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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심후하심(先何心後何心)

세상사는얘기/삶부추기는글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2. 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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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심후하심(先何心後何心)
뉴욕투데이.kr

 
 

사람이면 누구나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다르다. 들어가기 전에는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것 같지만 일단 볼일을 보고 나온 후에는 그깟 냄새 나는 뒷간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 그래서 ‘선하심후하심(先何心後何心)’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먼저는 무슨 마음이었고 나중에는 무슨 마음이었는지를 살피지 않으면 경박하고 중심이 없고 그 때 그 때의 형편에 따라 달라지는 변덕스런 사람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충고다.
일찍이 맹자가 “먹고살만한 일정한 재산이 있어야 변하지 않는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다(有恒産 有恒心)”고 지적했듯이 배고프고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일수록 마음과 태도를 잘 바꾼다. 솔직히 말하자면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끼여 지지리도 못 살았던 한반도 사람들도 그랬다. 그 옛날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뭐든지 예스 예스 하면서 당나라에 애걸복걸 나라도 보존하고 땅도 넓혔으나 당나라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자 고구려 부흥운동을 지원하는 한편 백제 유민들을 회유하여 포섭했었고, 중국이나 일본의 지배를 받을 때는 자나 깨나 자주독립을 염원했었지만 정작 독립이 이뤄진 지금 다시 습관처럼 친미 사대주의에 푹 젖어있거니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독재 때도 전 국민이 민주화의 합창을 했었으나 정작 민주화가 이뤄지자 그들을 영웅시하면서 끼리끼리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음을 본다. 대북포용정책을 밀어붙이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는 민족통일을 떠들어대다가 그에 반대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김정일 정권을 ‘빨갱이 트리오’로 싸잡아 비난하는 시장통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좋은 말로 하자면 모두 다 세상의 상황과 가치관이 바뀌는 대로 새 시대정신(?)에 부응한 결과겠지만 ‘선하심후하심’을 따져보면 사고와 태도의 항상성(恒常性)이 없었기에 늘 국론이 분열된 가운데 사회가 불안하고 시끌벅적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 미국이 힘을 상실해가고 있어서 그런지 미국인들도 ‘선하심후하심’을 안 따지는 것 같다. 미국인 4명 가운데 거의 3명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입한 대규모 경기부양자금 중 최소 절반 이상이 낭비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이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미국 성인남녀 1천12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21%가 “거의 모든 자금이 낭비됐다”, 24%가 “대부분의 자금이 허비됐다”, 29%가 “절반이 낭비됐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조금밖에 낭비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21%에 그쳤고 “낭비가 없었다”는 답변비율은 4%에 불과했다. 월가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로 인해 은행들이 줄 도산할 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 위기를 진정시켜야 한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금융위기가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나랏돈을 쓸 때는 아껴서 신중하게 썼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입을 삐죽이고 있음에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건 만국공통임을 재확인하는 듯하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 네오콘(신보수주의) 세력이 정계ㆍ언론계 등을 중심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한 것도 그런 민심 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민심은 조석변(朝夕變), 아니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천변만화하는 인간의 욕망 자체가 변덕덩어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인 이상 그런 변덕 덩어리를 함부로 비웃고 조롱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하심후하심’을 따져 일관성과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노력까지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왜? 마음과 태도를 너무 자주 바꾸면 결국엔 자아를 상실하여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고독과 불안 속에서 헤매게 되니까.

 

(채수경/뉴욕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0/01/26 [08:54]  최종편집: ⓒ newyork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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