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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책]심경호의 <간찰>, 한얼미디어

박종국에세이/독서서평모음

by 박종국_다원장르작가 2016. 8. 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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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책]심경호의 <간찰>, 한얼미디어 


 
박 종 국 

 

못에는 물결이 출렁이고 버들 빛은 한창 푸르며,

연꽃은 붉은 꽃잎이 반쯤 피었고

녹음은 푸른 일산에 은은히 비치는 구려,

이즈음 마침 동동주를 빚어서

젖빛처럼 하얀 술이 동이에 넘실대니

즉시 오셔서 맛보시기 바랍니다.

바람 잘 드는 마루를 벌써 쓸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 허균이 권필에게 내방을 권한 간찰중의 한 대목

 

요즘 같이 더운 날씨에 바깥나들이가 여의치 않은 때 책을 즐겨 읽는다. 재미가 솔솔하다. 심경호의 <간찰, 선비의 마음을 읽다>을 다시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눈대중으로, 옛 사람들의 도타운 정념을 사려보는 데만 관심을 두었다. 몇 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눈길이 가지런해진다. 그만큼 잔향이 오래가는 책이다.

 

우리는 어딜 가나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다닌다. 수시로 메시지를 열어보아야한다. 문자메시지가 대화의 전부가 된지 오래다. 그만큼 우리네 삶은 얼굴 맞대는 처연한 ‘소통’이 어렵다다. 바쁜 일상에 치우쳐 소통에 열망하는 시대! 그런 속에서 과연, 진정한 소통은 얼마나 이뤄지는 걸까?  

 

간찰(簡札)은 두껍고 질긴 한지(韓紙)나 비단에 쓴 옛 선비들의 편지다. 저자는 한국 지성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선인들의 간찰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만을 골라 번역하고 편지가 오간 상황과 심정 등을 하나하나 헤집었다.

 

정몽주 등 고려시대 3명, 이황 등 조선시대 선비 24명의 간찰, 한 장의 간찰에는 선인들의 진솔한 마음뿐만 아니라 서정과 여유, 기개와 절도 등이 담겼다. 저자의 해설을 읽다 보면, 간찰을 통해서 많은 일들을 새롭게 되새기게 된다. 학문적 고독, 정치적 불안감을 토로하거나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는 선인들의 표정과 태도, 성격이 눈앞에 만져질 만큼 생동감이 더한다.

 

편지에는 선비들의 참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나 진실한 벗 사귐을 엿보인다. 사색당파로 갈려서 싸우던 중에도 시간(나이)과 공간(지역)을 넘다들면서 주고받았던 정이 담긴 편지에는 그동안 쌓았던 인격적 깊이와 동시에 보내는 사람의 끈끈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옛 편지의 정중한 형식 안에 감춰진 ‘한 영혼이 다른 영혼과 관계를 맺기 위해 모색하는 긴장’을 드러난다. 그게 이 책의 미덕이다.

 

‘저는 외곬이라서 아무리 궁해도 구걸을 못합니다. 남이 주는 것도 받지 않고, 받더라도 어깨를 움츠리고 무릎으로 설설 기지를 않습니다. 사례를 하더라도 감격해서 달려가는 법이 없고, 빙씨(氷氏)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제 자신이 이것이 나쁜 습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습관이 본성으로 굳어져서 바꿀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 마음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 한 번 머리를 끄덕이고 한 번 말을 주고받은 뒤로 한 번 적은 돈이라도 주시면, 많은 선물을 받는 돈보다 더 기뻐합니다. 관원의 초청을 기대한 적도 없고 내 편에서 나아가 뵙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다 제 천성이 도도하여 그런 것입니다. 안주와 술을 보내 주시고 또다시 쌀을 보내 주시니 멀리 바라보며 이제 축수하여 덕을 기리고, 찬미하는 시 몇 편을 적어 별지에 올립니다.’

 

1487년 설악산 자락에 은둔해 있던 김시습이 양양 부사 유자한의 벼슬살이 권유를 거절하며 쓴 편지다. 일체의 속박을 거부한 김시습, 그를 안타깝게 여겨 세상에 끌어내려 한 유자한의 격의 없는 우정은 김시습이 계속해서 쓴 거절의 편지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유자한의 따뜻한 관심에 감사하면서도 끝까지 속세에 섞이길 거부한 김시습은 ‘깔깔대며 웃는다’라는 시를 지었다.

 

‘나는 알지, 나는 알지/손뼉 치며 깔깔 한바탕 웃노라/고금의 잘난 이 모두 양(본질)을 잃었나니/시냇가에 초가지어 사는 것만 못하리/험한 길에 발붙이려 분주하다만/편히 앉아 아침 햇볕 쪼임만 못하리.’

 

요즘 세상, 휴대전화와 이메일이 대화의 공간을 다 차지한다. 하여 편지가 주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없을뿐더러, 편지 속에 묻어나는 아름다운 정서적 교감도 만날 수 없게 된지도 오래다. 왜 그럴까? 사는 게 바빠서? 팍팍하다고? 아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고, 다들 힘들게 살아가는데, 내 마음 아프다고, 내 상황이 너무 어렵다고 타인에게 위로해달라고 말하기 참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선비들의 간찰은 그윽한 향기를 준다.

 

내가 떠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네.

만리 떠날 여행 봇짐에 자네의 글이 없어서는 안 되니 반드시 오언율시 여덟 수를 노자로 주게나.

한 수라도 줄이면 무정하다고 할 것이네.

형의 오언율시는 수준이 높은 것은 양양 맹호연의 작품과 같고 수준이 낮은 것도 거비 진영의의 고상한 운율에 비해 손색이 없으니,

연경의 저자에 펴놓고 읽더라도 연, 조의 비가에 대적할 만한 걸세. 부디 게을러서 짓지 못한다고 회피하지 말기 바라네.

 

이 편지는 허균이 명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권필에게 노자로 시를 청했다. 참으로 봄바람 같은 글이다. 그 어느 부탁보다 단아한 부탁이 아닌가. 내가 두고두고 이 책을 갈음하면서 읽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조선시대 선비들의 우아하고 진실한 벗 사귐이 그리워서가 아닐까 싶다. 그 향기 한 떨기 난처럼 은은하다.

 

요즘은 손으로 쓴 편지가 드물다. 친구에게 쓰는 우정어린 편지든, 사랑하는 이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 보내는 편지든 모든 글자는 컴퓨터 화면에, 휴대전화 액정에만 떠는 세태다. 종이에 촘촘하게 적어 내려간 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까마득한 옛일처럼 되어버렸다. 작은 편지글, 간찰에는 인간미가 배었다. 짧은 글이라고 해서 안부만 담긴 건 아니다. 한 장의 간찰에는 선인들의 진솔한 마음뿐만 아니라 서정과 여유, 기개와 절도 등이 담겼다.

 

그래서 간찰을 읽다 보면 잊고 지냈던 편지의 향취가 일깨워진다. 편지를 쓴 저자들은 학문 정치 문학 예술 등 우리 지성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이다. 간찰에는 글쓴이의 개성이나 감정이 잘 드러난다. 받는 이를 생각해서 쓴 글이므로 상대를 위한 예의나 배려가 곳곳에 나타난다. 간찰은 어떠한 내용이라도 모두 형식의 구속과 수사적 일탈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쓰는 사람의 숨결과 생각의 편린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 또한 간찰을 읽는 묘미다.

 

“요사이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아주 향기롭고 텁텁하여 마실 만합니다. 그대들과 마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 살구꽃이 반쯤 피었고 봄기운이 확 풀려 사람들을 도취시키고 다감하게 만듭니다. 이런 좋은 계절에 술을 마시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이군이나 박환고와 함께 와서 마시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 술이 며칠 되지 않아 바닥날 것이니, 늦게 오시면 물만 마시는 곤혹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이규보가 친구 전탄부에게 쓴 편지 중에서

 

“세계가 날로 아지랑이 속에 빠진 듯 혼미해가니, 때대로 아주 잠들어보려 잠꼬대조차 하지 않았으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병을 앓든 병을 안 앓든, 누가 알겠습니까? 전하는 말에, 북방이 크게 소란하고 또 청성(淸城)의 변고가 있다고 하는데, 신문은 검열로 얽어 매여져, 그 사실들을 거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귀먹고 눈멀어서 마치 혼돈의 개벽 상태에 있는 듯합니다. 가슴을 치고 미친 듯 울부짖을 따름입니다.”

 

- 황현이 이건방에게 민족의 위기를 우려하여 보낸 간찰 중에서

  

“다만 우리는 이 조선의 신하이므로, 나의 군부(君父)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중국 조정만 위하는 것은 월진(越津)의 협의가 없지 아니합니다. 명나라 황제가 재조(再造)시켜 준 은덕은 우리나라 군신 가운데 어느 누가 감격하여 추대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가 생사의 위기를 당해서 어찌 옛날에 중흥시켜 준 것만 생각하고 스스로 망하는 걸로 나가야 합니까?”

 

- 최명길이 백동수에게 안분지족의 뜻을 전한 간찰 중에서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맞닥뜨려 있는 얘기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의 사정이 백척간두에 선 형국은 비슷하다. 이렇듯 간찰에는 옛사람들이 애틋한 우정을 담고 있다. 그만큼 편지 한 장을 보내는데 정성도 많이 들였다.

 

이밖에도 간찰을 쓰는 이들은 학문적 고독감, 정치적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이나 이해를 청했다. 정책을 입안하거나 구국 의지를 실현하는 데 친구의 조언을 기대하기도 했다. 때로는 예술적 취향, 구도에 대한 열정, 갑갑한 현실에 대한 소회를 털어 놓기도 했다.

 

<간찰>의 공통점은 순수한 우정을 담아냈다는 점이다. 친우라지만 같은 동년배만 교유하는 게 아니다. 망년우(忘年友)라 하여 나이와 사상의 차이를 떠나 교류했다. 그렇기에 이 이 간찰들에 눈을 주고 그 내용들을 읽다 보면, 교재의 예술로서 간찰이 지닌 매력을 느끼고, 선인들이 교우를 통해서 스스로의 인격과 책무의식, 학문과 예술을 향상시켜 나간 궤적을 헤아려보게  된다.   

 

또한 간찰은, 교제의 예술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편지이기에, 상대에 대한 배려가 살갑다. 문자와 형식에 따라 표정과 그 태도도 다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중시한 사회답게 간찰에는 예의가 잘 갖춰졌다. 한결같이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어느 간찰이든 하나같다. 또한 전달하는 사람을 통해서 부채, 종이, 옷 등을 보낸다는 추신이 눈길을 끈다. 단지 간찰을 빈손으로만 보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간찰이 갖는 의미는 또다른 의미는 무엇일까? 누구는 그 안에 개인의 크고 작은 일들은 물론, 나아가 국가 정책과 학문의 토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내용을 담아내네 그 의미가 소중하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다른 통신수단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가며 세상의 모든 대소사를 담아내고, 작은 온정까지도 표현하였던 수단이 간찰이었다. 그래서 간찰을 읽다 보면 시나브로 희(喜), 노(怒), 애(哀), 구(懼), 애(愛), 오(惡), 욕(慾), 의 칠정(七情) 가운데에 빠지기도 한다.     


ⓒ 박종국 2016-23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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