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자 일본 것들이 봇물이 터진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대중가요다. 일본은 서양의 팍스 트롯(fox trot)을 받아들여 도롯도로 변용하였는데 우리나라에 그 도롯도가 여과 없이 흘러들어와 한 시대를 휩쓸었다.
이 음악은 전통적인 우리 노래와는 사뭇 달랐다. 우리 것이 3박자 넷을 한 절로 삼는 삼분박 음악인 데 비해, 일본의 도롯도는 4분의 2박자나 4분의 4박자에, 일곱 글자와 다섯 글자를 한 단위 한 절로 삼는 이른바 칠오조 가사를 썼다. 말도 다르고, 박자도 율도 달랐지만 이 새로운 형식의 대중가요는 그 다음에 나오는 우리 창작 대중가요의 틀로 굳어졌다.
동요도 유행가도 일본 율 칠오조라
4박자 노래는 서양 선교사들이 보급한 찬송가를 통해서도 이미 귀에 익은 것이었다. 3박자 노래만 알다가 4박자 노래까지 알게 된 것은 음악의 근대화를 위해 거쳐야 할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나 칠오조의 음수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일본이 팍스 토롯을 일본의 전통적인 가사 율에 담은 데 반해 우리는 일본 것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1929년에 시에론 레코드에서 발매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 <낙화유수>의 율이 바로 칠오조다. “강남달이 밝아서 임이 노던 곳”이라는 가사에서 보듯이 일곱 글자와 다섯 글자가 한 행을 이루고 있다. 이 노래는 1927년에 당대의 변사였던 김영환이 극본을 쓰고 이구영 감독이 연출한 명화 <낙화유수>의 주제가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 영화 해설곡이다. <낙화유수>는 무성영화여서 주제가가 있을 수 없다. 영화가 나온 뒤에 김서영이 작사도 하고 작곡도 하여 이구영의 동생 이정숙에게 부르게 한 노래가 대유행을 했다. 변사이자 극작가인 김영환과 작사 작곡가인 김서영은 사실은 동일인으로, 한 마디로 김서영이 북도 치고 장고도 친 셈이다. 한 참 뒤에 나온 노래로 남인수가 부른,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를 첫 절로 한, 동명의 <낙화유수> 역시 가사가 칠오조다. 당시 유행곡은 하나같이 칠오조였다.
대중가요만 칠오조로 부른 것이 아니다. 동요 역시 마찬가지다. 1920년대에 학생들이 우리 동요를 부르게 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그 뒤 동요가 잇달아 나왔는데 대부분이 칠오조의 틀을 벗어나지 않았다. 최초의 창작동요로 알려진 <반달>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로 시작한다. 어김없는 칠오조다.
광복 후에 학교를 다닌 내가 배운 동요도 칠오조 일색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배운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도 그렇고, 졸업식 날 부른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도 그렇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도 칠오조고, “내 고향 가고 싶다 그리운 언덕”도,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도, “달 밝은 가을밤에 기러기들이”도, “엄마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도 다 칠오조다. 민족주의자이자 한글학자인 최현배 선생이 지은 “강산도 빼어났다 배달의 나라”로 시작하는 한글날 노래마저, 강소천이 작사한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하는 유관순 노래마저 칠오조다.
그래도 <고향의 봄>을 또 부를 수 있기를
오랜만에 곧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모양이다. 남북한 사람들이 만나면 마치 주제가 부르듯 하는 <고향의 봄>도 칠오조 노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일곱 글자 다섯 글자가 각 행을 이루고 있다. 작사가 이원수는 칠오조를 맞추기 위해 ‘아기 진달래’를 끌어들이느라 애께나 태웠을 법하다. 남과 북이 모여 일체감을 공유하는 노래가 왜 일본의 전형적인 율로 만든 노래여야 하는지 안타깝지만, 이원수보다 더 애를 태워봤자 남과 북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칠오조 아닌 다른 곡을 찾을 수가 없다.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기를 다짐하는 노래로 우리 고유의 박자인 삼분박에, 그것도 칠음계가 아닌 오음계를 쓰고, 나아가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의 시조 율로 가사를 쓴, 그런 곡을 새로 하나 만들 수는 없을까? 그러나 이런 욕심은 이 정권 하에서는 조용히 접어야 한다. 그저 <고향의 봄>이라는 칠오조 노래만이라도 남과 북이 자주 부를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 다산연구소 대표
· 고려대 명예교수
· 한국언론학회 회장 역임
· 저서 : <개화기 민족지의 사회사상>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역)>
<미군정기 신문의 사회사상>
<한국언론사>
<민주주의와 언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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