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당신은 행복합니까?

한국작가회의/오마이뉴스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 15. 18:20

본문

728x90

당신은 행복합니까?
  박종국 (jongkuk600)

희랍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행복은 원래 몸이 약해 힘이 없고 불행은 몸이 튼튼하고 힘이 세었습니다. 불행은 자기 힘만 믿고 행복을 만나기만 하면 못살게 구박했습니다. 행복은 불행의 등쌀에 못 이겨 피해 다니다가 마침내 하늘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주신(主神) 제우스와 상의를 했습니다.

 

제우스는 행복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네가 여기에만 있겠다면 당장은 불행을 피할 수 있어 좋겠지만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인간들도 생각해야 될 게 아니냐. 그러니까 이렇게 하려무나. 여기서 있다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비로 직행하도록 해라. 그러면 불행한테 붙들릴 염려도 없고 꼭 만나야 될 사람도 찾아갈 수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어 인간은 좀처럼 행복을 만나가가 힘들고 불행만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추구하기가 힘든 행복에 대한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거기에 맞춰 만들어낸 우화입니다.

 

  
▲ 영화 <6년째 연애 중> 영화 <6년째 연애 중>에 출연한 배우 김하늘의 환한 웃음
ⓒ 피카소 필름
웃음

 

동서고금을 통해 많은 논자들이 이러쿵저러쿵 저마다 행복에 대해서 한 말씀씩 늘어놓았지만, 아직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서 매듭지어 놓은 것은 없습니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것은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욕망의 소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행복지수’라는 그 가치를 가시화시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그러나 행복이라는 것은 추상명사답게 모양이나 질을 누가 딱 잘라서 ‘이것이다’라고 한정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저마다 추구하고 있는 지상의 욕망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행복의 정의를 내려야 가장 근사한 것일까요? ‘왕후장상이나 ‘금은보화’를 행복의 대상으로 삼고, ‘안분지족’이나 ‘청빈낙도에 두어야 할까요. 그렇잖으면 ’덕목‘이나 ’명예‘, ’건강‘이나 ’장수’ 등 등 정신적 만족, 유체적인 것에 두어야할까요.

 

행복은 누구에게나 다 골고루 주어진 것도 아닐뿐더러 원한다고 누구에게나 다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우연찮게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붙들고 있던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는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욕망은 10만 원짜리 양복을 입고 싶은데 가지고 있는 돈이 8만원밖에 없다고 하면 행복지수(행복=소유/욕망, 미국의 경제학자 유진 스타이러 이론)는 0.8이 됩니다. 결국 행복은 언제나 소유와 욕망이 같은 1에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8만원짜리 양복에다 맞추고 나면 행복지수가 올라갑니다. 즉, 욕망의 액수를 낮추어 잡으면 지수가 올라가 충분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그 자제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라든지 정신적 갈등쯤은 자제력으로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하는데 두 끼로 참는다든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야 목적이 달성되는데 수원쯤에서 만족을 찾으라고 한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무조건 욕망을 낮춰 행복을 찾아야 한다면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행복은 그 어떤 수치놀음으로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어느 일간지가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라는 제목으로 현상모집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1위로 당선된 것은 놀랍게도 ‘모래성을 쌓는 어린아이’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아기를 목욕시키는 엄마’였고, 3위는 ‘큰 수술을 가까스로 성공하고 막 수술실을 나서는 의사’였으며, 4위가 ‘작품의 완성을 앞두고 콧노래를 흥얼대는 예술가’였습니다. 이런 순위로 행복의 등위를 매겨놓은 것에 공감하십니까.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

 

어린이가 모래성을 쌓는 것은 어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차마 하찮은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과 한두 시간 지나면 파도가 씻어가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들한테는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습니다. 그들은 모래성 쌓기를 통하여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가 아기를 목욕시키는 것,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 예술가가 자기 열정을 쏟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는 일 자체가 그들의 마음을 담뿍 쏟을 수 있는 즐거움이기에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아이의 위치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위치에서, 의사는 의사의 위치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범위 내의 일에 흠뻑 빠졌다는 것입니다.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충분한 행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기를 목욕시키면서 그 아이를 대통령이나 재벌총수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없을 겁니다. 의사도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뿐이고, 예술가도 자기의 혼을 심겠다는 마음뿐일 겁니다. 편작의 명성이나 일확천금을 노리겠다는 욕망은 없습니다. 나중에 그런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과정에 충실하였던 결과론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엉뚱한 욕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행복을 소망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하는 일 자체가 하고픈 마음을 담뿍 담을 수 있는 즐거움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입니다. 다음으로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엉뚱한 욕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엉뚱한 욕망을 갖지 않습니다

 

행복이 아무리 추상명사로 운위되고 있다지만, 그것은 결코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주변 가까이에 늘 함께 있습니다. 더구나 큰 것에 있다기보다는 차라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있습니다. 다만 쉽게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당장에 안위를 구가하지 못했다고 해서 조급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행복은 아직도 몸이 약하고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불행은 이런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몸이 거뜬합니다. 여느 때보다 힘이 세어졌습니다. 고약하게도 불행은 자기 힘만 믿고 행복을 만나기만 하면 못살게 구박을 해댑니다. 행복은 불행의 등쌀에 못 이겨 피해 다니다가 날이 저뭅니다.  

 

요즘 단 하루를 사는 데도 힘겨운 사람이 많습니다. 물론 남들처럼 야무지게 처신하지 못한 당사자의 책임이 크지요. 하지만 사사로운 책임공방을 하기 전에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헤아림이 필요한 때입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는 더욱 가련해집니다. 싸늘한 냉방에서 서로의 체온을 의지한 채 긴긴 겨울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는 애달픈 가족을 생각해 봅니다. 정녕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한데도 당신은 진정으로 행복합니까?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