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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세기(1961~2010)의 부동산투기 진실, 1탄 (1) 문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느 때 어느 곳에서건 비록 정도는 달리할지언정, 빈곤의 문제는 상존한다. 유례없는 물질적 진보를 성취한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조차 전 세계적 차원은 물론이고 가장 부유한 나라들 안에서도 빈곤의 심각한 모습이 드러난다. 바로 ‘풍요 속의 빈곤’이다.
빈곤은 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원의 희소성 때문이 아니라 인간사회의 불의한 분배에 의해 대부분 야기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만여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이라크 주변 고산지대)에서 농경목축의 정주생활이 시작된 이래로 생산에 전혀 기여도 하지 않은 누군가가 토지의 생산물을, 오늘의 표현으로는 ‘사회적 잉여’를 차지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설혹 우리가 오늘 에덴동산으로 다시 복귀한다 해도 만약 제도와 체제가 계속하여 ‘불로소득’을 정당화시킨다면 궁핍과 빈곤은 앞으로도 인류사에 계속될 수밖에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분명히 들어갔을, 상상을 절하는 불로소득의 실상이다. 서울의 땅값은 대략 12만 배 정도 상승했고, 국토의 0.61%에 불과한 서울의 땅 값만 전 국토의 40%에 달할 정도다. 수도권과 몇몇 광역시를 합하면 대한민국 전체의 땅값이나 거의 마찬가지로 캐나다를 10번 이상 사고도 남는다. 소위 ‘부재지주’니 하면서 60년대 이전 농경사회의 지주 같은 걸 떠올리면 매우 곤란하다. 농경지나 임야 같은 건 더 이상 문제가 안 된다. 전적으로 대도시 택지나 인근 개발예정지, 범위를 좁혀 서울 등 수도권의 부동산 투기 문제다.
그중 최악질은 단연 아파트 등 주택 투기행위다. 재벌건설사들을 선두로 토건산업과 고작 5% 미만의 다주택 투기자들을 빼놓으면 오늘을 사는 대다수 인민을 비참하게 만드는 게임으로, 이는 아흔아홉 개를 가진 자들이 마지막 한 개마저 빼앗겠다는 공동체 파괴행위다. 도박꾼 간에 따거나 잃고 마는 ‘제로섬 게임’조차 아니다. 주택투기는 전혀 투기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처음부터 참여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절도행위이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의 몫조차 가로채는 철면피한 강도행위다. 공화국을 파괴시키는 최악질의 반사회적 범죄 행위이다.
(2) 마침내 부동산 공화국의 모래성이 무너져 내린다. 2년 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 뒤이어 대한민국의 부동산 잔치도 끝나가는 중이다. 아무리 대통령 이명박이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고 현 정권이 ‘집값 떠받치기’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탄생한 ‘강부자’ 정권이라 해도 더 이상 떠받칠 재간은 없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마찬가지다. 집값 붕괴는 필연으로 시간의 문제이며, 설혹 한 두 해 지연시켜도 이미 생긴 거품이 사라지는 건 더욱 아니다.
지금의 부동산 거품을 포함하여 모든 거품의 실체는 돈 놓고 돈 먹기. 곧 금융버블 현상이다. 생산적인 실물부문에 비록 호황과 불황은 존재하나 본질적으로 실물교환의 진성거래로서 금융거품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지난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의 우리나라나 50년대 초반 북해의 유전 발견이 촉발한 네덜란드처럼 간혹 ‘자산성’의 금융거품도 존재하나, 대부분의 경우 정책 실패까지 가세하여 형성되는 ‘부채성’ 거품이다. 90년대 중반 재벌들의 빚잔치였던 김영삼의 외채버블이 IMF 경제위기를 초래하였고, 90년대 종반 서민층의 생계형 부채를 키웠던 김대중의 카드버블이 무려 400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시켰던 비극들이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 뒤를 쫓아 이제 노무현의 부동산 거품이 꺼질 차례다. 카드 버블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거품이다. 지역균형 발전의 목표 자체는 올바르나 처음부터 방법론이 잘못 설정돼서다. 행정복합도시, 기업(재벌)도시, 공공기관 지방이전, 골프장 건설, 온갖 경제특구, 이름조차 국적불명인 S프로젝트나 J프로젝트 등 온통 부동산개발 사업들로 개혁정부라기보다 온전히 ‘부동산 개발정부’이다. 전국의 지가를 균형 있게 죄다 올려주다 보니 근래 시장이나 시의원 자리는 개발업자 등 소위 토건족들이 대부분 차지하게 되고, 사람들은 지방자치를 두고서도 ‘개발자치’라고 명명한다.
바야흐로 ‘노명박’의 시대다. 이명박은 노무현을 한층 발전적으로 계승해서 온 나라를 콘크리트로 뒤덮는 토건사업을 목하 진행 중이다. 사실 노무현은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는 충만했으나 자신의 행위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던 일종의 ‘행위무능력자’(유고 자서전에서 “공무원들에게 속았다”고 주장한다)라면, 이명박은 본래 부동산 ‘빠꼼이’다. 처음부터 서민정부를 위장한다. 뭐든지 서민을 내세우나 내놓는 정책마다 부자를 위해서다. 2008년 9월 발표한 향후 5년 간 100조원의 ‘부자 감세안’ 명칭이 ‘(서민들)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재도약 세제개편안’이다. 지난 정권에서 얼마나 인민들을 경제사회적으로 핍박했기에 이런 위선적 언사들이 도처에 난무하고 아직도 먹혀든단 말인가.
투기 진원지인 서울의 집값에 관한 한, 이명박의 공로가 압도적으로 노무현을 능가한다. 비록 2006년 12월 ‘아파트값내리기모임’에서 발표한 부동산 5적 중 노무현은 1위, 이명박은 3위를 차지했지만 말이다. 2위는 이헌재, 4위는 김대중, 공동 5위는 강봉균과 추병직이다. 당시 서울 시장이던 이명박이 총 33개 뉴타운 사업을 일으켜 세상을 온통 투기판으로 몰아넣던 최고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세입자들을 살던 곳에서 모두 쫓아내고 새로이 중산층 입주자들로 채워 넣는 소위 ‘MB 맨더링’에 힘입어 지난 대선과 연거푸 총선까지 압승한다. 하지만 그 약발도 지난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이 거의 끝장난 상태이다.
(3) 반세기에 걸친 대한민국의 ‘부동산 신화’다. 땅도 좁고 사람만 많다보니 우리 안에 내 집 마련 욕구가 마치 유전자처럼 깊숙이 각인됐고 현실적으로 집값 상승은 불가피하다고 한다. 과연 맞는 이야긴가. 최소한 <직접원인>의 관점에서는 사실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세월 따라 부동산 실상은 그때그때 달랐으며, 지금의 노명박 시대처럼 아파트 등 주택을 무지막지한 투기수단이나 빈부의 척도로 삼았던 시기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는다.
50~60년대는 물론 70년대 초반까지도 주택문제는 투기행위와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정부는 서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아파트를 속속 공급한다. 1958년 건설된 종암아파트가 그 효시로 5층 높이의 3개 동, 152가구 규모에 연탄 난방이다. 1964년 건설된 마포 아파트 642세대가 뒤를 이으며 1969년엔 1,000세대 이상 단지가 최초 등장한다. 종로구 소재 낙산아파트(1,096세대)와 동숭아파트(1,400세대)로 화장실을 공동 사용하는 전형적인 서민단지다. 70년 4월 마포구 소재 와우아파트가 95년 삼풍백화점처럼 부실공사로 붕괴하기도 하며, 하여간 중산층 이상은 아파트를 철저히 외면하던 시절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아파트는 비로소 중산층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1974년 대한주택공사가 완공한 반포주공 단지가 성공하면서 대단지 아파트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특별 분양을 받기 위해 당시로는 전혀 내키지 않았을 정관수술까지 감수하는 등 국가시책인 가족계획에 적극 호응하기도 한다. 여전히 저층아파트이지만 평수가 크게 늘어난 데다 무엇보다 주택구조의 급격한 변화(중앙난방식에 거실, 식당, 부엌을 하나로 합친 소위 LDK 구조)로 인해 거주의 편의성이 크게 제고된 덕분이다.
아직은 박정희 정부가 서민들의 주거복지에도 함께 관심을 기울이던 시절이다. 정치적으로 박정희가 민족을 동서 분열시킨 파쇼독재자임에 분명하지만, 경제사회적으로는 ‘위화감’ 운운하는 소릴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던 지도자 아니던가. ‘잠실 뉴타운’으로 불리는 4개 단지를 1975년 시공, 2년 만인 1977년 완공해서 무려 11,281세대를 동시 입주시킨다. 아직 연탄난방이지만 전무후무한 ‘초대형’의 서민단지다. 박정희답다. 마치 군사작전처럼 ‘주택건설 180일 작전!’의 기치를 내걸고서 세계 건설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기록적인 기간 안에 사업을 완료한다.
70년대 말 상류층까지 가세하면서 바야흐로 아파트 열광 시대로 진입한다. 아파트에 대한 중산층 이상의 부정적 인식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혀져버린다. 70년대 중반 월남 파병부대가 철수하고 베트남 건설 사업에서 경험을 챙겼던 현대, 한신 등 재벌건설사들은 이후 국내에서 민간아파트단지 사업을 주도한다. 압구정동 현대단지 부지는 원래 현대가 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나서면서 외국수입 중장비 등을 보관하고자 확보해둔 한강변 모래밭인데, 졸지에 금싸라기로 변한 것이다. 업자는 업자다. 와중에 고위공직자, 중견언론인 등에 대한 뇌물성 특혜분양의 물의도 빚어낸다.
드디어 오늘의 강남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재벌건설사들이 주도한 민간단지들이 정부가 건설했던 한강변 서쪽의 중산층 반포단지와 동쪽의 서민층 잠실단지 사이를 상류층 중심의 중대형 아파트들로 채워 넣는다. 고위 공무원, 대기업 임원, 중견 교수나 언론인 등 우리 사회의 권력층과 상류층이 집단으로 입주한다. 그들의 당시 인식은 “아직도 강북에 사십니까?”라는 인사말로 표상된다. 97년 IMF 이후 각광을 받은 지금의 삼성, 롯데 등은 아직 업계에 명함도 채 내밀지 못하던 시절 이야기다.
80년대 중후반 전두환, 노태우 등 유신잔당들은 70년대 박정희식 관치개발을 주로 나쁜 쪽으로 계승한다. 공영개발로 시행하지만 재벌건설사들이 시공하는 ‘짬뽕’ 방식이다. 용역깡패들을 동원해서 원거주자와 세입자들을 모두 쫓아내면서 강압적으로 전개된 목동 14개 단지(1983년)와 상계동 신시가지(1986년) 건설이 대표적이다. 1979년 창립된 한국토지개발공사(1996. 한국토지공사로 개명, 2009.10.1. 대한주택공사와 합병하여 한국토지주택공사로 재차 개명)가 택지개발촉진법(1980)에 기초하여 그 역할을 주도한다.
다시금 정부가 건설계획을 주도하면서 직전까지 입주자와 재벌사의 몫이었던 건축용지 매각이윤을 대거 되찾아서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일은 그나마 평가해줄 만한가. 강남에 인접한 송파구에서도 정부 주도의 대규모 주택사업이 진행되며, 1,108세대의 아시아 선수촌과 5,540세대의 올림픽선수촌 단지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3저 호황으로 맞게 된 제1기 버블(1988~1991) 시점에 ‘주택 200만 호’ 건설의 기치를 내걸고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를 건설해서 정부주도하에 과감히 대처한 것은 인상적이다.
90년대 이후 제반 상황은 급변한다. 더 이상 토지구획 정리 등으로 건물을 지을만한 땅은 서울 안은 물론이고 인근에서도 찾기가 어렵게 된다. 기존 도시의 거대한 외과적 성형수술, 곧 재개발 및 재건축 시대가 시작된 배경이다. 한강 남쪽 사당동 지역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른다. 재벌건설사들도 재개발 및 재건축 시장을 향해 방향을 급선회한다. 재건축 사업은 재개발 사업이 갖는 토지의 소위 불법점유 문제를 빼놓고는, 법제도상 그리고 행정상 재개발 사업과 동일하다.
재개발 열풍, 결국 참혹한 비극을 불러온다. 2009년 초 발생한 ‘용산 참화’는 작금의 개발정책이 내포한 폭력성 및 잔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연 이명박이 2000년대 재개발 사업의 대부 격이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2002년, 은평구를 시작으로 33개 뉴타운 사업을 추진한다. 업자들에게 가장 이문이 남는 입찰방식(턴키방식)까지 동원하며, 그걸 분양 받아야 남는 게 없다는 건 지금에야 뒤늦게 드러난다. 잠실 서민단지, 도곡동 및 개포동 주공단지 등에서 통도 크게 ‘용적률 300%’ 확대 방식의 재건축사업을 병행시킨다. 대통령 노무현까지 집값이 너무 올랐다면서 판교, 동탄 등 ‘신도시’ 사업을 강행하여 훨훨 타오르는 투기의 불길 속에 마른 장작들을 대거 집어넣는다.
(4) 부동산 투기의 <궁극원인>에 대해서다. 60년대의 산업화 이후 서울 등 대도시로 인구가 급속 유입되는 반면 집 지을 땅은 협소해서 누구도 어쩔 수 없던 문제일까. 아니다. 모든 나라의 모든 대도시 토지는 예외 없이 협소하다. 우리도 70년대 중반까지 부동산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투기의 실체는 불로소득의 발생과 함께 서로 ‘눈 먼 돈’을 차지하려는 사회경제적 투쟁이다.
현재 서울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은 어디일까. 서초구, 강남구, 노원구 등은 지역의 60~80%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최고의 아파트 밀집 지대이지만, 인구밀도는 서울시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시 지역은 아파트 밀집지역이 아니라 연립주택 지구나 달동네들이 들어찬 곳들이다. 땅이 비좁고 사람이 많다고 해서 고층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불가피한 게 아닌 것이다.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우리보다 더 높았던 네덜란드나 벨기에 등은 자국의 산업화 이후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같은 삶의 전철을 밟지는 않는다.
고층아파트 단지가 주거공간을 조직화해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아닐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같은 용적률을 준다면 단독주택, 저층 아파트단지, 연립빌라주택 등이 모두 가능하다. 서울시는 현재 이명박의 33개, 오세훈의 2개 등 총 35개의 ‘뉴타운’ 사업을 중대형 아파트 위주로 완료 또는 진행 중이다. 바로 이 때문에 서울소재 주택수와 총인구수는 되레 감소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근래 강북의 소형주택 가격 급상승, 세입자들의 전세난과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하숙 및 월세 대란이 이를 웅변하고도 남는다.
당대의 현실에 관한 한 사람들은 진실 아닌 허상에 곧잘 속아버린다. 생각대로 세상을 살기보다 자신들이 사는 방식대로 세상을 생각하기에 너무 익숙한 탓이다. 바로 ‘아전인수’다. 마르크스는 맬더스의 인구론에 담긴 공황의 불가피성 논리를 중시하여 그를 극구 칭찬한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인류사회의 고양을 위한 경제사상을 가르친 대사상가라면, 맬더스는 교회 목사이면서도 ‘재앙과 빈곤이 신의 섭리’라는 지극히 반도덕적 담론을 유포시킨 인물이다. 인간사회의 윤리성, 곧 신성 모독이 아닌가.
그동안 광범위하게 유포됐던 인구밀도론, 투기불가피론, 초고층단지론 등은 이런 맬더스류 사고방식을 오늘에 계승하는 반윤리적, 반공동체적 주장들에 다름 아니다. 그 덕분에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부동산개발 사업은 비교적 큰 저항 없이 진행되었고, 21세기 들어 최근의 용산참사 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식의 초고층 주상복합빌딩 건설이 여전히 정당화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생물학적 유전자 담론은 말할 것도 없고, 토지의 협소성이나 인구과잉 등을 강조하면서 실은 부동산투기의 진실을 은폐하던 ‘허위의식’으로부터 우리 모두 속히 벗어나야 할 시점이다.
부동산 투기의 진실, 전적으로 사회경제적 문제이다. 60년대 산업화 이후 서울 등 대도시로 유입한 세입자와 빈민 등의 거주권을 철저히 묵살시킨 채, 엄청난 개발이익을 서로 차지하고자 전개된 유산층 내부의 이익투쟁이다. 71년 8월 서울에서 강제 추방당한 빈민들의 ‘광주(현 성남)대단지 저항’이 말해주듯이 72년 유신체제 이후로는 80년대의 아파트 열광시대를 포함해서 오늘의 노명박 시대까지 큰 틀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 마치 하이에나가 먹이를 다투는 식의 ‘눈 먼 돈’ 쟁탈전이다. 하지만 유산계층 내부의 불로소득 분배구조에서는 과거의 박정희 식 관치개발 시대와 작금의 노명박 시대 간에 판이하게 다르다.
노태우 시대였던 제1 버블기(1988~1991)의 집값 정점은 1991년이다. 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국민소득이 크게 증대하고 특히 87년의 민주화성취 이후 인위적으로 억눌렸던 임금도 급상승하면서 주택수요가 크게 증가한다. 기본적으로 실수요였고, 주택보급률이 전국 70%대, 서울과 수도권 50%대 후반이던 시기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진다. 정부가 ‘주택 200만 호’ 건설과 토지공개념 등 각종 대책을 적시에 연이어 발표하면서 집값은 순리대로 잡혀 나간다. 3~4년 만에 20% 가까이, 외환위기 이전까지 고점 대비 33% 정도 하락한다.
서울에서 불과 25킬로미터 이내에 5대 신도시(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를 건설하여 30만 가구의 물량을 일시에 공급한 효과가 다대하다.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집값 상승세를 꺾고 안정세를 가져왔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무엇보다 관치개발 시대인 만큼 박정희처럼 분양가를 시세의 60% 수준에서 책정한 것이 크게 주효한다. 최대의 불로소득 수혜자는 당연히 실수요자, 분양에 당첨돼서 실제 입주한 신규 중산층이다. 지금과 달리 분양가 규제를 통해 아파트의 공급가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던 시절이다.
노무현의 제2 버블기(2002~2007)에 집값은 2002년 이후 내리 6년간 상승한다. IMF 위기 이후 초래된 경제양극화로 인해 신규 실수요 같은 건 거의 없고 주택보급률도 전국 100%, 서울 및 수도권 90%대를 훌쩍 상회하던 상황에서 다주택소유자 등 투기꾼들이 대거 몰려드는 전형적인 투기판이다. 판교 등을 빼고는 13개 신도시 대부분의 입지가 1기 버블 때와는 달리 서울에서 5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탓에 추가 주택수요도 미미하고, 결국 신도시 70만 가구 공급계획은 최근 미분양 물량으로 적체되는 중이다.
무엇보다 개발이득의 최대 수혜자가 뒤바뀐다. 재벌사들이 분양가를 시세의 120% 수준으로 자율결정(=담합)하면서 근처의 기존 아파트 값까지 끌어올린다. 특히 중앙정부 소관인 ‘신도시’ 아파트는 개발이익의 100% 이상을 재벌들에 죄다 몰아준다. 그나마 이명박은 재건축사업 등의 용적률(예, 80% → 300%)을 대폭 확대시켜 주택소유자들과 재벌건설사 간의 불로소득 분점이 가능토록 배려해준다. 하지만 신도시건 아니면 재건축이건, 시세보다 월등히 높은 분양가에 입주한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분양대금 반환소송이나 집단시위까지 고려할 만큼 몹시 억울한 상황이다.
(5) 지난 반세기의 부동산투기 전쟁, 이제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에 특유한 ‘전세’ 제도가 집값에 포함된 버블(=예상 불로소득) 규모를 알려준다. 이론적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다. 예컨대, 강남의 한 아파트 시가가 10억 원이고 전세금은 2억 원이라면 그 차액인 8억 원이 버블에 상당한다. 이런 엄청난 불로소득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건가. 도대체 우리 중 누군가가 지구를, 적어도 자신이 사는 땅을 직접 만들기라도 했단 말인가.
우리는 분명히 자신의 노동이나 애써 저축한 자본(‘적산불하’ 등 불로소득 제외)으로 생산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 자체는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자신이 토지 소유자이기 때문에 생산에 기여하는 거라고 말한다면, 이는 마치 자신이 태양을 소유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때문에 온갖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의 토지 사유제는 순전히 역사의 ‘부산물’일 뿐이다.
주지하듯, 자본주의의 핵심 공리는 개인의 노력과 기여를 최대한 장려하기 위한 ‘사유재산제’이다. 바로 똑같은 이유에서 부동산투기 등 비생산적 행위는 자본주의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시키는 반사회적 행위인 것이다. 당연히 투기행위를 규제하고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엄히 징치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독일 헌법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호할 것임을 천명하며, 87년 민주화의 산물인 우리 헌법 또한 118조에서 우리경제의 기본질서가 ‘사회적’ 시장경제임을 분명히 밝힌다.
대한민국, 이제는 먹거리나 사는 집에 대하여 한층 진지하게 성찰해볼 시점이다. 향후 수립될 민주정부는 헌법정신에 부합되게 형법상 ‘부동산투기죄’를 신설함은 물론, 투기전력 보유자나 투기지역 거주 공직자 등을 정책수립 과정에서 제척 또는 기피 대상으로 마땅히 배제시켜야 한다. 우리가 진정 수호해야 할 가치나 체제가 있다면, 지금의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을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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