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시골학교가 하나 있다. 안성시 대덕면 모산리 거청마을에 자리한 대덕초등학교이다. 전교생이 121명. 유치원을 합쳐 전체 7학급이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믿으시라.
대덕초등학교는 방과후학교로 62개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바이올린, 오카리나, 미술, 태권도, 연극, 컴퓨터, 속독, 만화, 수학, 영어, 중국어, 로봇, 마술콩 등의 과목으로 하루종일 이어진다. 개설된 강좌 수에 놀라셨는가? 놀랄 일은 그것이 아니다. 62개 강좌 전부가 학생들에게 공짜다. 무상이다. 수업료만 공짜가 아니라 필요한 재료까지 학교에서 다 제공한다. 바이올린 반은 바이올린을 사주고 로봇교실을 수강하는 아이들에게는 10만 원에 육박하는 재료비를 학교에서 납부해준다. 오카리나는 전교생에게 하나씩 지급했다.
놀라셨는가? 그러나 아직도 놀랄 일은 많다. 이 학교는 전교생의 체험학습비도 공짜다. 12월 10일에 계획된 체험학습은 여러가지 체험교실을 비롯해 저녁 7시 잠실경기장 프로농구경기 관람까지 예약되어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한 푼 내지 않는다. 설마 그래도 학용품까지 무상은 아니겠지 해서 물었다. 아하, 그것도 무상이다! 학생들에게 노트 한 권, 연필 하나까지 학교에서 준단다. 덕분에 학교 앞 문방구는 개점휴업상태다. 대덕초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내는 돈은 오직 급식비가 유일하다. 무상교육이 ‘실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추진중인 무상급식이 실현된다면, 진짜 무상교육이다.
교과부에서 이 시골 무명학교의 소식을 듣고 보인 첫 반응은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공교육계에서 하나의 스캔들이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이 사태를 가능하게 했을까?
그 장본인은 바로 이호원 교장(57세)이다. 그가 백성초등학교 교감으로 있다가 학교운영위와 학부모의 초청으로 부임하는 공모교장으로 대덕초에 온 것은 지난 2007년. 모든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이호원 교장은 부임 후 학교 곁에 자리 잡은 기업체 ‘코미코’를 주시했다. 주식회사 코미코(대표이사 전선규)는 1996년 설립된 벤처기업으로 1,2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반도체 산업체다. 그는 아무 연고도, 어떠한 연줄도 없는 ‘코미코’를 혈혈단신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요구했다. 이 작은 시골학교를 지원해달라고……. 밑도 끝도 없는 요구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무반응이었다. 그러나 이호원 교장의 의지는 분명했다. 찾아가고 전화하고 부탁하고 사정했으며 설득했다. 그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한 달 만에 코미코는 대덕초와 산학협력 결연을 맺고 매년 3,60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졸업식에서 코미코는 졸업생들에게 별도로 교복 값 20만 원씩을 선물했다. 회사 직원들은 자원해서 직접 방과후학교 강사로 나선다. 그렇게 코미코와 학교가 조금씩 신뢰를 구축해간 결과 ‘이호원 교장이 부임해 있는 동안만 지원하겠다’고 했던 코미코의 애초의 방침은 ‘대덕초가 존재하는 한 도와주겠다’로 바뀌었다.
기업체가 이윤추구만을 목표로 하는 이기를 떠날 때 어떤 기적이 가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였다. 대덕초등학교는 그들을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아주는 듬직한 후견인을 얻은 것이다. 얼마 전엔 트럭 한 대가 학교로 무턱대고 쳐들어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컴퓨터실 문을 열라고 했단다. 트럭에서 LCD 모니터가 쏟아졌단다. 코미코였다. 기업체와 지역사회가 만나 이루어낸 환상적이고도 꿈 같은 풍경이었다.
▲ '로봇과학교실'에 참여한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덕초 제공 | |
대덕초등학교는 2009 공모교장 평가에서 우수학교로 선정, 1천만 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또 11월 24일에는 교과부가 주관하는 ‘제1회 방과후학교 대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우수상 수상과 함께 이 작은 학교가 전국에 고한 것은 이 땅에서 무상교육의 실현이 요원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국가예산 중 토건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눈먼 돈만 돌려도 얼마간의 무상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렇게 대덕초등학교가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해 1억 2,500만 원이다. 이 중의 7천만 원은 이호원 교장이 발로 쫓아다니며 유치한 뜻있는 기관과 단체의 지원금(코미코, 문화예술교육진흥원, 경기문화재단, 달팽이, 소나무갤러리, 새마을운동중앙회 안성지회, 안성천살리기시민모임)으로 충당되고 나머지는 학교로 지급되는 예산을 아끼고 아껴서 메운다. 아끼고 아껴서 만드는 예산이 5천만 원에 육박할 수 있는 것은 학교 외관이나 시설 따위에 쓸데없는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이호원 교장의 신념 덕분이다. 그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데 드는 돈을 아껴서 방과후학교에 투자한다.
그 성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학생수가 늘었고 아이들의 학력이 당연히 신장되었다. 방과후학교의 만족도를 묻는 설문에서는 이전에 50%였던 만족도가 무려 95%로 향상되었다. 또한 91%의 학부모가 사교육비 절감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했다. 대덕초의 방과후학교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총비용을 따져보면 어림잡아도 한 달 수천만 원에 육박한다. 이것이 현재 2년 누적되었다.
생각의 시초가 어디에 있었을까 궁금했다. 이호원 교장은 “공교육은 학교와 나라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기본을 말한다. 72년부터 교직생활을 하면서 시골 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몸소 겪었던 그는 자신이 교장이 되면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과의 약속, 그리고 공모교장으로 부임하면서 학부모들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라 전한다.
이호원 교장은 한 달에 한 번 직접 아이들을 만난다. 전교생을 모아놓고 학교에 원하는 게 있는지 물어본다. 지난번 아이들은 “비대를 설치해주세요” 했단다. 교장은 그 즉시 앞뒤 재지 않고 비대를 설치했다. 아이들의 요구에 응하는 데 있어서 망설임이 없다. 아이들이 있어야 교장이 있다는 생각, 아이들이 즐거워야 자신이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는 그의 태도는 철저히 민주적이다.
모든 학교가 학교장의 재량과 의지에 따라 이렇게 무상교육이 가능할 수도 있겠느냐고 물었다. 이호원 교장의 대답은 분명하다. 학생 수 200명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그 이상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그는 낭만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히 현실에 바탕한 실천가였다. 이호원 교장이 장담한 200명이라는 인원은 오직 한 사람의 의지와 주도로 가능한 수치로는 최상의 것으로 보였다.
▲ 이호원 교장은 아이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데도 망설임이 없다. © 안성신문 | | 세계에서 교육시스템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나라, 현실화한 ‘교육천국’ 핀란드는 국가예산의 14%를 교육 분야에 할당하고 국내총생산의 7%를 공교육비로 지출한다. 수업료, 급식비, 교재비까지 모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그 결과는 교육경쟁력 세계 1위인 나라, 사교육 없는 나라, 시험이란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평가로 1등도 꼴찌도 모르는 아이들의 나라, 학생들을 위한 나라였다. 그러한 핀란드의 국가적 목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출신과 경제적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우리의 헌법은 국민들의 교육권을 명시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공교육, 의무교육은 사문화한 명분으로만 남아 있다. 자녀의 교육비가 두려워 출산을 포기하는 지경이다.
최소한 공교육에서만큼은 가난한 아이나 부유한 아이가 동등한 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을 뒤집는 천지개벽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최소한의 의무이리라.
사람에는 세 부류가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과 주어진 일도 하지 못하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어진 일을 넘어서 새로운 성취를 이룩해내는 사람이 그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이 중에서 맨 마지막에 속하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고 변화, 발전한다. 당신은 어느 유형인가? 당신이 오늘 한 업무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이롭게 했는가? 이호원 교장의 행보는 내 밥그릇에만 안주하는 오늘의 소심한 일반인들 사이에서 독보적이다.
대덕초등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학교가 제공한 오카리나를 가지고 있고 전교생이 오카리나 연주를 할 수 있다. 오카리나 연주는 부잣집 아이, 가난한 아이가 다르지 않으며 공부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차별과 불평등을 모르고 조금의 구김도 없이 자랄 때,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을 내포한 진정한 새싹이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이 있어야 우리는 감히 이 나라의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 이호원 교장의 입술이 누적된 피로로 터져 있었다. 이 험한 교육현실에서 그의 노력이 일구어낸 것을 ‘작은 기적’이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황윤희 안성신문> 원본기사 바로가기 ☞ http://assm.co.kr/sub_read.html?uid=6115§ion=sc5§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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