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풍지 수표
어느 등산가가 산행을 하다가 길을 잃었다.
해가 저물고 갑자기 눈보라까지 쳐서 이제 죽었다고 생각할 쯤 저만치 멀리서 작은 불빛이 보였다.
작은 초가삼간 집이었다.
그는 거의 탈진 상태에서
"계십니까? 계십니까?"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노쇠한 할머니가 나왔다.
그는 다짜고짜로 집안으로 들어가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할머니가 자신을 간호하는 모습이 어슴푸레 보였다,
"이제 정신이 드오?"
"아, 죄송합니다. 허락도 없이 이렇게 폐를 끼쳐서..."
" 아니오. 더 머물다 가시오. 눈보라가 멈추려면 며칠은 더 지내야 한다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등산가에게 겨울 양식을 꺼내어 함께 며칠을 보냈다. 등산가는 눈보라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대하듯이 정성껏 보살펴주었다.
"나도 자네만한 아들이 두었다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이놈의 산이 문제요. 이놈의 산이 변덕이라."
등산가는 이 생명의 은인인 할머니에게 보답하기 위해 어떻게 해드릴까 생각했다.
할머니 집을 보니 온통 구멍이 나고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그래 할머니가 따뜻하게 살도록 집을 새로 마련해 드려겠구나"
그 등산가는 다름아닌 거대기업의 회장이었다.
눈보라가 끝나는 날 회장은 몰래 백지수표를 꺼내 거액을 적어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 할머니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요?"
"이제 이거면 겨울을 따듯하게 보내내실 겁니다"
그리고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떠났다.
그리고 몇년 후 회장은 다시 그 산에 등산을 가게 되었다.
할머니가 과연 따듯하게 지내고 계실까, 궁금도 하고 해서 끔찍한 등산 경험이였지만, 그 산으로 다시 떠났다.
그런데 그 할머니 집은 그대로였다.
뛰어들어가자 방안에서 부패한 냄새가 진동했고, 할머니는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아마도 겨울양식도 없고, 작년에 너무 추워 동사한듯 보였다.
"아니 이럴수가? 내가 분명 그 큰 돈을 드렸는데..."
그 때 자신이 준 수표는 문의 구멍난 곳에 문풍지로 사용했다.
"아뿔사!"
그때서야 회장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할머니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드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가장 귀한 것이라도 깨닫지 못하면 휴지조각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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