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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촌 만나러 가는 길

박종국에세이/단소리쓴소리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2. 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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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에세이 ] 2010년 2월호
만남 / 홍정욱, 국회의원
일촌 만나러 가는 길

 조금 떨렸다. 일촌(一村)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떨림은 ‘설렘’과 ‘불안’의 함수였을 것이다.
2009년 12월의 어느 저녁, 나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일촌’을 맺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신촌의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 실생활에서 일촌은 부자(父子) 관계로 모르는 게 거의 없는 사이지만 인터넷 상 일촌은 이름 석 자와 댓글만이 상대방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다. 가까운 ‘일촌’을 만난다는 사실 자체는 설렘이었지만 가깝다는 ‘일촌’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 불안을 느끼게 했다. 지난 2년 동안 속칭 ‘싸이질’을 하면서 늘 내 이야기만 줄기차게 해온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 ‘일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간절히 듣고 싶었던 터였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이십 여명 남짓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20대에서 40대까지 연령도 다양했고 학생, 직장인, 주부 등 직업도 달랐고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로 고향도 틀렸다. 조금은 어색한 자기소개로 시작된 대화 속에서 일촌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


우리는 모두 바쁘게 살아간다. 사회를 둘러볼 여유나 신경 쓸 겨를도 별로 없다. 사회는 따로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의 이야기를 전할 공간도 작다. 인터넷 댓글로는 충분치 않다. 정치인의 ‘쇼’ 같은 일방적인 의사전달은 의사소통을 오히려 왜곡하는 측면이 크다.
일촌 만남을 통해 누군가는 기존의 이미지가 무너지고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모습과 다른 모습에서 혹 실망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렘’과 ‘불안’을 가지고, 잘 안다고 느끼지만 실제론 잘 모르는 ‘일촌’을 알아가는 소규모 ‘공론장’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학과 및 스탠포드 대학교 로스쿨 졸업. 헤럴드미디어 회장, 코리아헤럴드 발행인 등 역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아시아소사이어티 차세대리더 선정(2006) 등. 저서로는 <7막7장><7막7장 그리고 그 후>. 현 제18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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