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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신창원을 만나던 날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09. 10. 28.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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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원을 만나던 날


 

2년 6개월 동안 신출귀몰 도주 행각을 벌이다 마침내 붙잡힌 탈옥수 신창원. 나는 그의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80년대 고관 대작들의 집만 골라 털어 유명해진 조세형 씨에게서 신창원을 변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누구보다 그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조세형 씨의 간절한 부탁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신창원의 죄과는 낱낱이 밝히되 언론에 의해 잘못 알려진 사실은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를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와의 첫 대면은 장마가 한창이던 7월 어느 날, 부산 교도소 접견실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양손에 수갑을 차고 온몸은 쇠사슬에 친친 감긴 채 내 앞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머리를 푹 숙이며 말했다.


“저는 절도범이고 강도범입니다. 사형 당해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정말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의적도, 그렇다고 잔학무도한 악마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죄는 지었을지언정 그 역시 사랑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겨우 논 세 마지기를 부치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신창원에게는 지독한 가난도 고통이었지만 어머니가 간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다. 게다가 학교 생활에도 별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었다. 동네에서 닭 서리, 수박 서리를 하다 경찰서에 끌려간 것이 열네 살 때였다. 그 일을 계기로 그의 범죄는 나날이 대담해졌다. 교도소가 범죄 학교란 말이 있듯 그는 감옥에 한 번씩 갔다 올 때마다 더욱 강인한 범죄인이 되었다.

열일곱 살 때 감옥에서 배운 권투로 그는 건달이 되었고, 걸핏하면 남의 싸움에 끼여들었다. 그러다 한 번은 사람을 크게 다치게 한 일이 있었는데, 합의금으로 줄 돈이 없어 후배들과 함께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행인의 돈을 털기로 했다. 후배들이 골목길에서 행인의 앞을 막아서면 그가 뒤에서 행인의 머리를 때려 정신을 잃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행인이 심하게 반항하는 바람에 그가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후배들이 그 사람을 칼로 찌르고 말았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는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담당 판사의 선처로 무기징역형으로 감형되었다. 또다시 감옥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는 기나긴 감옥 생활은 그에게 탈옥을 계획하게 만들었다. 그는 몇 년을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드디어 탈옥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가 꿈꾼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경찰의 눈을 피해 쫓기는 도망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룻밤 잠자리를 걱정해야 했고, 살을 베는 것 같은 추위를 견디며 토굴 속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고통이 뒤따라도 감옥보다는 나았다.


이렇게 2년 6개월 동안 그는 열여섯 번의 검거 위기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견디다 한 시민의 제보로 마침내 도주 행각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조세형 씨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그도 흰머리가 성성한 나이가 되어서야 감옥 문을 나서게 되지 않을까. 내가 넌지시 이 사실을 알려주자 그가 말했다.

“제가 가상한 최악의 상태가 바로 이것이었어요.”

신창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몸에 둘둘 감긴 쇠사슬을 내려다보았다.

“신창원 씨처럼 조세형 씨도 삼십대에 감옥에 들어가 독방 생활을 하다 오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왔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느 곳에 있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산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인생 아닐까요?”

내가 그를 위로했다.

“그래요?”

순간 그의 눈이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궁지에 몰린 사람에게는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가장 위로가 되는 게 아닐까. 조세형 씨가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한 평짜리 독방 안에서, 감옥에 갇힌 어느 유대인 의사의 글을 읽고 힘을 얻었듯.

“가난하고 환경이 나쁘다고 다 범죄인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런 면에서 저는 범죄라는 질병에 걸린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를 좀먹는 해충이었고요.”

그가 진심으로 고백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비록 그가 99퍼센트의 악으로 이루어진 인간이라 해도 감춰진 1퍼센트의 선(善)이 있다면 그것을 마음 밖으로 드러내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살아오면서 가장 아쉬운 게 있었다면 뭐였어요?”

그러자 신창원은 분명하게 말했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질문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릴 때 누가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 주었으면 이렇게는 안 되었을지 몰라요….”

수십만의 경찰력과 엄청난 액수의 수사비가 동원된 그의 체포 작전. 어린 시절 담임 선생님이, 아버지가, 동네 어른들이 그에게 진정으로 한 모금의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면 그 많은 수고를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필자 : 엄상익님 변호사
출처 : 월간《좋은생각》 1999년 09월호


퍼온 곳 : 좋은생각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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