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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편향된 성의식 고정관념 허물기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 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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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여자가 앙탈 부리면 꼴 사나워져"
[새해 바란다] 우리 사회 편향된 성의식 고정관념 허물기
  박종국 (jongkuk600)

대체 그냥 앉아서 기다린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고정관념은 쉬 바뀌지 않는다. 특히 사회통념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녀 불식시키기 어렵다. 의례적인 사회관행 또한 그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 때만 해결의 굶이 보인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이다. 

 

어제 제자(○○는 현재 △△에 근무하고 있으며, 25세로 사회 초년병이다)로부터 전화가 왔다. 반가웠다. 그러나 제자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안부를 묻기도 전에 먼저 제자가 말을 꺼냈다. 남자에 대해서, 직장 생활에 대해서 무척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제자는, 재작년에 대학을 졸업해서 올해 초 △△회사에 당당하게 입사했다. 장했다. 해마다 취업난이 심한 터에 그것도 남자들과 어깨를 겨루어 대기업 공채되었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자의 목소리는 슬펐다. 대뜸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물었다. 한참을 뜸 들이더니 일하는 여자들, 특히 직장여성들이 회사 내에서 남자 동료들과 겪어야할 어려움이 너무 큰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여성들이 직장 내에서 겪어야할 어려움이 너무 많아요"

 

그들(직장 내 남자동료)은 동료간의 관계에서도 여자 동료들은 자신의 동료가 아니라고 대한다는 것이다. 먼저 ‘여자’로 본다는 사실에 곤혹감을 느낀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상사들 또한 여사원들을 남자 부하들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하고 있어 불편하다고 했다. 업무에 있어도 같이 입사한 남자 동료들과는 일처리 코드 자체가 영 다르다고 했다.

 

제자의 목소리가 높았다. 직장 생활을 해보니까 '여자를 여자'로만 대접하려는 사회적인 고정관념이 새파랗게 살아있더라고 했다. 세상이 변해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어울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마당에 서 보니 아무리 변했다 해도 남자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직장 내에서 남자 동료들이 여자 동료들을 그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모욕적이라고 했다.

 

잠시 목을 놓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 동료들보다 일처리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을 때 그 모멸감은 참아낼 수 있지만, 자신을 동료로서가 아니라 ‘여자’로 보는 것,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을 때의 그 음흉한 눈빛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여자'로 본다는 사실에 곤혹감을 느껴요"

 

몇 번을 고심한 끝에 관리자에게 시정을 요구했단다. 그런데 답변이 위험천만이라고 했다. 

 

"남자라면 으레 여자에게 짓궂게 굴고 싶은 데가 있는 것이야!"

"남자들이란 다 그런 족속이려니 하고 넘길 줄 알아야지."

"그걸 이해 못하고 눈을 똑바로 뜨고 앙탈을 부리면 직장 내에서 꼴사나워져."

"여자로 태어나서 남자들의 희롱을 한 번 당하지 못한 여자야말로 얼마나 불쌍한 존재냐?"

 

며 되레 비아냥대며 지청구를 하더란다. 제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런 시시껄렁한 경우가 있나. 요즘 같이 감각적인 사고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 따위(?) 하소연이 시시하게 들릴 것이다. 어떤 직장에서나 성희롱은 비일비재한 일이니까. 그렇지만 단지 일회적인 성희롱도 '불쾌하다'거나 ‘재수 없다’는 생각에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데, 끊이지 않는 성희롱은 문제다. 같은 직장에서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일해야 하는 남자, 그것도 인사고가를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상사가 교묘하고 은밀하게 성희롱을 반복한다면 어느 직장이든 간에 지옥일 수밖에 없다.

 

"선생님, 그런데도 목석처럼 꾹 참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제가 직장을 떠나야 하나요?"

"답답해요. 왜 여자만 이런 피해를 당해야 하지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치욕적인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제자가 되물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래서 직장 내의 성희롱 정도가 드물어졌다. 아니, 그것은 상식선도 아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남자들의 성희롱을 범죄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팍팍한 직장 생활을 부드럽게 해주는 일종의 '활력소(?)'로 '유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농후하다. 참 형편없는 생각이다.

 

제자의 말에 따르면 상사가, 남자동료가 친근하다는 표현으로 그냥 치근대는 것을 가지고 여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여자의 '히스테리'요, 조직의 분위기를 헤치는 '사회부적응자'요, 매사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신경증 환자'로 몰아붙이는 데 반해, 그런 남자한테는 너무나 관대하다는 것이다.

 

즉, 남자는 사람이 너무 좋아서 아무한테나 친밀하게 굴었던 게 잘못이며, 술김에 저지른 실수라는 식으로 너그럽게 봐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자의 평소 행동이 그런 빌미를 제공했으니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말 가당찮은 얘긴가.

 

우리 사회의 성의식, "아직도 너무 관대해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크게 문제시되고 있는 성희롱의 문제는, 비단 직장 내에서만 일어나고 불거지는 게 아니다. 여자로서 살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성희롱을 당했던 기막힌 경험이 없는 여자는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통념은 아직도 성희롱을 당한 여자에게는 '칠칠치 못한' 여자로, 성희롱을 한 남자는 '으레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성희롱은 단지 남자와 여자의 성의식 차이에서 오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차별을 강화하는 고용상의 문제로 보아야한다. 똑같은 날 입사한 동료라고 해도 승진이나 임금, 고용안정 등에 있어서 여자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80% 이상의 여자들이 성희롱을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은폐되어 왔던 성희롱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인 법제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세상이 바뀌어야한다.

 

끝내 전화를 놓지 못하는 제자는 흐느꼈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참담한 이야기를 들으니 나 역시 분루를 삼켰다. 내일 당장 직장에 나가면 다시 그 철면피 같은 동료와 상사와 부대껴야할 제자가 안쓰러웠다. 아무리 세상 남자들이 다 그런 치한들이 아니라고 다독여도 제자는 끝내 굳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남자들 스스로 사회적 통념을 깨려는 의지가 없다면 양성평등의식(Gender)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을까. 남자들도 성희롱의 피해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왜 모를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자와 직접 통화를 바탕으로 기사화한 것이며, 신상보호를 위해 취재원을 밝히지 않습니다.

2009.01.07 13:51 ⓒ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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