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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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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0. 12. 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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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이


박 종 국


  “선생님, 저 세준이인데요. 오늘 집에서 쉴 게요.”

  “무슨 일이냐? 몸 안 좋아?”

  “예, 배가 무척 아파요, 머리도 띵해요.”

  “내가 가 볼까?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아녜요. 집에서 쉬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쉬어라. 많이 아프면 전화해. 알았지?”           


막 출근하는데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교에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쉬겠다고 했다. 매번 그랬다. 녀석은 학교 수업은 물론 여행이나 수련회, 소풍날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애써 챙겨서 데리고 가도 별로 좋아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녀석은 또래아이들과도 담을 쌓고 지낸다. 친구들이 따돌리지 않는데도 녀석은 언제나 혼자다. 게다가 말문도 쉬 열지 않는다.


새 학기 녀석을 처음 만나던 날 외소하고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 놀랐다. 몇날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땟국이 자자했고 머리에는 쉰내가 났다. 옷차림 또한 너무나 꼬질꼬질해서 교실에 그냥 앉혀두기 뭣했다. 그래도 반 아이들은 녀석을 많이 이해하는 듯 그다지 꺼려하지 않았다. 한데도 녀석은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제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했다. 어쨌든 개학 첫날부터 녀석에게 무척 신경이 쓰였다.


녀석의 가정환경을 살펴봤다. 제반 여건이 너무 열악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일정한 직업이 없었다. 아버지랑 단둘이 사는데 기본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었다.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한다면 믿을까. 요즘 같은 세상을 설마 그런 아이들이 있을라고. 아니다. 현실이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백이십 여명인데 중식지원대상자가 손가락을 다 꼽아도 부족할 만큼 많다. 결식아동도 서너 명 있다. 부모가 실업자로 전락한 탓도 크겠지만, 농촌의 가정경제가 풍비박산 났기 때문이다. 녀석의 부모도 농가부채에 거덜이 난 상태다.


세준이의 빈 자리에 차가운 겨울햇살이 머물러 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모둠학습에 열심인데, 녀석은 단칸 셋방에 틀어박혀 무얼 하고 있을까. 어린 나이에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녀석을 생각하면 목젖이 아리다. 정녕 담임으로서 녀석에게 크게 도움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렇다고 버젓이 아비어미가 있는 녀석을 생활보호대상자로 혜택을 받도록 법에 호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도회지에 근무할 때도 학급당 동사무소에서 통보되는 저소득층이나 생활보호대상자, 소년소녀가장 등 중식지원자가 몇몇 있었다. 하지만 그 숫자는 극히 미미해서 담임이나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 몇몇 분이 협조하면 아이들을 거뜬하게 보살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시골, 특히나 시설하우스며 집단 작목반이 활성화 되었던 농촌 지역학교라면 사정이 다르다. 가정경제의 파탄으로 끼니마저 결식하게 되는 아이가 허다하다. 누가 돌보지 않으면 그 아이들은 점심 한 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먹을거리가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잠시 후면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은 세준이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급식소로 갈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점심을 굶을 것이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식판 가득 챙겨먹고도 두 번 세 번 연이어 먹었는데…. 오늘 점심은 밥알이 모래 씹듯 고역이겠다. 녀석 집에 전화를 했다. 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어딜 갔을까, 몸이 아프다는 녀석이. 목소리라도 들으면 점심 먹으러 오라고 귀띔하고 싶은데…. 2010. 12. 17.


* 세준이는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