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의 희망으로 가는 길]한 사람의 힘
언젠가 어느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에,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는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을 '옳은 것'으로 믿기 마련이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주장을 드높일 때 나만의 고유한 느낌, 생각, 가치 판단을 내세운다는 건 여간해서 쉽지 않은 일이다. 웬만하면 눈치를 보아 참고 침묵하고 외면하게 된다. 우리네 조상님들도 말씀하시지 않았나?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라고.
거대한 세상 속을 살다 보면 때때로 나 자신이 너무 작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억지가 버젓이 통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던 발버둥이 바보짓처럼 느껴진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창피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만 같은 일들을 뻔뻔스럽게 행하는 이들을 보면 기운이 스르르 빠져 버린다. 정의와 상식으로 맞서 싸우는 것조차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대체 한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한 사람의 힘, 한 사람의 정의와 선의는 때로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이룸)은 그런 의미에서 무기력증으로 처진 어깨를 가만히 다독여 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일 뿐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이 책은 30년간 지멘스 차이나라는 독일 회사의 중국지점에서 근무해 온 존 라베의 일기다. 그는 지식인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춤추기를 즐기는 성실하고 소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때로 역사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생을 특별한 사건 속으로 몰아넣는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약 2달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 난징(南京)은 일본군의 군홧발 아래 철저히 유린당한다. 약탈, 강간, 방화, 그리고 살인으로 어림잡아 30만의 중국인이 목숨을 잃는다. 존 라베는 이 지옥의 한복판에서 '안전구(Safety Zone)'를 만들어 주민들을 보호한다. 중국인들은 그를 '살아있는 부처'라고 불렀다.
1993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수상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를 계기로 오스카 쉰들러는 세계인들 사이에 유명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쉰들러의 선의에 얼마간의 '상업적 계산'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 반면, 존 라베는 오로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도덕적 책임 때문에 자기 목숨을 걸었다. 그가 바란 것은 오로지 신의 보수뿐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고 놀라운 것은 쉰들러와 라베가 모두 나치주의자이며 '당원'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독일 깃발과 나치 완장을 보여 주며 일본군을 따돌렸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을 읽다 보면 전쟁의 비참함과 인간의 야수성에 치를 떨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지옥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갔고, 간절히 살고파 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존 라베가 지옥 속에서도 자신의 선량함과 인간됨을 잃지 않았던 원동력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미치거나 맥없이 주저앉지 않기 위해 존 라베는 총칼에 맞서 끝내 자신만의 무기를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유머였다.
지금 이 상황은 매우 심각합니다. 아니, 매우 심각하고 앞으로 더더욱 심각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심각함을 어떻게 이겨 나갈 것입니까? 내 생각은, 마지막 남은 유머를 모두 끌어 모아 이 운명에, 이 멍청한 운명에 맞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나의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신이여, 내 가족과 내 유머를 지켜 주소서. 다른 작은 일들은 제 스스로 돌보겠습니다.”
폭탄 속에서도, 학살 속에서도, 매일을 죽음과 함께 하면서도 그는 웃고, 사랑하고, 주변 사람들을 시시풍덩한 농담으로 격려했다. 한 사람의 힘은 적다. 그러나 때로 그것은 죽음의 공포를 이길 만큼 크다. 평범한 상식과 선의 속에 진정으로 강하고 거룩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작가소개
책 읽어 주는 여자, 김별아 님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93년 실천문학에 중편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로 등단했다. 소설집 <꿈의 부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내 마음의 포르노그라피>, <개인적 체험>, <축구 전쟁>, <영영이별 영이별>, <미실>, <논개>, <백범>, <열애>, 산문집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가족 판타지>(<식구>개정판), <모욕의 매뉴얼을 준비하다> 등이 있다. 2005년 장편소설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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