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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 10만원

세상사는얘기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5. 12. 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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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년 10만원

 

 여자 홀몸으로 힘든 농사일을 하며, 판사아들을 키워낸 노모는 밥을 한 끼 꿂어도 배가 불렸고, 잠을 청하다가도 아들 생각에 가슴 뿌듯함에 오뉴월 땡볕 힘든 농사 일에도 흥겨운 콧노래가 났다.

 

세상을 다 얻은 듯 남부려울 게 없었다. 이런 노모는 한 해 동안 지은 농사를 이고지고 세상에서 제일 귀한 아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 아들 집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착했는데, 이 날 따라 아들 만큼이나 귀한 며느리가 집을 비우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만이 집을 지켰다. 아들이 판사이기도 하지만 부자집 딸을 며느리로 둔 덕택에 촌노의 눈에 신기하기만한 살림살이에 눈을 뗄 수 없어 집안을 이리저리 구경하다가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됐다.

 

그 물건은 바로 가계부였다. 부자집 딸이라 가계부를 쓰리라 생각도 못 했는데, 며느리가 쓴 가계부를 보고 감격해 그 내용을 들려다 보니 각종 세목이며 부식비, 의류비 등 촘촘하게 써내려간 며느리의 야무진 살림살이에 또 한번 감격했다.

 

그런데 조목조목 나열한 지출 내용 가운데 어디에 썼는지 모를 '촌년 10만원'이란 항목에 눈이 머물렸다. 무엇을 샀길래? 이렇게 썼나 궁금하기도 했으나, 1년 12달 한 달도 빼놓지 않고 같은 날짜에 지출한 돈이 바로 물건을 산 돈이 아니라 자신에게 용돈을 보내준 날짜라는 사실을 알았다.

 

촌노는 머리속이 하얗게 변하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섰다. 아들 가족에게 주려고 무거운 줄도 모르고 이고지고 간 한해 걷이를 주섬주섬 다시 싸서 마치 죄인된 기분으로 도망치듯 아들의 집을 나와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가슴이 미어터질 듯한 기분.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분통을 속으로 삭히기 위해 안감힘을 쓰는데, 금지옥엽 판사 아들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왜 안 주무시고 그냥 가셨어요"

 

라는 아들의 말에는 빨리 귀향길에 오른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이 한 가득 배였다. 노모는 가슴에 품었던 폭탄을 터트리듯 말했다.

 

"아니, 왜? 촌년이 거기서 자?"

 

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들은 어머니 무슨 말씀을 하시느냐며 말을 잊지 못했다.

 

"나한테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꽂힌 가계부를 들여다봐라. 잘 알게다."

 

며 수화기를 내팽기치듯 끊어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았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집에서 큰 소리난다 소문이 날 테고, 폭력은 판사의 양심으로 안 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날며칠을 힘든 인내심이 요구됐다.

 

그러던 어느 날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 나서 선물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해 친정나들이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가집에 도착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마당에 머뭇대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들어 오는가?"

 

하며 쫓아나오자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

 

라고 대꾸했다.이 말을 들은 장모는 그 자리에서 돌하루방처럼 굳어버렸다.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고 차를 돌려가버렸다.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손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이후 며느리 가계부에는 촌년10만원은 온데간데 없고,

 

"시어머니 용돈 50만원"

 

 이란 항목이 또렷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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