생의 한계를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촘촘하게 짜여진 인간관계가 너무나 피곤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차가운 사람과 같이 있는 것만 생각해도 벌써 마음이 시립니다. 때문에 그곳이 활활 타는 장작불 곁이더라도 온몸으로 파고드는 차가움을 떨쳐 버릴 수 없습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은 눈을 즐겁게 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 마음은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따오기는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듯이 타고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착하고 훌륭한 품성을 가집니다. 마찬가지로 기름진 땅을 그냥 두면 그 땅에서 아주 좋은 열매와 잡초가 함께 자랍니다. 서로 좋게 어울려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비운 사람한테는 누가 해코지를 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어두운 방에서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음이 밝은 사람이 만나는 나무나 바위, 그것이 바다이거나 강물, 조그만 풀꽃이거나 한 줌의 흙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들을 밝은 빛을 냅니다.
허수아비는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는 만큼 행동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허수아비는 제 몫을 해냅니다. 논이나 밭두렁에 세워 두었을 때는 원래의 허수아비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에게 허수아비 신세는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그냥 대와 짚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들 마음속에는 착하고 나쁜 마음이 동시에 자랍니다. 그래서 걸림돌 없이 살라고 했습니다. 의미심장한 얘깁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이 세상의 행복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 또한 내가 만듭니다. 불행은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모두 내 탓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걸림돌 없이 살아라
자기 마음을 잘 챙겨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활 태도를 갖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유리하다고해서 교만하거나 과신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하고자 하는 일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용기를 잃거나 비굴할 까닭이 없습니다. 항상 어떤 일을 실행하기에 앞서 깊이 생각하는 것은 좋으나 치우친 행동은 금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추진하는 일이 명확하다고 판단될 때는 과감하게 행동하고, 눈처럼 냉정하며, 불처럼 뜨거운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잘 참아 내고, 매서운 비바람에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출 수 있는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사회 정의와 오물을 구별할 줄 모르는 사람과는 그 어떤 얘기도 통하지 않습니다. 물꼬가 탕탕 막힌 사람과는 의견수렴의 강이 흐르지 않습니다.
바람에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출 수 있는 겸손함을 지녀야
그러나 무시로 터지는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도 알고, 호랑이처럼 사나워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소신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합니다.
이 좋은 세상 그저 허투루 산다는 것은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좋은 인간관계는 더욱 따뜻한 빛을 뿜어냅니다. 좋은 관계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바로메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모두가 하나로 열정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 사회, 사람만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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