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
박 종 국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역발상을 도출하려면 먼저 자신의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어째서?’ ‘그래도 될까?’ ‘반대되는 관점이나 생각은 없는가?’ ‘뒤집으면 어떻게 되는가?'를 되짚어봐야 한다.
완벽하게 올바른 진리는 없다. 자신의 의견 없이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성장을 막는다. 물론,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일일이 반론할 까닭은 없다. 그렇지만, 매사 검증하여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는 사람의 자질로 됨직하다.
자신이 몸담는 분야에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시야가 점점 좁아진다.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일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는 방법이 많다. 그 가치여부는 그 사람, 그 목적에 따라서 다르다.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는 능력이 없다면 시대의 다양성과, 여러 가지 관점의 존재를 놓친다.
항상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스스로를 인정할 때 인생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쉽게 놓여나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도 현명하다. 발상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남의 의견을 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반론이나 반발의 집중포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물리학자로, 상대성원리를 확립한 아이슈타인은 동양인이 키가 작으므로 사는 집도 작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상식에 치우친 결과였다. 작은 사람에게는 작은 집이라고 아이슈타인 마저도 그렇게 생각했다니 아이러니다.
그러나 그것은 편견이었다. 실제로 키가 큰 사람이나 작은 사람 모두 집의 크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동양을 방문한 아이슈타인은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렇듯 발상은 일반적이지만, 어느 한 곳에 몰두하면 자신의 맹점은 깨닫지 못한다.
조금 관점을 바꾸어 보아야 한다. 정원수를 심어 봄에 새잎을 볼 때는 예쁘지만, 가을에 그 잎이 다 떨어져 낙엽지면 뒤처리가 곤란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원에 상록수만 심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그 낙엽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발상을 전환된다. 낙엽은 비료에 가장 좋다. 낙엽을 썩히면 부엽토로써 고급유기비료를 만든다. 여타 일들도 그 본연의 사실을 명확하게 파악한다면 상식을 뒤집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발상의 전환은 사실관계로부터 따져간다면 올바른 이해에 도달한다. 이렇게 해서 자기자신에 대해서 몰랐던 점이나, 전혀 다른 관점을 깨닫게 된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발상이 탄생하게 된다. 역발상이다.
모든 일은 여러 가지 측면이 생긴다. 서로 플러스가 되는 면에서부터 들여다보는 게 바람직하다. 무엇인가 마이너스 측면으로 사물을 보고, 항상 그에 맞는 자세만을 취하면 그리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다. 부정적 자아는 스스로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해질 뿐이다.
새술은 새 부대에 담으로고 했다. 지난 9년여 엉터리 국가경영의 질곡을 벗어나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됐다. 그 자체만으로 폐부 깊숙이 시원한 호흡이다. 살맛나는 세상이 머잖다. 이처럼 발상의 전환, 역발상은 삶의 활력을 더해 준다.
|박종국 2017-30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