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화원을 만드는 여행
박종국(수필가, 칼럼니스트)
모든 삶의 지혜는 경험에서 비롯된다.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못한다. 푸른 초원을 알고 싶다면 단 하루라도 그 속에서 지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 오래면 지혜요, 물건이 오래면 귀신’이라는 속담도 인생의 경험이 많으면 지혜롭게 된다는 것을 일깨운다. 지혜란 별난 것이 아니다. 확실하게 현재를 살고 있는 자신의 삶 자체가 지혜 그 자체다. 여행을 벗하면 그것이 더욱 명료해진다.
여행은 인생을 즐겁고 아름답게 하는 음악이다. 우리의 인생을 젊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요, 여행이다. 그러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업무에서 긴장에 치달려 마음이 지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마음의 해방이 필요하다. 여행은 무겁게 짓누르는 일상에서 벗어나 신나고 들뜨게 한다. 그만큼 여행은 우리의 심신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리 추억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훌쩍 떠나기 쉽지 않다. 이래저래 발목 잡는 일이 많다. 날 잡아 놓으면 보란 듯이 툭툭 일이 불거진다. 날씨도 훼방을 놓는다. 하여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생활에 치달린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업무로 다들 긴장하고 의무에 치달려 마음이 지치게 마련이다. 해방이 필요하다. 여행을 떠나면 무겁게 짓누르는 일상에서 벗어나 그저 들뜨게 된다. 그만큼 여행은 삶의 활기를 주는 청량제다.
스무살 즈음, 떼거리로 무전여행을 떠났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다들 가정형편이 비슷한 처지라 여비라고 마땅히 챙길만한 여력이 없었다. 마산에서 광주까지 가는 비둘기열차 요금과 겨우 허기를 면할 만큼의 식비가 전부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머니 두둑하게 챙겨나서는 여행은 흉내도 못냈다. 근데도 난생 처음 타는 밤 기차는 모든 것을 설레게 했다.
희붐한 안개속에 만났던 광주역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하다. 역 앞 선술집에서 맛보았던 막걸리, 그보다도 인심 좋게 차려내었던 안주에 더 인상이 깊다. 안주 인심이 너무나 좋았다. 광주와의 첫만남은 선술집 안주로 시작되었다. 이후 발걸음은 광주에서 목포로, 완도, 강진, 벌교, 순천까지 이어졌다. 발길 닿는 데마다 인심이 후하고 징했다. 그렇게 나의 기억속의 남도는 살갑다. 무등산도, 금남로도, 망월동도, 순천 뻘밭도 발걸음 잦은 데가 되었다.
이렇듯 여행을 통해 맛보았던 추억은 가치 있는 삶의 바탕이 된다. 살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면 그 인생은 쓸쓸하다. 황량한 들판에 아름다운 꽃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여행은 인생의 꽃밭이다. 여행을 통하여 각자 인생에 아름다운 추억의 화원 하나쯤은 가꿔야 하지 않을까.
여행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요즘은 보다 젊게 살려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잡기가 능해도 우리 인생을 젊게 만드는 것은 여행이 아닐까. 겨를이 없다 변명 늘어놓을 까닭이 없다. 단 며칠이라도 좋다. 물설고 낯 설은 곳을 찾아 훌쩍 떠나라. 해방과 동경, 견문을 아로새길 수 있는 여행이라면 마다할 까닭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