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우려먹고 살기
박 종 국(교사, 수필가)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개 기정사실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지요. 가령,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거나 ‘거북선은 이순신 장군이 만들었다’, ‘성삼문은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은, 번복시킬 만한 획기적인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반복된 그 지식이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날 반상계급의 차별대우를 세상에서 제일가는 양속(良俗)으로 알았듯이, 요즘 와서는 학력이 또 그 모양입니다. 물론 세상 형편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대학졸업과 박사학위 따위가 지식층과 무식층을 갈라놓았습니다. 그래서 취업하는데 고용주들이 가장 먼저 보고 찾는 것이 학력이고 간판입니다. 학력은 그 과정을 거쳤다는 필요충분조건은 될지 모르겠으나, 그 사람의 능력을 가늠하는데 절대적인 평가기준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학력을 곧 능력으로 성급하게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범하고 맙니다.
높은 학력이나 대학 간판이 부추기고 있는 허실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특정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의 제외하고는 대개 취업과정을 마치면 학력이 철인(鐵人)처럼 박혀 그것 자체가 종신토록 능력이 되고, 인격이 되며, 인품이 됩니다. 숫제 노루 때린 막대를 평생토록 우려먹듯이 평가받으며 삽니다. 나날이 새로운 첨단과학기술과 학문으로 돌변하는데도 대개 책과 배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상례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벗어난 지 10년 또는 20년 후면 학력과 능력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고정관념은 아직도 학력을 능력평가의 으뜸으로 꼽고 있는 현실입니다. 고정관념은 그 아류만 만들뿐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의 빛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고정관념은 경우에 따라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합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대학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받아야만 유능한 사람으로 대접받습니다. 그러니 독학에 의해서 사장이 되거나 국회의원, 심지어 교수가 되었더라도 흡사 돌연변이를 보듯 신기한 눈으로 봅니다. 결과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충실했는지, 또한 그것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는데 인색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세상 형편은 학교 공부보다 학원과외공부가 더 우위에 있고, 입시부정과 석․박사학위논문 대필이 횡행하고, 가짜 학위가 난발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각종 교육비리도 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학력과 능력은 그렇게 상관관계 없는데도 허울뿐인 간판으로 평생을 우려먹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람직한 사회, 밝고 건강한 사회는 그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올바른 학력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남다른 겸양과 미덕이 우러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나이와 학력과 능력에 비례해서 그에 따른 지위와 재력과 덕망을 갖춘 사람이 줄을 이어야 합니다. 고정관념을 털어버리려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겠습니다. 항상 발상과 인식의 대전환을 시도해야 합니다. 언제쯤 모두가 허울뿐인 학력과 간판 더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품성이 날마다 샘물처럼 새롭게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2010.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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