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교 기숙사에서 잠을 자고 일찍부터 서둘러 로즐리(Rosely Maria Paini)를 따라서 상파울로로 나왔다. 로즐리는 상파울로 주 MST 간부이며(상파울로는 주의 이름이며, 도시의 이름이다-필자주), 생산과 환경분야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마침 정치학교에서 회의가 있어서 참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는 그녀가 살고 있고, 활동하는 정착지로 갔다.
함께 상파울로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녀에게 얼만큼 점거활동에 참가했냐고 물으니 웃는다. 수를 셀 수 없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의 시위조직자에게 몇 번 시위를 조직했냐고 묻는 것과 같은 우문을 한 셈이었다. 그녀는 평균 1년에 5번 정도 점거를 한다고 했다. 물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상파울로 근교 정착지, 돔 토마스 발두이노 (Dom Tomas Balduino)
상파울로 근교의 날씨는 아침 저녁으로 서늘했다. 브라질의 기후로는 겨울에 해당되는 날씨이다. 내가 방문한 정착지는 상파울로의 근교에 위치해 있었다. 내가 정착지를 방문한 날은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정착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이 이 곳에 정착하기까지 근 9년 동안 겪었던 고통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곳에 있는 시간 내내 마치 하늘을 걷는 느낌을 받았다. 따뜻하고 행복했다. 아마도 소박한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기운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로 보는 상파울로 근교 정착지, 돔 토마스 발두이노(Dom Tomas Balduino)의 전체 모습.ⓒ 김애화
정착지는 면적이 615헥타르 정도 되는 넓은 곳이었다. 그런데 전체 땅 중 절반은 자연보호를 위해서 경작할 수 없게 돼 있다. 환경을 보존하는 일도 정착지의 중요한 일이다. 이 넓은 토지가 63 가구의 소유다. 정부가 발행한 부동산권리증에 따르면 이 지역은 63가구의 가구주 이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MST의 원칙에 따라서 내용적으로 이 소유는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한 가족당 3 헥타르를 경작할 수 있다. 정착지의 가족들은 자손까지 이 땅을 소유하고 경작할 수 있다. 그러나 떠나면 소유권과 경작권을 잃는다. 엄격하게 말하면 점유권이라 할 수 있다.
정착지의 중심에는 사회적 공동 구역이 있는데, 공동체 활동을 위한 센터와 병원 등이 세워질 예정이다. 오래된 정착지 중에는 학교, 병원 등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곳은 신생 정착지라서 아직 독자적으로 이런 시설을 운영하고 있진 않았다. 학교와 병원은 정착지의 외부 시설을 이용한다. 정착지는 사회적 구역 외에 3개의 핵(구역)으로 나뉘어진다. 63가구가 3구역으로 나뉘어져 공동경작을 한다. 주로 꿀과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13가족으로 이루어진 1구역은 꿀을 집단생산하고 있다.
63가족은 2000년부터 활동에 참가한 가족이다. 처음 점거는 2000년에 일어났다. 처음 점거에 참가한 가족의 수는 400여 가족을 넘었다. 그러나 경찰에 의해서 쫓겨나 이 지역 부근의 거리에서 캠프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다시 점거를 시도하여 이 땅의 소유를 인정받게 되었다고 한다.
*무토지 농민들이 처음 토지에 들어가면, 대지주가 고용한 사병이나 대지주 통제 하의 경찰에 의해서 보통 한번 이상 쫓겨난다. 그러면 무토지 농민들은 손에 잡히는 모든 것, 검정색 천막, 철판 등을 이용해 캠프를 만든다. 그리고 캠프에서 작은 텃밭으로라도 농사를 시작하여 자급자족 기반을 마련한다. 자급자족 기반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MST 주 사무실과 전국 사무실, 다른 정착촌, 노동조합, 교회, 동조적인 정치조직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캠프 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굶주림과 병, 점거 지연이나 행정 지연에 의해 참가 가족들의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토지 점거에 성공하더라도 법정에서, 또는 정부 농업개혁국에서 토지소유권에 대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보통 2~4년이 걸린다. 브라질 헌법은 경작되지 않는 토지는 공공의 이익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바로 이것이 점거의 근거가 된다. 점거 이후, 점거된 토지가 경작되지 않았다는 것과 공공의 이익에 맞지 않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토지 소유권을 얻게 된다. 점거 이후에도 토지 소유권을 신청하는 동안 지주나 경찰은 무토지 농민들을 반복적으로 공격하여 참가 가족들을 구타하고 구속한다. 수백명의 MST 지도자들이 이러한 투쟁 과정에서 학살되었다. 그리고 MST와 연결되지 않은 지역 점거의 경우 많은 농민들이 MST의 보호를 받지 못해서 더 많이 피해를 본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의 토지를 향한 열정과 MST의 조직적 능력, 관리 능력은 수천의 캠프에서 사람들이 토지를 법적으로 획득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필자 주
MST 캠프의 모습.ⓒ 김애화
토지 소유권을 받은 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집을 짓는 것이다. 임시 숙소인 비닐 집이나 플라스틱 집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아직도 전체적으로 완공되지는 않은 상태다. 주택 건설 비용은 정부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5000 레알을 10년 장기로 대출 받는다. 집 짓기 과정도 대단히 집단적이며 민주적이다. 필요한 주택 수만큼 한 가구씩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다. 모두 같은 날 입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주택 수만큼 기반 조성을 한꺼번에 하고, 기반 조성이 끝난 후 63가구가 함께 벽돌을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2년에 걸쳐서 63가구에 대한 주택 건설과정은 동시에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집단적인 노동으로 진행하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집 모양은 주택주가 디자인할 수 있다. 어떤 집은 1층으로 소박하게 만들어지고, 어떤 집은 지붕을 돔처럼 높이 올려서 다락방을 가지고 있었다. 일정하게 주택이 만들어지면 가구별로 베란다 등 부대시설을 따로 설치하기도 한다. 정착촌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다 마지막으로 들른 로즐리의 집은 다른 집보다 훨씬 세련되고 커보였다. 로즐리는 부지런한 남편 덕에 공동노동으로 지은 기본 구조에 베란다 등을 통해 주택을 확장해 그 집은 아주 세련된 중산층 주택 같이 보였다. 사실상 판매만 허락되지 않았지, 개인 명의의 주택과 토지이기 때문에 여유가 되면 멋진 집도 지을 수 있었다. 획일적인 모양의 정착촌을 상상했던 내 상상은 무너졌다.
정착지의 생활이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여 나도 참가해도 되냐고 물으니 "5년 동안 플라스틱이나 철판 집에서 지낼 수 있겠냐?"고 웃으며 답한다. 아직도 주변에는 검은 텐트 천이나 철판으로 지은 임시가옥들이 눈에 띄었다.
행복한 농민, 닐슨 페레이라(NILSON PEREIRA) 씨
대낮에 밭에서 일하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로즐리는 반가운 듯 차를 멈추고 그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그는 포도를 생산하고 있었다. 포도밭 바로 옆에 있는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포도 밭 옆 우리가 차를 멈춘 황토길 언덕에는 대여섯 명의 꼬마들이 맨발로 놀고 있다. 손님들이 온 것을 보고 한 꼬마가 달려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이 집의 막내라고 한다. 이집은 없는 것이 없다. 닭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개도 있다. 이들은 모두 자유롭다. 집 안으로 닭과 고양이가 자유롭게 드나든다. 다만 누렁이만 묶여 있는데, 길을 자주 잃어서 묶어놓았다고 한다. 묶어 놓은 것조차 이 집 주인의 너그러운 마음과 동물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긴 줄로 묶었을 때 줄이 엉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줄을 우선 마당 한 편에 길게 묶고 그 줄에 고리 모양으로 줄을 연결해 개 목에 매었다. 이렇게 해서 강아지가 꽤 넓은 공간을 다닐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집 앞 꽃밭에는 빨간 꽃, 노란 꽃이 가지런히 줄지어 심어져 있다. 집안도 깔끔하다. 이집 부부의 부지런함과 집 가꾸기에 쏟은 정성이 느껴졌다.
누구든 닐슨을 보면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을 것이다. 내가 “행복하세요?” 하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주저없이 끄떡인다. 2년 동안의 캠프 생활, 그리고 5년 동안의 임시가옥 생활의 어려움을 잊게 하는 포도밭과 안락한 주택, 사랑스런 가족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빚과 쌀 수매가와 농약 속에서 고단한 생활을 하는 우리 농민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는 올해 처음으로 포도주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그가 생산한 포도주를 우리에게 대접했다. 워낙 술과 친하지 않은 나는 포도주의 맛이 좋은지 모르겠으나, 함께 동행한 민주노동당 이승헌 대협실장은 아주 맛이 좋다고 칭찬한다. 그는 이 말에 아주 기뻐했다. 이 곳에서 생산한 꿀과 포도주는 MST 로고가 새겨진 상표를 달고 직거래된다. 그런데 이런 상품은 아직 브라질 당국에 상품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 수량이 많지 않아서 주변 직거래 소비조합을 통해서 판매되고 있다. MST 정책이 유기농업이어서, 사실 MST가 생산하는 모든 생산품은 소위 '웰빙 식품'이었다.
스스로 생산한 포도주를 들어 보이는 닐슨 페레이라(NILSON PEREIRA) 씨.ⓒ 김애화
우리가 정착지를 둘러보고 있는 때에, 3~4명의 또 다른 사람들이 방문했다. 이들은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당인, 노동자당(PT당)의 지역당 책임자와 PT당을 방문한 손님들이었다. PT당 지역위원회 대표는 자신의 지역당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여기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생산하는 꿀과 포도주의 직거래 고객이기도 하다. "MST가 노동자당에 비판적인 것을 아느냐? 이런 점거활동에 노동자당이 비판적이지 않는가?"하는 나의 짓궂은 질문에 자신도 농업개혁에 미온적인 노동자당의 태도에 비판적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그들은 하나이다.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의 생산자이고 소비자이며 지역 발전을 위해 협력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이 지역에서는 노동자당보다는 MST가 더 힘있어 보였다.
로즐리의 집에서 로즐리에게 MST의 농업개혁이 실제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MST는 농업개혁을 주창한다. 토지 개혁이 그 첫 번째 단계이다. 실제의 농업개혁은 브라질 기업농 중심의 정책을 철폐하는 것이다. 경제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브라질 국가를 공정하고 풍요로운 국가로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MST는 스스로를 변혁세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여성으로서, 직접 공동체에서 사는 정착자로서 정착촌이 직면한 사회적 이슈 중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정착자들은 브라질 사회의 고착된 문제 대부분을 정착촌의 공동체로 가지고 온다. 즉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가부장적· 위계적· 개인적 관계에 의존하는 경향과 같은 브라질 사회에 뿌리내린 문제가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투영된다. 그러나 MST 정착촌과 다른 정착촌과의 차이는 정착자의 대부분이 이러한 오래된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다.”
정착지를 떠나면서 나는 계속 하늘을 걷는다. 내가 사랑하는 동지들과 어디를 점거할까 상상해본다. 그리고 공동 경작을 하는데 게으름을 피워서 주변의 싫지 않은 눈초리를 받는 나를 상상해본다. MST는 모든 사람에게 꿈을 꾸게 하는 위대한 마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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